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 좋아 목련나무'를 아시나요?

우리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아이들

등록 2009.11.11 17:22수정 2009.11.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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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생태길눈이 활동(오마이뉴스 '마을생태 길눈이'가 지구를 지킨다 참조)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을생태길눈이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사는 청년 여덟 명이 모여 우리 마을에 어떤 식물이 사는지 조사하는 모임입니다. 그동안 몰랐던 나무 이름을 알았고, 나무에 얽힌 재미난 옛이야기까지 배웠습니다. 우리 마을을 구석구석 살피고, 자연을 담은 노래도 많이 배웠습니다.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 일본목련 나무다. 춘향이를 좋아하는 몽룡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라고 지었다. 9월 중순 일본목련나무는 빨간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일본목련 나무다. 춘향이를 좋아하는 몽룡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라고 지었다. 9월 중순 일본목련나무는 빨간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고영준
▲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 일본목련 나무다. 춘향이를 좋아하는 몽룡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라고 지었다. 9월 중순 일본목련나무는 빨간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 고영준

 

사실 서른이 넘고 아이까지 키우면서 어린 아이들이나 부를 법한, 동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게 처음엔 살짝 어색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떤 나무와 풀, 꽃이 사는지 찾아보는 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내 속에서도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다 똑같은 나무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이 나무와 저 나무가 어떻게 다른지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배워가는 낙이 큽니다. 덩달아 우리가 사는 마을이 더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 중 '나무노래'는 전래노랫말을 현대감각에 맞게 다듬어 탄생한 동요입니다. 노랫말이 무척 재밌어 노래를 하다 다 같이 웃음보가 터집니다. 이렇게 재밌는 노래는 어떤 어른이 들어도 웃음 짓게 만들지요. 기존 나무노래 가사를 바꿔 우리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편집했습니다.

 

산책을 나가기 앞서 채집통을 나누어 준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나뭇잎을 채집할 통이다.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날카로운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어깨끈을 만든 통이다.
산책을 나가기 앞서 채집통을 나누어 준다.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나뭇잎을 채집할 통이다.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날카로운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어깨끈을 만든 통이다.고영준
▲ 산책을 나가기 앞서 채집통을 나누어 준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나뭇잎을 채집할 통이다.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날카로운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어깨끈을 만든 통이다. ⓒ 고영준

 

우리 마을 나무로 노래 지었어요

 

'아름다운마을(인수동) 나무노래'

1절

가자가자 감나무 나리 나리 개나리

바람아 불어라! 대추나무 랄라~랄라~라일락

부채 닮은 은행나무 손바닥 닮은 단풍나무

여길 보세요 주목나무 향기 좋아 향나무

2절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

목에 좋아 모과나무 울고 넘는 박달나무

털 복숭이 복숭아나무 다섯 동강 오동나무

앵도라진 앵두나무 친구하자 벚나무

3절

하나 둘 셋 넷 산수유 버들강아지 버드나무

목에 결려 가시나무 아이 시어 매실나무

이놈 때끼놈 대나무 거짓말 못해 참나무

앗! 따가워 아까시아 바람 솔솔 소나무

4절

솜사탕 향기 계수나무 느릿느릿 느티나무

.....(아이들에 의해 계속 작성중)

마을 아이들에게도 이 노래를 알려주었습니다. 어른인 나도 다 못 외우는 이 노래를 기껏해야 대여섯 살 아이들이 며칠 뒤에 줄줄 외워왔습니다. 나는 아직도 마을학교 벽에 붙여놓은 가사를 보고 부르는데 말입니다. 어린이들 기억력이 어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율동은 미처 생각 못했는데, 아이들이 즉석에서 만들어 냈습니다. 참 기특했습니다. 생태길눈이들 모두 놀라는 눈치입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아이들이 우리보다 한수 위입니다. '머리', '몸', '마음' 중에 '머리' 키우기만 강요받아 온 우리 모습과 비교됩니다. 아이들은 볼수록 신비롭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과 산책하며 나무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1절부터 3절까지 쉬지 않고, 까먹지도 않고 신나게 부릅니다. 지금은 새롭게 발견한 나무가 추가되면서 4절도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 부채 닮은 은행나무!"

 

채집통에 계수나무 잎을 모은 자연이 짜잔~! 저 계수나뭇잎 주었어요. 계수나무는 솜사탕 향기가 나요. 그래서 솜사탕 향기 ~ 계수나무에요.
채집통에 계수나무 잎을 모은 자연이짜잔~! 저 계수나뭇잎 주었어요. 계수나무는 솜사탕 향기가 나요. 그래서 솜사탕 향기 ~ 계수나무에요. 고영준
▲ 채집통에 계수나무 잎을 모은 자연이 짜잔~! 저 계수나뭇잎 주었어요. 계수나무는 솜사탕 향기가 나요. 그래서 솜사탕 향기 ~ 계수나무에요. ⓒ 고영준

 

'여길 보세요! 주목나무', '하나 둘 셋 넷 산수유', '솜사탕 향기 계수나무' 등은 어른들이 봐도 잘 모르는 나무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무 앞에서 '자 이건, 앗! 따가워 아카시아!'라고 한 번만 알려줘도 단번에 배우고 까먹지도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치켜들고 나무를 봅니다. "선생님! 부채 닮은 은행나무!", "춘향이 좋아 목련나무!"라고 귀가 따갑게 말합니다. 아주 재미 붙였습니다.

 

매주 한 번씩 채집통(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날카로운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어깨끈을 만든 통)을 들고 마을을 돌며 나뭇잎과 열매를 주워옵니다. 마을 어느 곳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알아봅니다. 나뭇잎 생김새, 촉감, 향기 등을 살피고 느끼면서 나무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어린이가 직접 만든 나무도감 나뭇잎을 주어 종이에 붙이고, 이름을 쓴다. 나뭇잎 모양대로 그려보고, 촉감도 느껴본다. 관련된 나무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나무와 친숙해 진다.
어린이가 직접 만든 나무도감나뭇잎을 주어 종이에 붙이고, 이름을 쓴다. 나뭇잎 모양대로 그려보고, 촉감도 느껴본다. 관련된 나무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나무와 친숙해 진다.고영준
▲ 어린이가 직접 만든 나무도감 나뭇잎을 주어 종이에 붙이고, 이름을 쓴다. 나뭇잎 모양대로 그려보고, 촉감도 느껴본다. 관련된 나무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나무와 친숙해 진다. ⓒ 고영준

 

주워온 나뭇잎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자기만의 '나무도감'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뛰놀았던 마을에 늘 함께 있었지만 관심을 갖고 보지 않았던 친구들(나무들)을 정성스레 알아가고 만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뭇 생명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능력이 아이들에게서 잘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
#나무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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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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