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왕을 보는 또 다른 새롭고 의미있는 시각

[서평] 신명호, 왕을 위한 변명

등록 2009.11.27 11:27수정 2009.11.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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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도서 : 신명호, <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우리 역사와 문화의 올바른 이해의 한 지름길, 궁중문화

 

내가 대학에 들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식민주의사관을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 또래 학생들이 가졌던 관심과 다소 동떨어진 이유였다. 90년대 중, 후반에도 학생들은 민중이나 투쟁이라는 단어 등에 익숙했다. 물론 그 흐름 또한 의로운 흐름이었음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올바른 역사와 문화의 길이 식민주의사관을 깨는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쪽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고구려나 백제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달리 신라와 불교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또한 고려에서도 광종과 최승로, 서희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식민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의 시각은 2000년대 초반 조선왕조 초기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중기와 후기로 이어졌다. 바로 그 때 나는 궁중기록문화의 참으로 놀랍고도 무서운 역량의 매력에 흠뻑 빠져 궁중문화와 왕조의 정점인 국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공부가 이제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사관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궁중문화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국왕(國王)이 한 왕조의 최고 통치자이자 정점이며, 궁중문화가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라는 저 평범한 사실 때문이었다. 올바른 우리 역사와 문화의 이해를 위한 첩경이 바로 이에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일본은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황실 인물들의 상을 철저히 왜곡시켰으며, 황실의 유물, 유적들을 파괴, 변형, 왜곡시켰던 것이다. 조선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던 경복궁에 식민통치의 본산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섰던 것, 궁궐이 속절없이 파괴되었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제모습을 찾고 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국왕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내용이 바로 국왕과 그 국왕의 업적에 관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사극을 보아도 궁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거의 대다수임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왕을 대단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국왕을 잘 알까? 사실 우리는 국왕을 전혀 모른다.

 

지식을 다루는 유명한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무신정권을 이룬 대표적인 한 사람인 최충헌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얻은 호의 글자 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았으며, 그것을 방송하면서 버젓이 고급 지식인 양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것을 찾아내었던 초등학생에게는 경의를 표하면서도, 나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영조(英祖)가 받은 존호(尊號)라든지 고종 때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던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 趙氏)가 받은 존호의 글자 수만 봐도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못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식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와 같이 국왕의 호의 글자 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국왕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만용이며 무모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우리에게 국왕을 보는 또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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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 강경순

▲ 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 강경순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

 

저자는 잘 아시다시피 궁중문화(宮中文化, 王室文化)를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 또한 그의 책을 읽음으로써 궁중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책들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궁중문화에 관한,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쉽고 흥미 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여러 저작들과 비교해도 이 책은 참 독특한 면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국왕을 다루었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국왕을 다룬 글이나 책들을 보면 국왕의 생애의 전반을 언급한 다음 국왕이 이룬 업적과 그 역사적 의의에 치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국왕의 업적이나 그 역사적 의의에 관한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국왕이 즉위하기까지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역정이라든지 역사적인 격변기 속에서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한 인간으로서의 국왕의 모습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글쓰기는 어찌 보면 상당한 위험(?)을 담보로 한다. 기록의 행간을 들추어보는 작업은 물론 역사학자들이 일상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행간이 국왕의 내면의 모든 것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러한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했다. 그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제대로 파고들지 않고서는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뿐더러 그러한 역사 이해는 무의미한 작업일 뿐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여느 대중서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흔히 일반인들이 쓴 국왕에 관한 책들을 보면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다루는 속에서 사료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함은 물론 근거도 없는 사료를 가지고 온다든지 사료에 대한 철저한 비판 없이 무분별하게 인용하여 이것이 도대체 제대로 된 책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탁월한 면을 지닌다 하겠다. 저자는 이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통찰을 반드시 사료에 근거해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해석하고 있다. 이 점은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맞물려 더욱 탁월하고 돋보인다 하겠다.

 

독자의 판단으로 미룰 때는 더욱 신중하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대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장 아쉬운 점은 어떠한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우유부단한 것이다. 이 책을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 그 시대의 역사상, 문화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하기가 여건상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이다. 그 때 하나의 문제를 독자의 판단으로 미룰 때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서 영조에 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부담을 지니고 있던 것이 있었다. 하나가 미천한 신분인 숙빈 최씨(淑嬪 崔氏)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다른 하나가 경종 독살설에 대한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저자는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의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진심으로 이복형 경종에게 감사해하고 또 미안해했다. 실제 영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경종 때문이었다. 그것이 경종의 호의와 양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영조의 음모와 술수에 의한 것인지는 영조와 경종 단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문제이다. (하략)

 

(상략) 그런 면에서 영조가 '형님의 지극한 우애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오늘까지 살았으랴.'라고 언급한 것은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혹 이런 말이 지난날의 악업에 대한 반성이었다면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참회와 자기개발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런 말이 진실이었다면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명호,『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329~330쪽)

 

물론 이 시기가 당쟁이 격심한 시기이고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숙종 때 정국이 일시에 바뀌는 환국이 여러 번 일어났는데, 이를 서인과 남인의 권력다툼과 그 속에서의 당쟁이라는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일본은 식민주의사관을 바탕으로 이를 당쟁의 전형이라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 바로 환국의 중심에 있었던 숙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숙종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그 전대왕인 효종과 현종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서인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의 잘못한 점을 거침없이 꼬집었음은 물론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국을 바꾸는 기사환국 때는 그를 사사하기까지 했다. 이는 숙종의 대담함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국의 주체는 서인이나 남인이 아닌 바로 숙종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왕과 그 왕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더불어 이 시대의 수많은 정황들이 경종의 독살설 또한 하나의 가설이요 상상일 뿐임을 알게 해준다. 영조가 재위 기간 내내 보여주었던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과 자신의 이복형을 독살했다고 하는 그 이중성은 너무나 배치될 뿐이다.

 

 

저자의 위와 같은 문제 제기는 독자가 은연중에 영조가 경종을 독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경종은 영조를 보호했고 영조는 그래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경종의 호의와 양보와도, 영조의 음모와 술수와도 모두 관계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몇 군데 보이는 것은 다소 아쉽다.

 

인물에 대한 꼼꼼하고 폭넓은 고찰의 필요성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책이 지니는 무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도는 매우 참신하며 폭넓다. 물속의 열 길보다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한 길이라고 기록과 그림,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을 온전히 알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한 인물에 대한 꼼꼼한 추적은 그 인물 자체는 물론 그 인물이 살아갔던 시대의 실상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한 왕조를 이끌었던 정점의 위치에 있던 국왕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그러한 국왕의 또 다른 면(특히 내면을 중심으로)을 신빙성 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고 치밀하게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인물과 역사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준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한 사람으로 역사적 인물 연구의 또 다른 지평을 연 하나의 의미 있는 결과물을 대하고 있는 내 마음은 그래서 더욱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과거 두 세 달 전 제 블로그 및 서점의 서평란에 써두었던 글을 부제를 새로 달고 문단과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여 올립니다.

2009.11.27 11:2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과거 두 세 달 전 제 블로그 및 서점의 서평란에 써두었던 글을 부제를 새로 달고 문단과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여 올립니다.

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지음,
김영사, 2009


#신명호 #왕을위한변명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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