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지하철 타고 서울 산책 가 볼까?

[책으로 읽는 여행 41] 정진영의 <엄마와 아이의 서울 산책>

등록 2009.11.03 14:39수정 2009.11.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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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엄마와 아이의 서울 산책> ⓒ 살림life

여자의 인생 중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을 이야기하라면 아마도 결혼과 출산이 아닐까 싶다. 남자들에게 아이의 탄생은 그저 새로운 가족이 하나 더 생긴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에게 아이란 '나를 필요로 하는 아주 작은 붙박이 생명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 작은 생명체가 한참 자라서 독립할 때까지 여자는 엄마라는 무거운 이름으로 생활하게 된다. 처녀 적에 즐겨 찾던 커피숍이나 미술관, 등산로는 당분간 머나먼 공간으로 남는다. 아이가 잘 걷고 뛰고 그림을 감상할 줄 알며 얌전히 앉아 책이라도 읽기 전에는 말이다.


<엄마와 아이의 서울 산책>은 아이의 탄생으로 집콕 신세가 된 걸 한탄하는 엄마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장소들은 실제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미술관, 공원, 박물관, 궁궐 등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정진영씨는 15개월짜리 딸을 데리고 직접 산책간 곳들을 하나하나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귀찮음과 염려를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면 밥투정과 잠투정이 줄고, 인지 능력과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는 책에서 본 것보다 보고 듣고 만지면서 직접 경험한 것을 더 잘 기억합니다. 또한 엄마의 육아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책의 맨 처음은 이런 안내로 시작한다. 나도 이제 다섯 살이 된 큰애를 키울 때에는 참 많이 데리고 다녔다. 그때만 하더라도 체력이 펄펄 넘쳐 다들 '애 데리고 많이도 다닌다'고 놀랐었는데, 둘째가 태어나고 무르익은 삼십대가 되면서 모든 게 귀찮아 집에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유독 둘째는 돌이 지난 후에도 잠투정이 심하다. 큰애는 돌 이후 자면서 밤에 거의 깨질 않았는데 작은애는 한밤중에 두세 번 깨어 울거나 놀아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주변에 공원과 산책로가 잘 형성된 곳으로 이사 온 덕분에 매일 같이 산책을 시키고 시장 구경을 했더니 밤에 깨는 게 줄었다.

서울에 사는 엄마라면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을 아이와 다녀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광화문 근처만 보더라도 아이가 볼만한 거리들이 제법 많다. 그림과 조각품이 전시된 흥국생명 빌딩도 그렇고 시립 미술관도 그렇다. 최근에는 청계천과 광화문 공원이 생겨 매일 같이 광화문에 가도 새로운 볼거리가 있을 정도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하는 가족 나들이도 좋겠지만, 여건이 안 되는 엄마들의 경우 평일 나들이로 갈만한 곳도 많다. 궁궐과 박물관 같은 곳은 어린아이 요금이 공짜이고 어른 요금도 별로 비싸지 않다. 게다가 잘 알아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아이와 쉽게 갈 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책의 첫 장에서 소개하는 궁궐 중에는 우리 아이도 즐거워하던 덕수궁과 경희궁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덕수궁 가을 길은 어른들에게도 낭만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도 낙엽 줍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딱 지금쯤 가면 제격인데, 날씨가 쌀쌀할 것을 대비해 두꺼운 외투와 모자는 필수다.

한창 공주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다섯 살 여자아이는 경희궁에 가서 '임금님과 공주가 살던 곳'이라고 얘기해주면 행복해 한다. 경희궁은 사람이 별로 없어 아이가 뛰어놀기 좋은데 돌로 만들어진 마당에서 조심조심 돌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체험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굴곡이 많은 경희궁과 바로 옆에 붙은 역사박물관을 함께 돌아보면 한나절이 후딱 간다.

특히 역사박물관에는 여름에 시원한 바닥 분수를 틀어 놓아 뛰노는 아이들도 많다.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 곳곳이 문화 산책의 공간인데, 자동차에 갇힌 어른들이 그걸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살지 않나 싶다. 우리에겐 늘 똑같은 현장학습 장소인 궁궐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놀이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평상시에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경험도 훌륭한 학습이 된다. 표를 끊고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기다란 전동차가 오면 조심스레 탔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나에게도 무척 소중하다. 내 아이도 그 묘한 설렘을 참 좋아한다.

화학을 전공하신 아버지 덕분에 실컷 구경 다녔던 과학관의 괴상한 전시물들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때의 경험 덕분인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자아이들이 싫어하는 과학이 난 참 즐거운 과목이었다.

내가 이런 경험을 부모로부터 받았듯이, 내 아이도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세상을 보는 넓은 시각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아이가 더 넓은 세계를 보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곳저곳 아이와 함께 산책을 떠났다고 한다.

혼자면 외로울 수 있는 산책도 아이와 함께라면 지루하지 않다. 재잘거리는 아이의 목소리, 엉뚱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할까? 책을 읽다 보니, 나도 귀차니즘을 벗어던지고 아이와 함께 서울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힘든 나들이의 노고가 씻길 것 같지 않은가!

엄마와 아이의 서울산책 -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정진영 지음,
살림Life, 2009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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