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크로우즈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편 부문 대상을 차지한 '아이언 크로우즈' (철 까마귀) 포스터.
Saiful Hug Omi
박PD는 PHP에 각서까지 써줬다고 말했다. 조건은 두 가지, 첫째는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방글라데시의 선박해체 산업에 어떤 불이익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었고, 둘째는 방송 전 제작된 편집본을 미리 보여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타공에서 첫 번째 촬영에 들어간 날이 2008년 1월 1일이었다.
"첫 촬영을 거의 두 달간 했었고, 두 번째 촬영할 때는 주인공의 고향방문에 동행했다. 세 번째는 작년 가을에 3주 정도, 올 봄에 마지막으로 보충촬영을 하러 1주일간 다녀왔다. 촬영한 날짜만 3달 반 정도 된다."박 PD가 지켜본 치타공 선박 해체노동자들의 삶은 눈물겨웠다. 하루 1달러를 벌기 위해 위험한 선박 해체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작업 내내 목숨까지 내걸어야 했다.
"2만톤 정도 되는 선박은 길이가 200m에 높이가 20m가 넘는다. 가스 절단기를 든 숙련공들이 올라가서 배를 큰 토막으로 나누어 놓으면, 견인기로 당겨가지고 갯벌에 떨어뜨린다. 이걸 또 노동자들이 달려들어 일일이 하나하나 쪼개는 건데, 그곳에는 그런 말이 있다. 하루 한 척의 배와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우리가 찍던 주인공도 한번 죽을 뻔 했는데, 그 광경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그 친구나 나나 운이 좋았다.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는 보상금 한 100만원 정도 받고 고향으로 보내졌을 것이고, 우리도 촬영 포기하고 보따리를 싸야 했을 것이다."그도 서너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한번은 10톤 정도 되는 철판이 떨어지면서 무게중심을 잃고 우리 카메라 쪽으로 떨어진 거다. 내가 보기엔 거리가 좀 있어 보였는데, 철판이 우리 쪽으로 떨어지는 걸 윈치 운전수가 재빨리 간파하고 반대쪽으로 와이어를 당겼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떨어졌으면 압사했거나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고막이 터지고 날아가 버렸을 거라고 하더라. 그 정도에 떨어졌는데도 진흙들이 날아와 카메라를 때렸다."하지만 박 PD는 선박해체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연출자로선 매력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들 노동자들에게는 선박해체작업장이 치열한 최전선이었다. 밥 세끼를 얻기 위해 하는 노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이 잘라내는 철이 방글라데시 전체 철강생산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풍경은 너무 참혹했지만 사람들은 정말 순수했다. 뭐랄까, 원형질 같은 사람들, 아메바 같이 하나의 세포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노동하고 먹는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살면 행복하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태어나서 노동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한 시절을 보내고, 그리고 기억을 남기고 죽는 것이다."박 PD에겐 치타공의 노동자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자신의 생각과 인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특이한 이력과도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졸업 후 3년간 구로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노동자들의 삶을 알고 싶어서 그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PD는 방글라데시의 선박해체노동자들을 단순한 희생자나 가난한 노동자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당신들이야말로 산업역군들이고 잊혀진 영웅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12월이나 내년 1월중 다시 치타공에 가서 그들에게 다큐멘터리를 보여줄 계획이다. 극장이 아니라 작업장에 흰 천막을 걸어놓고 그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박수를 치던, 질책을 하던 그들의 평가를 듣고 싶다. 한국의 시청자들과 유럽의 관객들에겐 환호를 받았지만, 최종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치타공의 선박해체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한다.""방송사와 독립PD간의 수직적인 구조 개선 돼야" '아이언 크로우즈'가 탄생하기까지 제작사인 FNS와 박 PD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작지 않았다. 우선 제작비 문제. KBS로부터 70%의 제작비를 미리 받기는 했지만, 이미 쓴 비용은 예산을 훌쩍 넘어버렸다.
"인간의 땅 5부작을 만드는데 든 예산이 9억 원이다. 편당 따지면 1억 8000만 원 정도 된다. 그런데 (KBS에서 자체 제작한) <누들로드>나 <차마고도>는 편당 제작비가 비슷해도 인건비나 장비 임대료가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스태프 인건비와 장비 임대료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촬영이 두 달 넘어가면 그때부터 적자다. 그런데 강경란 PD(제작사 FNS 대표)가 아프가니스탄 석 달 다녀왔지, 나도 방글라데시 촬영이 석 달 반이지, 지금 재정상태가 엉망이다. 특히 강경란 PD가 지금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제작비 대느라 적금 다 깨고 돈 끌어올 수 있는 곳에선 다 끌어다 썼다, 나도 작년 8월 이후로 집에 생활비를 갔다주지 못하고 있다."박 PD는 한국의 방송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해 제대로 평가 받기 위해서는 우선 방송사와 독립PD간의 수직적인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KBS>와 계약서를 쓸 때 촬영원본에 대한 권리를 제작사인 FNS가 갖는다는 구절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재가공할 권리가 없는 내가 어떻게 해외 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었겠는가? 이 구절을 만들어준 게 <KBS> 정연주 사장 당시의 이아무개 전임 국장이었다. 이 분은 좀 앞을 길게 내다본 것이다. 저작권을 공중파 방송이 독식할 것이 아니라 독립 PD들에게 날개를 좀 달아줘야 모두 사는 것이란 생각을 한 거다. 사장 바뀌고 나서 지금은 한직으로 밀려나 계시지만 상을 받은 직후에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렸다." 자신은 '잔재주 부리지 않고 뚝심으로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라는 박 PD는 수상의 영광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돌렸다.
"먼저 이렇게 좋은 기획에 끼워준 FNS 강경란 대표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KBS> 안에 좋은 분이 계셔서 저작권 근거를 만들어 주셨고, 힘든 촬영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서연택 촬영감독 같은 좋은 스태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또 해외배급과 마케팅을 맡았던 크리에이티브 이스트의 조동성 대표와 김민철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수상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아이언 크로우즈>가 암스테르담에서 상을 받게 되자 <KBS>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KBS의 여러 프로그램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KBS의 자화자찬은 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FNS가 제작한 <인간의 땅 5부작>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성원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KBS>의 편성에서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5부작의 1편인 '살아남은 자들, 아프가니스탄'(연출 강경란)이 전파를 탄 것이 지난 6월 21일이고, 2편 '철 까마귀의 날들'(연출 박봉남)은 7월 19일, 3편 '바람이 씻겨간 노래' (연출 박봉남)는 10월 16일, 4편 '슬픈 정글'(연출 강경란)은 12월 4일에 방송되었던 것이다. 1편과 2편은 일요일 저녁 8시 '<KBS> 스페셜'로 방송되었지만, 3편과 4편은 금요일 밤 자정에 방송되었고, 마지막 5편 '히말라야의 딸'(연출 안중섭)은 언제 방송될지 기약이 없다.
박 PD는 이런 상황이 "누굴 딱 찍어서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정치적인 상황 변화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프로젝트가 정연주 사장 때 추진되었고, 그래서 그가 적자경영의 책임들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KBS>가 많은 돈을 대서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인데, 편성과정에서는 많은 박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원망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그것을 해명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부작인데 계속 (연속해서) 방송이 안 되고 띄엄띄엄 방송되니, 시청자들이 희생양이 된 격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KBS>의 수장이 누가되건 상관없이 시청자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볼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나머지 한 편도 곧 나가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