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각 지나 송광사 가는 길
가을이 깊어간다. 남녘의 풍경들도 서서히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 조계산도립공원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송광사에서 연산봉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장군봉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길을 잡았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주암 나들목으로 나와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송광사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만난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도로는 늙은 벚나무들이 이끼로 옷을 입고서 길가로 서 있다. 벚나무가 늙었다. 기껏해야 50년 안팎일 건데. 성질 급한 나무들.
송광사 시설지구를 빠져나오면 큰 느티나무들이 길에 낙엽을 깔아 놓았다. 기분이 좋게 들어선다. 송광사 매표소를 지나니 청량각(淸凉閣)이 계곡을 건너고 있다. 돌다리에 지붕을 씌워놓은 까닭은? 비를 피하거나 햇볕을 가린 용도는 아니겠지. 다리를 건너면서 잠시 쉬어가라고? 절집을 향한 바쁜 걸음은 쉬어가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한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정원 임경당과 우화각
청량각 지나 송광사로 이어진 길은 청량하다. 쾌 넓은 길이지만 하늘을 가려선지 서늘한 기운이 넘쳐난다. 길 아래로 큰 계곡이 따라간다. 계곡을 향해 비스듬히 선 나무들은 단풍이 간간이 들어 눈을 즐겁게 한다. 계곡은 물이 졸졸거린다. 물이 고인 곳에는 서둘러 떨어진 낙엽으로 가득 채웠다.
일주문을 지나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있는 임경당(臨鏡堂)과 절집으로 들어가는 홍교에 누각을 세운 우화각(羽化閣)을 만난다. 우화(羽化)는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신선이 된다는 뜻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비워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의미를 담고 있단다. 절집이 아니라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 절집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싶다.
산행도 좋지만 잠시 절집을 둘러본다. 마침 정오를 알리는 범종이 울린다. 종소리가 웅장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퍼져 나간다. 등산로 표지판을 보고 길을 잡는다. 화엄전 아름다운 돌담을 돌아 산길로 접어든다. 스님들이 같이 따라나선다. "어디 가시는데요?" "울력이요. 고추 따러 갑니다." 마치 소풍 가는 표정들이다. 수행도 좋지만 가끔 자연 속에서 일하는 즐거움도 좋은가 보다.
피아골은 조계산에도 있다.
산길을 따라간다. 산길은 산행객이 드물다. 늦은 산행이라 그런가? 앞에 가는 스님 두 분. 수행 차 산길을 오르내리신단다. 갈림길이다. 굴목재로 가는 길과 연산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뉜다. 피아골삼거리다. 피아골? 지리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조계산에도 있다. 그러고 보니 두산 다 격동기 때 빨치산의 주무대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피아골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공비굴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만난다.
피아골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단풍이 아쉬운 듯 들어 더욱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는 이런 단풍이 더 좋아." 같이 동행한 처형이 연신 즐거워한다. "빨간 단풍보다는 울긋불긋한 단풍, 그러면서 초록빛도 남아있는…. 조금은 아쉽지?"
산행객들은 굴목재로 넘나들다보니 이 길은 인적이 뜸하다. 가끔 마주치는 분들은 초행길인지 송광사 가는 길이 맞냐고 되레 물어온다. 하늘과 만나는 계곡의 끝자락은 나타날 듯 하면서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거친 산길을 힘들어질 만큼 올라가니 하늘과 맞닿은 재가 나온다. 연산사거리다. 오른쪽으로는 연산봉, 왼쪽으로는 장군봉, 맞은편으로는 선암사 가는 길이다. 장군봉까지 3㎞란다.
너는 좋으냐? 낙엽 마르는 향기가
산등성이로 이어진 길을 간다. 산길 풍경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산마루를 이어주는 길은 낙엽이 덥고 있다. 고산지대에 군락으로 자라는 신갈나무 숲길. 커다란 잎들을 모두 땅으로 깔아 놓았다. 바삭바삭 낙엽을 밝으며 걷는다. 낙엽 마르는 냄새가 참 좋다. 익숙한 냄새 같지만 뭐라고 콕 찍어서 표현을 못하겠다. 낙엽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여기에 시 구절 하나 추가한다면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마르는 향기가.'
가끔은 산죽사이로 지나가기를 하면서 산길은 이어진다. 오르내리는 길은 정상인 장군봉(將軍峰, 884m)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눈이 올 것만 같다. 좀 더 맑은 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정표에는 보리밥집을 거쳐서 송광사까지 6㎞라고 알려준다.
산길을 내려선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게 변해간다. 내일부터 추워진다더니 산은 벌써 준비하는가 보다. 배바위를 지나고, 작은 굴목재(720m)에서 잠시 쉬었다가 보리밥집을 지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늦은 시간이라 쉬어가는 손님이 몇 군데 앉아 있을 뿐이다. 야채전을 시켜 먹는다. 맛있다. 부침도 맛있지만 연한 상추로 만든 겉절이와 초피향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김치도 좋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을까?
다람쥐 우는 소리 들어 봤어?
굴목재로 올라선다.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는 양 볼이 볼록한 채 우리를 바라보고 섰다. 살짝 곁눈질을 하면서 울어댄다. 쏙! 쏙! 쏙! 어! 새소리? 설마? 다람쥐가 울 거라고 생각을 못해봤는데, 마치 새가 우는 소리와 똑같다. 너무나 신기해 한참을 같이 울어본다. 다람쥐는 우리가 돌아서서 간 후에도 한참을 울어댄다. 겨울을 같이 보낼 짝을 찾는가 보다.
굴목재를 지나고 송광사로 내려오는 길은 어둠에 묻혀간다. 기분이 묘하다. 밤에 산길을 가는 기분. 호랑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옛날 같으면 이런 길을 걸어갈 생각이나 했을까? 산길은 어둠에 완전히 묻히고 산마루에 달이 떠오를 때쯤 산길은 끝이 났다. 점점 커져만 가는 달이 뒤에서 계속 따라온다. 들어갈 땐 청량각이던 다리는 극락교(極樂橋)가 되어 우리를 배웅한다.
덧붙이는 글 | 10월 31일 풍경입니다.
총 걸은 거리 : 11.8㎞/5시간 20분(점심과 쉬는 시간 포함하면 7시간)
- 매표소-(15분)-송광사-(25분)-피아골삼거리-(60분)-연산사거리-(1시간20분)-장군봉(884m)-(45분)-보리밥집-(25분)-굴목재(720m)-(1시간10분)-매표소
- 매표소-(3㎞)-연산사거리-(3㎞)-장군봉-(2.1㎞)-보리밥집-(3.7㎞)-매표소
2009.11.04 09:01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