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정권의 '니혼마루(일본호)'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있다. 집권 후,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동아시아공동체 설립도 제안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미일동맹의 포괄적 재검토까지 들고 나왔다. 유일 슈퍼파워 미국의 비호 하에 안주해 온 모범 국가 일본이 종래와는 다르게 '일본답지 않은'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그 이면에 서린 일본 외교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외교적 변화 조짐은 일본 역사 속에서 배태되어 온 일본 외교의 한 특징이 또 다시 본격 작용하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일본 외교 변화의 안팎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외교적 행보를 취해 온 한국으로서는 최근 일본 외교의 동향이 지니는 의미와 그 배경 및 우리에 대한 시사점 등을 면밀히 파악함으로써 우리 외교의 자기성찰 및 향후 좌표 설정 등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외교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는 변화무쌍한 국제질서 속에서 새로운 패권세력의 등장이 거의 확실하다 싶으면, 즉각 고무신을 갈아 신는 '시류영합형' 모습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 역사 속 전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필요도 없이, 메이지 시대의 영일 동맹이나 2차 대전 후의 미일 동맹, 그리고 9·11 테러 이후의 국제정치의 격변기에도 미국에 대한 보조 등을 최우선 외교적 과제로 삼아 온 현대의 일본 외교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일본은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패권대국이 돌출하면 재빠르게 그 곳으로 다가서며 승자 편승이라는 현실적이며 실리 위주의 외교를 취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2차 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패권세력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 변화를 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한 견제 심리 또한 짙게 배어 있는 하토야마 수상의 동아시아공동체 제안이나 아시아 중시 정책에 이어 미일동맹의 포괄적 재검토 거론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엽의 패권에 대한 일본의 '계산'이 마무리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본은 또 다른 외교적 변신에 돌입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일본 외교는"원활한 대미관계 유지가 최대 목표"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제 공헌이라는 미명하에 쏟아 부은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로부터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한 '2중대'일 뿐, 일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참담한 대가를 치르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21세기의 일본외교에 있어 가장 절실한 국가 목표, 국익의 정립 그리고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도 근간이 되고 있는 미국 위주의 일본 외교에 대한 총체적 성찰이 이뤄지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일본은 과연 어떠한 외교적 좌표를 지향해 나갈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본 외교의 3대 핵심 축, 즉 미일 관계 중시, 아시아 중시 및 유엔 등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 외교라는 3대 좌표와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다양한 문제를 노출시켜 온 미일 관계임을 고려할 때, 중차대한 돌발 변수가 발발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와 같은 '특수한' 미일 관계는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미 관계 이완에는 그 한계 또한 뚜렷하기만 하다. 천연 자원 빈국 일본으로서는 자유무역이 절실하며 이러한 상황은 전세계적 자유무역체제의 확산을 기치로 하고 있는 미국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이웃에서 부상 중인 중국에 대한 경계와 견제 등을 고려할 때도 미국과의 협력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미일 관계를 재조정하려 하는 일본이지만, 미일 동맹 유지를 통한 미국과의 협력 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패권대국에 대한 영합이라는 일본 외교의 특징에 비춰볼 때, 일본은 G2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더욱 발 빠르게 다가서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중 접근은 패권대국을 재빠르게 영합하고 그에 편승한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먼저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지만, 아직은 좀 더 미중 양국의 역학관계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웃하고 있는 중일 양국은 고대시대부터 줄곧 라이벌 관계를 전개해 왔으며 일본의 중국 대륙 침탈이라는 근현대사의 기억은 아직도 양국 국민 사이에서 선하기만 하다. 바로 이와 같은 점들이 중국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일본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일본은 미일 관계 재설정과 중일 관계 강화와 동시에, 향후의 중심축을 특정강대국을 축으로 하는 양자 위주 정책에서 다자 위주 정책으로 전환시켜 나갈 것이라 여겨진다. 다시 말해 더 이상 특정 패권세력과의 관계를 토대로 하기보다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의 관계를 더욱 중시함으로써, 그 속에서 비패권 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얼굴이 보이는 외교를 지향해 나갈 것이라 전망된다.
이에 비춰볼 때, 현재 우리의 외교전략은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의 외교는 2010년 G20 정상회의의 한국 유치 및 최근의 신아시아 외교 시대 등, 다자 외교 부문에서 전례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주로 강대국을 상대로 하는 양자 외교 부문에서는 우려할 만한 실수를 초래하는 등, 안타까운 면 또한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에게는 한미 관계만큼 중요하게 된 한중 관계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고려할 때, 한미 관계의 중요성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또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에 있어 경제 관계뿐 아니라 그 정치외교적 위상 또한 급격히 강화되고 있는 한중 관계에 대한 영향은 더더욱 초래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미 관계의 '복원' 과정에서 초래된 한중 관계의 '소원'은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더욱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한중 관계의 소원 현상 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더 이상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 속내를 파악하기 힘든 함의로 정평이 난 중국 외교부 대변인조차 일찌감치 "한미 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직설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현 정부의 외교 분야 고위라인 중에는 "한중 관계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나쁘다는 것인가?"라며 짜증내듯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외교 고위라인의 중국 무지 및 대중 불감증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 들어 우리의 대중 외교가 이와 같이 적색등을 점멸하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울러 그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편식이나 편중, 즉 어느 하나로 지나치게 기운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외교의 고위라인은 과거 미국 유학생 출신 등에 의한 편재가 극심하다. 바로 이와 같은 외교라인의 편중 현상에서 한중 관계가 정체되고 후퇴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냉전치하에 공산사회주의를 적대시 하던 미국에서 유학한 그들이 특히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의 문화 및 관습과 정서 등에 대해 제대로 알 리가 만무하다. 아니 더 나아가, 공산사회주의권에 대해 모르고 더 나아가 관심조차 지니지 않았던 그들로 하여금 이들 국가들의 속내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함의'와 '행간' 등을 분석해내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부터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는 그에 걸맞는 자유민주적 외교시스템이 절실하다. 다양한 견해와 이견, 그리고 반론 등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자유민주적 외교시스템 속에서 이들이 대화와 토론, 양보와 타협 등을 거쳐 보다 나은 외교정책적 대안으로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현재 우리 외교 고위라인의 특정국 출신 위주의 편재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도 때마침 전개되고 있는 일본 외교의 그 외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그려내게 된 외교라인의 내적 변화 등도 면밀하게 파악하고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일본이 추구하고 나선 일본의 일본답지 않은 모습의 전모는, 향후 우리가 보다 더 다원화된 자유민주적 외교 시스템 속에서 보다 더 균형 잡히고 세련된 외교 정책을 이행해 나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참고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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