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국회는 비민주적

등록 2009.11.21 16:55수정 2009.11.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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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춘석 의원 : 권한침해는 인정하면서 미디어법은 무효가 아니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위법행위가 있어야 무효라는 것입니까?
하철용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이번 헌재 결정 어디에도 유효라고 한 부분은 없습니다.
우윤근 의원 : 헌재 결정은 (절차적 하자 문제를) 국회 스스로 시정하라는 것 아닙니까?
하철용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입법 형성권을 가진 입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결정문의 취지입니다.

2009년 11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의 질문과 헌법재판소 하철용 사무처장의 답변이다. 헌법재판소의 입장표명 이후, 신문법과 방송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상황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합법을 주장하는 여권의 입지가 약화되고, 불법을 주장하는 야권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권의 합법과 야권의 불법이 대치하는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민주주의에 부합되는가? 국회는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가? 국회가 민주주주를 거부하면, 누가 국회를 통제할 것인가?

헌법재판소 판결은 민주주의에 부합된다

2009년 10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야 4당 국회의원 92명이 청구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단 간 권한쟁의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신문법과 방송법의 가결을 선포한 국회의장(대리)의 행위가 야당의원들의 심의권․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주장을 각각 7 : 2와 6 : 3으로 인용했다. 그러나 신문법과 방송법을 가결하고 선포한 국회의장(대리) 행위가 무효라는 야당의원들의 주장을 각각 6 : 3과 7 : 2 으로 기각했다. 나아가 '결정의의'에서, "국회 입법절차의 하자가 국회의원의 법률안에 대한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는 사회적 시각은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즉 ①절차상 하자를 지적하고도 무효를 선언하지 않았으므로 사법책무를 포기했다는 관점, ②절차상 하자가 미미하여 법률의 무효를 선언하지 않았으므로 사법책무에 충실했다는 관점, ③야당에게는 명분을 여당에게는 실리를 부여했으므로 원칙과 현실에서 타협했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위임민주주의이며, 우리나라도 이 범주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이다. 위임민주주의에서 국민은 ①정부형성과 교체, ②지도자의 선택과 교체, ③통치의 근본조건 선택, ④특정한 법률제정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자신의 대표자에게 위임한다. 선출된 대표자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게 되며, 이들이 바로 관료(공무원)이다.

위임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가 소속된 기관이며, 헌법재판소는 대표자에 의해 선발된 관료가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국회와 관계에서 헌법재판소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회가 제정․개정한 법률에 대한 위법성과 유무효를 판단할 수 있어도, 법률제정 및 개정 과정을 기준으로 결과의 유무효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제정 및 개정 과정은 헌법재판소가 넘볼 수 없는 신성한 국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사법 소극주의)은 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 헌법재판소가 절차상 하자를 무효결정으로 연결시켜야 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법 적극주의는 관료가 국민의 위에 군림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경우라도 선발된 자가 선출된 자의 우위에 서는 상태를 용납하지 않는 이념이다.

국회의 행태는 비 민주주의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의 절차적 위법성을 분명하게 지적했지만, 정족수 미달로 동법을 무효화시키거나 취소시키지는 못했다.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취지는 재개정이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결정의의>와 헌법재판소 하철용 사무처장 및 이석연 법제처장의 해석을 살펴보면, 이러한 결정취지를 파악할 수 있다(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문장이 어색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 둠).

(1)헌법재판소 결정문 : 질의․토론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점, 표결절차에서의 공정성의 흠결,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한 점 등 … 하자 있는 심의․표결절차에 터 잡아 이루어진 법률안 가결선포행위가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고…(헌법재판소의 결정문 결정의의).
(2)헌법재판소 노희법 공보관 : 권한 침해를 확인한 이번 결정도 그러한 지속력이 있음은 당연합니다. 그 다음은 피청구기관인 국회의장이 헌법재판소 결정취지에 따라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2009년 10월 29일 YTN과 인터뷰).
(3)헌법재판소 하철용 사무처장 : 이번 헌재 결정 어디에도 유효라고 한 부분은 없습니다. (절차적 하자는) 입법 형성권을 가진 입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결정문의 취지입니다(2009년 11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답변내용)
(4)이석연 법제처장 : 속히 국회가 (위법사항을) 풀어줘야 합니다(2009년 11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답변내용). 국회에서 절차적 흠결을 치유하도록 최대한 인내를 갖고 시행령 심의를 기다리겠습니다(2009년 11월 19일 야당의원들과 면담내용).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는 ①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의 절차적 위법성은 인정되지만, ②국회 고유의 영역인 절차적 과정을 위법의 근거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③국회가 신문법과 방송법을 재개정해서 위법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유효와 야당의 무효 주장만 있을 뿐,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가 이행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방송법의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유효하다는 논리로, 헌법재판소의 한계에 빌붙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동 법의 개정절차가 위법하므로 무효라고 주장을 하면서, 부작위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책이나 법안은 '토론과 합의' 내지 '토론과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토론의 목적은 일방성과 편향성을 제거하고 의문을 확실에 근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토론에서 ①선거의 지지율, ②시대적 적합성, ③현재 국민의 소망, ④현재 지지율, ⑤ 여야의 토론능력이 반영되어야 한다.

2009년 7월 22일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을 앞두고, 국회에서는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토론 후 합의나 다수결'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책을 100% 관철시키려는 한나라당과 야당이 대립한 결과, 야당의원들의 심의 및 표결권이 침해된 가운데 신문법과 방송법이 통과되었을 뿐이었다. 2009년 11월 16일 헌법재판소 하철용 사무처장과 이석연 법제처장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취지에 따라 국회가 위법사항을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헌법재판소의 한계에 기대고 있고 민주당은 어떤 양보도 하려하지 않고 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하루빨리 위법요소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①선거의 지지율, ②시대적 적합성, ③현재 국민의 소망, ④현재 지지율을 반영하는 협상과 토론을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주장을 더 관철시키는 문제는 양 당의 협상 및 토론능력에 달려 있다.

국회가 민주주의를 거부하면, 국민이 국회를 통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가운영을 위임하는 정치체제이다. 선출된 대표자는 ①주권자인 국민의 권위를 세우며, ②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③국민의사의 집합체인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문제는 한번 선출한 대표자를 임기 중 교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표자의 이러한 행태를 견제하는 장치에 소홀하지 않다. 즉 여론․압력집단․이익집단․시위 등을 통해, 대표자를 통제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과정에서 ①을 행하지 않았다. '토론 후 합의 내지 토론 후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결정원리를 무시했으며, 입법절차라는 국회 고유의 영역을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넘겼기 때문이다. ②를 행하지 않았다.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지 않은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재개정을 바라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③을 행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와 법제처가 국회 스스로 절차적 위법사항을 해결하라고 주문하지만, 국회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국회가 민주주의를 거부하면 국민이 통제해야 한다. 먼저 여론을 조직해야 한다. 여론을 조직하는 매체는 언론이다.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어 있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단합할 시점이다. 다음으로 압력집단과 이익집단이 실력을 행사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분열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목적 아래 뭉칠 필요가 있다. 시위는 국민이 대표자를 통제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합법과 불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자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시위는 불법이 아니라 합법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재영 기자의 블로그 http://www.defense.kr 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재영 기자의 블로그 http://www.defense.kr 에 실려 있습니다.
#미디어법 #방송법 #신문법 #헌법재판소 #방송법 재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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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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