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역문화전시회에 작품을 한 점 찬조출품을 했다. 그냥 전시회를 빛내기 위한 초대작가로서 작품을 찬조출품한 것인데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은 형식으로 1미터의 사각등형식으로 만들었다.
보통 붓으로 쓰인 먹글씨, 먹그림의 서예작품은 표구의 방식으로 액자, 족자, 서각이렇게 표현되지만 나는 좀 더 생활속에 밀착되는 친근한 문화로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티셔츠나 등으로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접수받는 담당자와 관람객 중 어떤 분의 반응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양상도 있었다. 더러는 좋다는 반응이었지만 좀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이 작품은 얼마예요?" 하고 작품에 대한 느낌보다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가격을 묻는 것이었다. 구입의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호기심에서 말이다.
어떤 분은 구입의사가 있다면서 측근을 통하여 실제 제작한 제작원목값과 표구비와도 안맞은 금액을 마음대로 생각해서 제시한 분도 있어 씁쓸했지만 이번의 출품은 팔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그냥 찬조전시라 비매품이라고 해명했다.
작가로서 작품을 제작하면서 기쁘고 좋은 일 하나가 누군가의 가슴에 공감되고, 누군가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다. 내 마음을 쏟아 내 마음의 여백과 영혼에 날개를 달아준 예술작품들이 보다 많은 가슴들에게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그래서 이곳 저곳 순회 전시회를 개최하고 여기 저기 심지어 바다건너서라도 초대와 찬조가 들어오면 흔쾌히 응하는 것이다. 대부분 전시를 하고 초대를 받으면 작품이 팔리고, 그러면 그 팔린 작품값으로 다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들 입장에서는 상당수가 작품판매비로만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전업작가는 드물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평일에는 직장다니고 주말이나 밤시간을 활용해서 작품을 제작한다.
이번에 기쁘고 좋은 일 하나가 생겼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서 매입한 작품이 내년도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이다. 비록 돈 한 푼 받지 않고 작품이미지만 실어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리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아마도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수십, 수백 만명의 사춘기 소녀, 소년들이 보는 교과서이고 그 중에 단 몇 이라도 내 작품으로 인해서 붓길이라는 지평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중증청각장애소녀가 33년 전에 운보 김기창의 그림을 보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동양적인 수묵과 붓길에 눈을 뜬 것처럼......
살아가야 할 길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붓으로 만들어가는 작품과 나는 서로가 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해야 할 작품이 있을때 시간의 힘은 나를 일으켜준다.
마치 집안에 폭풍이 들어서듯 집안이 큰 불행한 일이 닥쳤을때도 돌아가신 엄마가 우리들을 먹이기 위해 눈물을 훔치면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밥을 앉히려 부엌에 들어가신 것처럼....
이렇게 붓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한 번씩 좋은 소식을 들려줄 때 엄마는 덩더실 춤을 추면서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신 엄마의 마음은 딸들에게 대물림 한 것 같아 감사하다.
2009.11.08 16:4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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