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도 최수종도 '대박'을 가져오진 못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자체표 '드라마 세트장'

등록 2009.12.07 16:18수정 2009.12.0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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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전경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전경 ⓒ 최민호


"그나마 주말이나 되어야 관광객들이 좀 와요."

지난 5일 오후, 부천시 원미구에 자리 잡은 판타스틱 스튜디오 매표소 앞에선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드넓은 대지에 서 있는 사람이라곤 매표소 옆 창구를 지키는 경비원뿐이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이라고 해도,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나들이를 나서는 주말 오후임을 감안했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매표소 옆 창구에서 경비업무를 보는 김아무개(58)씨는 "관광객 수가 예년 같지 않다"면서 "날씨가 따뜻한 여름철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날씨가 차가워지면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매표소 옆 주차장에 빼곡히 자리 잡은 차들에 대해 묻자 그는 "여기를 보러 온 게 아니라 바로 옆 음식점에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정식 명칭보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세트장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 서울 한복판의 모습을 재현한 드라마·영화 종합 세트장이다. <야인시대>를 비롯하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사랑과 야망>, <경성스캔들>, <에덴의 동쪽> 등 여러 시대극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판타스틱하지 않은 판타스틱 스튜디오

매표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으나,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꽤 넓은 부지 안을 30여 분 이상 돌아다녔으나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은 "오전에 사람들이 조금 다녀갔다"고 말했지만, 벌써 관람을 마치고 모두 돌아간 것인지 스튜디오 안은 썰렁해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부 관리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건물 여러 채는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열리지도 않는 상태인 건물도 더러 있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자 상황은 더 엉망이었다. 깨진 유리창 틈새로 한눈에 봐도 지저분한 세트 내부가 훤히 보였고, 청계천을 복원한 냇가 한쪽에는 갈대숲이 무성하여 물을 다 가리고 있었다.


지난 2002년 59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한 판타스틱 스튜디오를 찾은 지난해 관광객 수는 약 8만명. 2007년의 12만명, 2006년의 14만명과 비교했을 때, 해마다 큰 폭으로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약 5만 명 정도가 이곳을 다녀갔다. 아직 12월 한 달이 남았지만, 계절을 감안할 때 올해 역시 지난해보다 관광객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객 수가 줄어드니 입장 수입 역시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2006년 약 2억7천만원 정도였던 입장수입은 2007년 2억5천만원, 지난해 1억7천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와는 별개로 세트장의 관리비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6년 약 8억3천만원이었던 관리비는 2007년 8억5천만원으로 오르더니 지난해는 9억원을 돌파했다.


관광객 수는 줄고, 관리비는 늘고

a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전경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전경 ⓒ 최민호


비단 판타스틱 스튜디오만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여 화려하게 지은 드라마 세트장이 드라마 방영 당시에만 반짝 특수를 누리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흉물로 남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이른다.

강원도 횡성군이 지난 2004년 건립한 드라마 <토지> 세트장은 매년 관광객 수가 급감해 결국 지난해 문을 닫았고, 경기도와 수원시가 지난해 건립한 드라마 <왕과 나> 세트장은 지은 지 채 1년이 안 된 지난 7월 폐쇄됐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태조 왕건> 세트장은 실패한 드라마 세트장의 전형으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을 정도. 관광객의 급감으로 연간 수천만원의 혈세를 들여 관리비를 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아직도 드라마·영화 촬영이 계속되고 있어 사정은 나은 편이다. 위의 사례들처럼 폐쇄되거나 촬영이 뚝 끊긴 세트장의 수도 부지기수다. 시민의 세금으로 지은 화려한 세트장이 대개 몇 년 가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이후에도 관리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시민의 세금을 축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을까? 문제의 원인은 지자체의 "일단 짓고 보자"식의 '묻지마 투자'에 있다. 드라마 한류열풍의 선봉장이었던 KBS <겨울연가>는 남이섬이라는 촬영지를 삽시간에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어냈다. 드라마 방영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지에서 남이섬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의 수가 연간 50만명에 이를 정도로, <겨울연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모래시계>가 정동진을 만들었고 <겨울연가>가 남이섬을 재탄생시킨 성공사례를 보며 여러 지자체에서는 드라마 촬영지라는 관광 상품이 주는 홍보효과와 같은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여기에 거액의 돈이 들어가는 드라마 세트장과 촬영지가 필요했던 드라마 제작사 및 방송사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드라마 세트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트장 만들면 '제2 정동진' 될 줄 알았겠지만

그러나 제2의 정동진, 제2의 남이섬은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지, 세트장의 인기란 결국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드라마가 성공하지 못하면 세트장 관광 상품화의 성공 또한 보장할 수 없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세트장을 짓고 드라마를 촬영한다고 해도, 그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세트장은 대중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설사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과연 그 인기, 열풍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의 인기는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절정에 올랐다가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다. 촬영지나 세트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드라마의 인기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드라마가 끝나고 대중들에게 잊혀지고 나면, 세트장 역시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다.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에도 관광객의 발길을 꾸준히 붙잡게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 한두 작품만 촬영하고 그칠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드라마·영화 촬영을 유치해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해 세트장과 연계하여 여러 주제를 갖춘 관광단지로 육성하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장기적인 전망 없이 무턱대고 짓기부터 하는 식의 묻지마 투자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세트장 하나를 짓는 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 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예산은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
#드라마세트장 #판타스틱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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