MB 정부에서 '외고 폐지'가 불가능한 까닭

돌발성 정책, 여당 내 이견 등 산 넘어 산... 학원심야영업 금지 주장과 닮은꼴

등록 2009.11.03 18:52수정 2009.11.03 18:52
0
원고료로 응원
 지난달 27일 오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 간담회.
지난달 27일 오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 간담회.박상규
한나라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 간담회가 지난달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박상규

 

지난달 외고 폐지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외고 폐지 주장으로 여당은 톡톡히 재미를 보았지만, 대안 없이 촉발된 논란은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국정감사 마지막 날 외고 폐지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로부터 현안보고를 받고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하기로 했지만 한나라당은 내부 의견조율을 하지 못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외고폐지 논란과 학원심야영업금지 논란이 닮은 점

 

사정이 이렇다보니 충분하고 신중한 대안 마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난 외고 폐지 논란을 순수한 의도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특히 지난 봄 학원심야영업금지와 이번 가을 외고 폐지 논란을 비교해 보면 두 논란은 세 가지 점에서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두 논란 모두 사교육 절감이라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실천하려는 취지를 깔고 있다. 둘째, 정부 해당 부처인 교과부가 배제된 채 논란이 시작되었고, 교과부는 팔짱만 낀 채 불구경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두 논란 모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두 논란 모두 대입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 점도 똑같이 닮았다. 대입제도를 바꾸지 않고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교육정책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경쟁과 줄세우기 교육을 바꾸지 않고 사교육을 절감하는 일은 슈퍼맨도 불가능하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선 온돌 구들짝이 식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온돌이 식기를 바란다면 아궁이 장작불부터 빼내야 할 텐데 장작불은 타오르고 있는데 어찌 온돌이 식겠는가? 오히려 온돌은 갈수록 지글지글 끓고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다 보니 한나라당 의원 내부에서도 외고 폐지론자들은 외고 리모델링론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장에서 교과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벌이는 폐지론과 개조론 간의 논쟁은 가관이 아니었다. 참 한심하고 무책임한 여당이다.

 

특히 외고 폐지는 평준화보다 수월성 교육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한나라당의 교육 철학과 정면 배치되므로 상류층 및 기득권층을 정권의 핵심 기반으로 삼고 있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위배된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외고 학생은 대다수가 중상류층 집안 이상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서울시내 6개 외고에 재학 중인 6746명 중 저소득층에 속하는 학생은 12명으로 0.18%에 불과한데, 이는 외고 진학은 보통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에게조차도 그림이 떡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왜 MB 정부 몸에 전혀 맞지 않는 외고 폐지 이슈를 제기했을까? 바로 MB의 친서민 정책을 관통하는 정치적 효과 때문이다. 교육에서 친서민 정책의 핵심은 사교육비 절감에 있고, 사교육의 주범으로 인식돼 온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아무런 예산 투여 없이도 국민들의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친서민 정책의 전형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외고 폐지를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볼 때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외고 폐지는 폐지 여부를 떠나 일단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MB 정부가 사교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외고까지 폐지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외고 폐지가 가능할까?

 

지금으로선 이명박 정부는 외고를 폐지할 수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외고 폐지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이념과 대립되기 때문이다. 자율과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가 외고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정체성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지 세력의 이탈과 실망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것은 결국 정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 올 것이다.

 

당장에 외고가 뭉쳐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외고 폐지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합의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고 폐지에 합의한다면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던 정책방향을 포기하고 평준화 교육으로의 선회를 의미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MB 정부가 외고 폐지를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외고 폐지 이후 뾰족한 대안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논의와 준비 없이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불쑥 내놓은 외고 폐지론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 현재까지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장관조차 12월 말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을까? 연말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장관의 하소연은 외고 폐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외고 폐지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조차 대안을 못 찾아 갈팡질팡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정 의원은 외고 폐지 후 자사고 전환을 주장한 지 하루만에 자사고가 아닌 특성화고로 개편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임을 스스로가 자인한 셈이었다.

 

외고를 자사고로 전환하려면 법인전입금을 5% 부담해야 하는데 현재 외고 중 재정능력을 가지고 있는 곳은 서울 소재 외고 6곳 중 이화외고 한 곳에 불과하다. 전국 18개의 사립외고들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1%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외고를 폐지한 후 자사고 전환 발상은 좀 황당하기까지 느껴진다. 또한 외고를 폐지하겠다면서 외고의 운영실태나 관련 법령의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드러낸 셈이다.

 

사교육 해소 진정성 보이려면 자사고 문제부터 해결해야

 

10.28 재보궐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외고 폐지 논란은 예상대로 가라앉고 있다. 야당은 국정감사 기간 내내 외고 폐지와 관련하여 여당 의원이 외고 폐지 주장을 하고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는 것보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견을 해소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보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해왔다. 현재로선 설령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여당 내 이견으로 원만하게 통과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이번 논란이 외고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자율형사립고 역시 외고를 능가하는 사교육 유발 위험이 있다는 점을 정부와 여당이 인식해야 하며, 외고를 특성화고로 개편하더라도 나중에 자율형사립고로 선정된다면 외고 폐지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정두언 의원이 법률 개정안을 제출한다면 야당에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는 자율형사립고 관련 조항 역시 법률로 끌어올려 외고와 같이 입시명문고로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일이 없도록 선발 및 운영과 관련된 조항을 포함한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외고를 폐지하고 일부 부유층과 기득권층이 학력을 세습하는 통로로서의 현재 고교 체제에 칼날을 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야당의 주장 역시 동의해줄 것으로 생각하며, 야당은 한나라당의 진정성이 확인된다면 기꺼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법률안을 병합 심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지난 봄 학원심야영업 금지처럼 이번 외고폐지 논란의 배경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건 외고 및 외고로 인한 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한나라당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수월성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며, 외고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앞장서왔던 모습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고 폐지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며, 지난 4월 사교육과 전쟁을 치르겠다며 기세등등했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록 외고의 선발 및 운영방식을 개선해서 본래의 취지에 맞도록 리모델링하는 몇몇 대책은 마련될 것이지만, 이는 참여정부에서 이미 발표한 정책대안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친서민 정책의 기조 아래 촉발된 외고 폐지 주장이 결국 국민과 학생들에게 불신과 실망만 남기게 된다면 결국 그 짐은 온전히 한나라당에게 돌아갈 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결말이 끔찍했던 것처럼 백성을 현혹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대한 대가 역시 이제는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안민석 기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이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2009.11.03 18:5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안민석 기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이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외고폐지 #정두언 #자율형사립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