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시장 상인들은 어떻게 살까

책 읽는 상인의 이야기

등록 2009.12.01 09:53수정 2009.12.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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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일씨의 모습 매체에 실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돌아 앉아 버린 박원일씨 ⓒ 김수일


문득  죽도 시장에서 장사하는 박원일(67)씨가  보고 싶어서 찾아 갔다. 내가 그를 찾았을 때 상점 안에 꾸며진 조그마한 방에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인사를 하며 들어서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시킨다. 누구에게나 그러했지만 특히 내가 그를 처음 알고 지낸지 꽤 오래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늘 변함없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분이다. 그의 외모나 마음씨와 행동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라고는 도저히 느끼지를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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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박사장이 읽는 책들 ⓒ 김수일


- 요즈음 경기는 어떻습니까.
: 사회에서 떠드는 것처럼 경기가 오르락내리락 하지는 않지요. 장사란 어떤 때는 안 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잘될 때도 있지요. 늘 그만그만해요.


- 죽도 시장이 형성은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요.
; 죽도 시장은 처음부터 행정 기관에서 관리한 시장이 아닙니다. 처음엔 못사는 사람들이 돈이 될까 싶어서 바다에서 건저 올린 고기며 조개 각종 해초 등을 개별로 가지고 나와서 갯벌 위에서 거래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즉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이 형성 되었다고 볼 수 이습니다. 포항의 죽도동 등 남부 일대는 거의가 갈대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비만 오면 진흙투성이가 되어서 파는 사람, 사는 사람 할 것 없이 발이 푹푹 빠졌지요. 그래서 죽도시장 여기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할 정도였다고 해요. 그래서 1954년 죽도시장 번영회가 만들어지고 큰 돌 작은 돌들을 마구 가져다 부어서 차츰 차츰차츰 오늘에 이르게 되고 71년에 시장 개설 허가가 났었지요.

- 죽도 시장의 경기가 좋았을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 육이오 한국 전쟁 이후에서 다음은 해병대 부대가 생기면서 좋아졌고 그리고 70년대에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가장 경기가 좋았지요. 그 이후 꾸준히 경기가 지속 되고 죽도 시장이 활성화를 이루었는데 1990년대에 대형 유동 센터가 들어오면서 재래시장이 내리 막 길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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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가게 모습 불경기 재래 시장에 시장에서도 죽도 시장 어시장은 살아 남아 있다 ⓒ 김수일


- 대형유통 센터가 진입하게 되면서 포항 경기가 나빠졌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그 이유는.
; 유통 센터 즉 대형 마트는 포항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돈이 포항 사람들의 포켓에 있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외지로 빠져 나감으로 인하여 포항의 돈이 그 만큼 줄어들게 되지요. 사실 물건이 더 좋고 값이 싸도 소비자들이 보다 편리하다는 이유와 물건이 깨끗하다는 선입감과 편리하다는 이유로 백화점, 마트로 가게 됨으로서 죽도시장 뿐만 아니라 모든 재래시장이 죽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에 와서 행정지원을 받아 재래시장 현대화를 한다고 비 가리개를 하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어물 시장은 좀 되지만, 그 외 이불장사 옷 장사 기타 장사는 정말 잘 안됩니다. 월 만원씩 내는 번영회비 조차 못내는 형편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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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이 경영하는 상사 손님이 있건, 없건 매일 문은 열린다. ⓒ 김수일


- 제가 알기로는 여기서 장사를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되었고, 그동안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보아 왔을 터인데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성공 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고 거부가 되거나 재벌이 된 것은 아니지요. 그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성공을 했지요. 이들의 공통점이란 새벽별보고 나와서 저녁별보고 집에 가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 세상일 모르고, 노는 것 모르고, 오직 장사만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도 두부류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놀 때 돈 버는데 시간을 다 뺏기고 고생했었지만 이름 내고 다니는 사회 봉사단체 사람들 보다 남모르게 좋은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예를 들어서 00상회 주인 같은 사람들은 12살 어린 나이에 점원으로 출발해서 성공하여 고향에 길 만드는데 고향 어른들 경노 잔치 같은데 많은 금액을 보내는 분도 있어요. 시장 내에 이런 사람들 많아요. 또 한 부류는 돈을 벌어서 쓸 줄도 모르고 쥐고만 있지요. 그러다 보면 자식들에게 다 빼기고 마는 부류 말입니다.

- 시장에 계시면서 장사를 벗어난 재미있는 것들도 많이 보셨을 텐데..
: 벗어 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장사 하시는 어머니와 아이(자식)들 관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고무다라이에 구멍을 뚫어서 끈을 매고 어린 아이를 그 속에 앉혀서 달아나지 못하게 그 끈에 묶어 두고서 아무 점포 앞에 갖다 놓고서 잠시만 봐주세요. 하고 장사하던 아주머니가 계셨지요. 그런데 그 어머니도 점포를 갖게 되었고, 그 때 고무다라이에서 놀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아주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아직도 장사를 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또 하나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지요. 비가 무척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함지박에 채소 몇 담아서 팔던 아주머니가 비를 피해서 점포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면서도  비가 오는 가운데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안절부절 하길래 물었지요. 어린 아들이 학교 갔다가 시장에 오기로 약속했다 하는 것이었어요. 생각해보면 그 때는 어려운 시대라서 아이는 어머니가 장사하는 시장에 가면 먹을 것을 사주시리라 생각 하고 꼭 나올 것이고, 어머니는 그가 장사하는 자리에 자식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어머니 당황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지요.
또 한 가지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파는 노점상 인들은 서로 싸우는 일이 없고 도우고 웃으며 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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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할머니 나이가 들었거나 말거나 먹고 살아야지요 ⓒ 김수일


- 주로 노점상 아주머니들 중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계시던데 고령자의 나이는 어느 정도 되시며, 왜 쉬어야 될 연세에 장사를 하고 계시는지요.
; 상인들 중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 가운데 85세 할머니가 계시는 줄 알고 있으며 80대 할머니들이 몇 분 계시지요. 70, 60대는 젊은 층에 들어가지요. 그리고 장사를 놓지 않는 사람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지요. 첫째는 자식들 때문에 장사를 놓지 못하는 상인들이지요. 특히 자식들의 교육 뒷바라지 하느라 장사를 계속해야 되는 분들이며, 그리고 장성한 자식들이라도 직장이 없고 남편이 계시지않는 분들이 거나 장애자 인 때문이고, 둘째는 자기 생활의 연속인 사람들 이지요. 이들은 젊을 때부터 늘 해 왔으니까. 젊을 때부터 노는 것도 모르고 오직 장사만 해 왔기에 그리고 놀기 보다는 자신이 벌어서 자손들 용돈도 줄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 이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이고 셋째는 가정형편상 자신이 벌지 않으면 끼를 굶고 자손들 학교도 못 보내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이지요. 대부분 보면 결손 가정들이 많고 아니면 장애자 가족들이 거나 대부분 가정이 어려운 상인이지요. 어쩌면 장사가 행복의 생활이고 그들의 꿈인지도 모릅니다.

- 박 사장께서도 장사를 계속 하실 생각입니까.
;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 둘 수가 없어서 여기 나와 앉아 있는 겁니다. 자식들은 배운 만큼 장사보다 편한 직장을 얻어서 사회에 나가 활동 하고 있지요 누구에게 물려 줄 사람도 없고 하여 심심하면 책이나 보면서 손님 오면 나가서 물건도 팔고 이야기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지요. 좀 벌면 봉사 활동도 더 하고요.

* 후반의 선비 같이 깨끗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복지가 확립되는 나라를 맞이하는 것이 소원이며, 그리고 통일이 되면 북한 땅 자유롭게 걸어서 밟으며 구경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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