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악의적 정보 제공으로 준테러범 취급 받았다"

WTO 반대시위 위해 출국한 한국진보연대·전농 관계자들, 강제구금에 입국 거부까지 당해

등록 2009.12.01 14:36수정 2009.12.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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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주제준 진보연대 정책위원은 1일 오전 영등포 진보연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TO 7차 각료회의 대응투쟁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를 방문했다가 불법구금과 인권유린을 당한 사례를 폭로하며 한국정부의 정보 제공 의혹을 제기했다. ⓒ 권우성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주제준 진보연대 정책위원은 1일 오전 영등포 진보연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TO 7차 각료회의 대응투쟁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를 방문했다가 불법구금과 인권유린을 당한 사례를 폭로하며 한국정부의 정보 제공 의혹을 제기했다. ⓒ 권우성

지난달 27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스위스로 출국했던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대표와 주제준 정책위원, 전국농민회총연맹 한도숙 의장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 내린 시각은 11월 27일 밤 10시 30분경(현지 시간).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이 대표 일행의 앞을 스위스 경찰관들이 가로막았다.

 

스위스 경찰은 이 대표 일행 5명과 다른 한국 남성 1명(아버지를 만나러 온 이 남성은 성은 다르지만 주제준 위원과 같은 이름이었다)을 다른 승객들과 분리시켜 한쪽으로 내몰더니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빼앗았다. 당황한 이 대표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스위스 정부에서 이 대표 일행의 입국을 불허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 대표 일행은 곧장 공항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곳에선 더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위스 경찰은 이 대표 일행을 한 사람씩 조사실로 데려가 옷을 내의까지 모두 벗긴 후 알몸 수색을 했다. 심지어는 자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안경과 시계, 신발까지 벗겨갔다. 나중에 스위스 변호사가 이것은 테러리스트들이나 마약사범들을 취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찰서에서 이 대표 일행 중 통역과 여성농민 1명, 스위스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만나러온 한국 남성 1명이 풀려나고 이 대표와 주 정책위원, 한 의장 등 3명은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알몸 수색까지 당해... "테러범·마약사범 취급하는 것과 같은 수준"

 

이 대표 일행이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로 강제 송환될 것이라고 말한 스위스 경찰은 그 이유를 묻는 이 대표에게 "본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다음날 스위스 당국에서 설명할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이 대표 일행은 11월 28일 아침 변호사를 접견하게 해줄 것, 통역관을 만나게 해줄 것,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전화를 쓰게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대신 스위스 경찰은 독일어로 된 판결문을 가지고 와서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이 대표와 주 위원, 한 의장 등에 대해 "여러 차례 한국의 시위법을 위반하고 법 집행에 저항하고 폭력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며 "2005년 홍콩에서 벌어진 폭력시위에 참가한 바 있고, 2008년 도쿄에서 개최된 G8정상회의 기간 중 일본 당국이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바 있다"는 내용이었다. 판결문은 이 같은 정보의 출처로 "믿을 만한 정보원"이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듣고 났더니 기가 찼다. 이 대표는 홍콩과 일본에 간 적이 없고, 주 위원과 한 의장은 홍콩에는 갔지만 일본에는 가지 않았던 것이다. 왜곡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스위스 당국이 입국을 금지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 대표 일행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현지 영사관의 대응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김 아무개 영사가 유치장을 찾아온 것은 11월 28일 저녁 8시경. 스위스 경찰에 억류된 지 22시간 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 홍 아무개 국장이 이미 28일 새벽 한국 영사관에 이 대표 일행이 스위스 당국에 구금되어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 영사관은 이미 이 대표 일행이 스위스 경찰에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여러 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 일행은 김 영사에게 강제구금의 불법성과 인권유린에 대해 스위스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할 것과 부당한 입국불허 조처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입국불허 문제는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영사는 인권유린과 불법적인 대우에 관해서는 스위스 경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것이고 스위스 외무부에도 이 같은 사실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1시 30분, 결국 이 대표 일행은 스위스 경찰의 감시 아래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경찰관들은 비행기 앞까지 따라와 일행이 비행기에 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돌아갔다. 스위스 경찰이 '입국불허 조치는 스위스에만 해당될 뿐 독일에 입국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터여서 이들은 독일 교민들과 예정되어 있는 일정이라도 진행해야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는 순간 이마저도 물거품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독일 경찰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정부도 이 대표 일행의 입국을 불허했다는 이유였다. 이 대표 일행은 결국 2시간 동안 공항에서 독일 경찰관에게 억류되었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 대표는 그 이유를 귀국해서야 알게 되었다. 스위스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았던 판결문에 "공공안전과 질서에 위협이 되거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경우 해당자의 이름이 SIS 정보체계에 기록된다"는 내용을 발견했던 것.

 

SIS 정보체계는 EU 회원국 15개국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이 공동으로 구축한 정보체계로 이 대표와 주 위원, 한 의장 등은 '여러 차례 폭력 집회를 해서 공적인 질서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 사람'으로 이 명단에 등록된 것이다. 이번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5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스위스에 입국했는데, 입국이 거부당한 사례는 이 대표 일행이 유일하다. 이 대표는 스위스 경찰이 이런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고 밝혔다.

 

"정부, 악의적 정보 제공 의혹 해명해야"

 

이 대표 일행은 스위스 경찰이 자신들만을 억류하고 강제 출국시킨 배경에는 한국 정부가 있다고 믿고 있다. 당사자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개인정보를 어떻게 스위스 정부가 입수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한국진보연대와 전국농민회총연맹은 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외국 정부에 악의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자국민을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의혹에 대해 정부가 해명할 것"을 촉구했다. 또 이들 단체는 "정부가 해명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것으로 보고, 책임자 처벌 및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009.12.01 14:36 ⓒ 2009 OhmyNews
#WTO #전농 #진보연대 #스위스 입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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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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