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마네킹 이방 집에 묵어 가세요

모두 민속자료... 한 곳은 출입금지, 한 곳은 민박 개장 임박

등록 2009.11.20 10:17수정 2009.11.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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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 동헌에는 마네킹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이 중에서 작은 갓을 쓰고 두손을 모으고 서로 마주한 사람들이 이방과 형방이라 부르며 이들의 집은 낙안읍성내에 있었다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 동헌에는 마네킹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이 중에서 작은 갓을 쓰고 두손을 모으고 서로 마주한 사람들이 이방과 형방이라 부르며 이들의 집은 낙안읍성내에 있었다서정일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을 방문한 사람 중에서 낙안군수가 집무했던 동헌을 건너뛰고 관람을 마친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동헌은 대로변 중심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와를 얹은 가장 큰 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내서에도 필수코스로 나와 있기에 누구나 한 번쯤 방문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곳에 가 보면 동헌마루에는 낙안군수가 의자에 앉아있고 그 아래 무릎을 꿇고 붓으로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과 마루 아래에서 양 옆으로 공손하게 서 있는 두 사람 그리고 죄인인 듯 포박을 한 사람과 포졸이 마네킹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 마루 바로 아래에서 흰 도포자락에 작은 갓을 쓰고 양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이 바로 이방과 형방이라 부르는 향리(아전)다. 이들은 군수처럼 외부에서 부임해 온 사람이 아닌 현지인들이었다고 한다. 즉, 낙안읍성이나 낙안군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궁금해 하지 않을 사람도 있지만 호기심 많은 관람객을 위해 곽형두 가옥과 박의준 가옥임을 밝혀둔다. 이 두 가옥은 낙안읍성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아홉 채의 가옥에 포함된 곳이다. 덤으로 하나 더 얹는다면 낙안읍성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오는 첫 관문인 매표소도 중요민속자료 가옥이다.

 중요민속자료 100호 곽형두 가옥, 향리가 거주하던 집 중에 하나였다
중요민속자료 100호 곽형두 가옥, 향리가 거주하던 집 중에 하나였다서정일

중요민속자료 100호인 곽형두 가옥은 남문 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군악대가 쓰고 있는 보존가옥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현재 집주인은 이모씨다. 정원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놓았고 돌탑도 여러 개 쌓아놓았다. 하지만 출입금지다. 개인 소유로 민박조차 하고 있지 않기에 집주인의 허락을 맡아야 구경을 할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 집은 19세기말에 건축된 한일자 4칸 전후좌우 툇집으로써 가운데에 대청을 두는 전형적인 남도 형식의 집인데 머리퇴와 두퇴에도 툇마루를 깔았다. 예전에는 전면과 우측면 등의 툇마루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0년 전 개축되면서 길이가 작아지고 그 사이가 분절되었다.


실 배치 순서는 전면 4칸에 좌측부터 부엌과 방, 대청, 방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큰방과 대청은 벽을 틔워 크게 사용하고 있고, 대청 위로는 벽장이 위치한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서 굵은 부재를 사용한 양반 가옥의 한 예이다. 기둥머리는 사개맞춤인데 보머리에 받침목을 끼워 보를 받쳤으며 장려는 받침목과 함께 맞추었는데 이런 수법은 고식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짜임새를 갖추었으며 구조 기법 역시 양반가옥의 법식을 따르고 있다'고 돼 있다. 한눈에도 집이 높고 여느 초가집과는 차별화된 느낌이다.


 중요민속자료 92호 박의준 가옥, 향리가 거주하던 집 중에 하나였다
중요민속자료 92호 박의준 가옥, 향리가 거주하던 집 중에 하나였다서정일

곽형두 가옥의 사립문은 닫혀 있는 반면 최근 민박을 위해 부산하게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는 중요민속자료 92호 박의준 가옥은 머지않아 대문을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 민박집으로 개장한다면 낙안읍성내에서 가장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는 집이기에 여름이면 마당이나 뒤뜰에서 놀이도 즐길 정도로 괜찮은 민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집주인은 김 모씨인데 명칭을 '향리민박'이나 '이방민박집'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박의준 가옥에 대한 기록은 '1979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으며 옥사와 이웃하고 있는 집인데 성 안의 집들 중에서 제법 멋을 부린 집이다. 안채와 아래채가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서남향집이며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마당이고 오른쪽으로 안채가, 맞은편으로 아래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부엌, 안방, 안마루, 건넌방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방과 안마루의 기둥 사이는 조선시대 때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넓이를 준수하고 있는데, 부엌 칸은 오히려 넓게 잡아놓았다'고 돼 있다.

지난해부터 복원을 시작한 박의준 가옥은 아래채까지 민박용으로 깨끗하게 단장을 해 놓았는데 단지, 새롭게 복원해 놓아 옛 맛이 덜하다는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향리 집이었던 만큼 면적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이다.

낙안읍성을 재미있게 관람하고 의미 있게 돌아보려면 마네킹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여보고 그들이 또 어디에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본다면 가칭 '이방민박집'처럼 뜻하지 않게 넓고 편안하게 하룻밤을 묵고 가는 횡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남도TV #이방 #형방 #낙안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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