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놀멍 쉬멍 걸으멍 간세다리가 될수 있는'(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게으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제주도의 올레길이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하나된다는 것. 그것은 묘한 매력이다.
올레란 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좁은 오솔길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다. 아무생각 없이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터인데 자연과 함께하는 오솔길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좋다 해도 단순히 걷기 위해서 제주도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비용도 만만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을 내기도 마땅치 않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경남 남해군에 있는 '아직은 미흡한' 올레길을 소개하려 한다. 자연이 만든 오솔길이 미흡하다는 것이 뭔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정표도 없고 시·종점이 완벽하지 않아 미흡하다는 표현이 딱 적당하다.
남해의 올레길은 창선면의 적량마을과 천포마을을 잇는 농로-오솔길이다. 이 구간을 올레길로 만든다는 것은 김평수 창선면장의 전략사업으로 내년께부터 본격적인 보수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적량마을 보건소를 찾았다면 올레길이 바로 코앞이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주택들 사이로 난 골목길, 올레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가득하다. '산책'이 아니라 '등산'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약간 가파른 골목길을 지나면 농로로 접어든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 그것이 적량-천포를 잇는 4킬로미터 올레길의 시작이다.
천천히 걷고 자연을 즐기는 데 왠 시멘트 길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농로로 이용하고 있는 곳으로 아직 올레길을 본격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조금만 들어가면 시멘트길이 아닌 흙길이 나온다.
제주의 올레길은 아직 가보지 않았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해안을 따라 가는 길이라 바다와도 연접해 있고 주변이 탁 트여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선 올레길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병풍처럼 솟아오른 산을 옆으로 우회하는 코스다. 끝없이 이어진 올레길은 왼쪽에 푸른 산이 끝없이 이어지고, 오른쪽에 펼쳐진 넓은 바다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맑은날 이곳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에 삼천포는 물론 고성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망망대해가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곳곳에 섬이 들어서 있고, 반대쪽 육지까지 훤히 보이는 바다도 나름의 멋이 있다.
시멘트 길을 20여분쯤 걸었을까, 큰 밤나무가 나타난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곳. 예전에 트럭과 경운기가 많이 지나다닌 듯 차량 타이어부분에는 흙이 드러나 있고, 가운데에는 무성한 풀들이 자리잡고 있다.
흙길과 무성히 자란 풀들을 헤쳐나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주변에 거미줄이 가득한 것이다. 거미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곤충 신세가 될까봐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 휘휘 휘두르고 다닌다.
아직은 올레길로서는 부적격이다. 주변의 풍광은 아주 아름답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는 여전히 시원하다. 길도 합격점이다. 그다지 가파르지도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자연과 동화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아 멋진 풍광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가로막고, 풀숲의 이슬은 바짓단을 적시고, 거미줄은 온몸을 휘감는다.
갈수록 가관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지 꽤 오래된 듯 거미줄이 움직임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온몸이 거미줄 투성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을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은 거미줄에 괴롭지 않겠지(사실 거미는 30분이면 새롭게 집을만든다고 한다).
한시간 가량 걸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집 한채와 코스모스가 활짝 핀 길, 시야 속에 집이 들어오자 끝이 보이는 듯하다. 4킬로미터는 그다지 멀지 않다는 생각에 벌써 다왔다며, 산책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해 본다.
끝이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오르막이 계속된다. 저기 너머로 넓은 고사리밭과 산 정상이 보이고, 길은 그곳으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안좋은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 대한민국 비만아(필자는 남해에서 잘먹은 탓인지, 지난해 남해에 온 이후 비만체중을 유지하고 있다)로서는 조금 힘든, 그렇지만 오르지 못해 포기할 정도는 아닌 오르막이 한동안 이어진다.
눈앞에 펼쳐진 정상,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창선-삼천포대교와 삼천포화력발전소, 푸른바다, 그리고 이때까지 걸어왔던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시야에 나도 모를 자신감과 자부심이 속에서 꿈틀댄다.
한시간 반가량 걸었을까, 이제는 정말 끝인 듯하다. 야트막한 언덕 왼쪽으로는 시커먼 아스팔트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나있지만 이어지는건 가파른 내리막길, 천포마을로 이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은 선약이 있어 가보지는 못하겠다.
시커먼 아스팔트 길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오니 연곡 송정마을. 농사를 짓던 어르신들에게 적량에서 왔다니 역시 젊은게 좋다고 하시며 놀라신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건만.
그래도 예비군 훈련을 제외하곤 잘 걷지도 않은 탓인지 삭신이 쑤신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올레길을 다녀보니 아직은 미흡하다. 나무로 인해 시야도 가리고 중간중간 갈림길에 표지판도 없다. 하지만 못갈 길은 아니다. 큰 길은 하나밖에 없기에 길따라 흘러가다보면 금세 끝까지 오게 된다.
간단히 계획을 잡아 가족들과 함께 남해의 풍광을 만끽하며 한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길은 사람이 다니면 자연스레 닦이는 법이니.
2009.11.25 17:06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걷기 좋은 길은 제주에만 있다? 남해에도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