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그들의 일상은 시작됐다

[인터뷰] 포항 죽도시장에서 새벽장사 하는 야채 노점 아줌마

등록 2009.12.08 19:11수정 2009.12.0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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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들 때로는 단속반에 의해서 전을 거두기도 한다 ⓒ 김수일

▲ 노점상들 때로는 단속반에 의해서 전을 거두기도 한다 ⓒ 김수일

 

이른 새벽이라고 생각하고 나간 시장은 평소 다른 시장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포항의 죽도시장은 새벽시장이지만, 음식점을 경영하는 상인들부터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온 일반손님, 그리고 외지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온다. 

 

비 내린 이후의 새벽이라 그런지 조금 쌀쌀한 날씨라서 그런지 노점상의 여인네들의 모습은 일상에 찌든 듯했다. 그런 가운데 한 아주머니의 활짝 핀 얼굴이 눈에 띄어 가까이 가보았다. 아주머니는 친절한 말씨로 대뜸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하며 가까이 다가선다. 얼떨결에 "이 배추 한포기 주세요"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웃음과 시원시원한 친절함 때문이었을까? 별 필요 없는 배추를 대뜸 샀지만 대담을 하고 싶다고 하자 아예 거절이다. 이야기인즉 '노점 장사하는 주제의 자신이요, 이야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닌 척 나름대로 말을 붙여보기로 하였다.

 

- 하루 일과 시작은 언제부터지요.

"일과라 할 것 있나요. 없는 사람들의 일상이지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장 나갈 준비를 하지요. 채소를 다듬고 마늘을 까고 단을 묶고 봉지에 넣고, 담고 해서 정리를 하고 머리에 이고 여기까지 오면 곧 하루가 시작 되는 거지요."

 

- 각종 채소 마늘 양파 과일 등 상품 종류가 수가 상당한데 이것들은 어디서 구입하는 것입니까. 혹시 중간 상인들로부터 구입하여 가져 나오시는 겁니까.

"천만에요, 이런 장사 얼마나 남는다고 중간 상인들로부터 쉽게 갔다가 팔수 있나요.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시장에서 장사하고 오후엔 텅텅 빈 시내버스 타고 편안하게 앉아서 졸기도하고 들판 구경도하며 시골 가서 이집 저집 다니며 각종 채소며 마늘 등 농산물을 구입하기도하고, 가끔 남편이 조그마한 텃밭에 가꾸어 놓은 생산물도 내다 팔지요."

 

- 아저씨가 계신다고요. 시골에서 아주 농사를 지으시나요.

"아닙니다. 일하실 자리를 잃고서는 시골서 남들이 버려둔 농토를 조금 얻어서 심심소일로 채소들을 가꿀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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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상품 상품의 품목은 단조롭다. ⓒ 김수일

▲ 노점상 상품 상품의 품목은 단조롭다. ⓒ 김수일

 

- 아저씨는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그 전에는 개인택시를 운행하셨지요."

 

- 10년 전이라면 개인택시가 잘 되었을 텐데 왜 그만두셨나요.

"(머뭇거리다가) 사실은 제가 큰 병을 앓게 되고 병원에서 대수술을 하게 되어 전 가족 목숨이 매달려 사는 개인택시를 팔아서 제 병원비를 내고도 모자라 빚에 쪼들리게 되면서 일할 의욕조차 잃게 되더군요. 그런 이후 시골로 들어가셨고 저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월세를 겨우 얻어서 여기에 남게 되었고 살기 위해 이것저것 장사를 하다가 애들 아버지가 남의 텃밭을 가꾸면서 이 장사를 시작 했지요. 벌써 9년이 되었어요."

 

- 새벽부터 온종일 피곤하거나 산다는 것에 허무한 감정 같은 것은 느끼지 않나요.

"저는 피곤하지도 산다는 것 허무하지도 않습니다. 애들 아빠가 제게 베풀어 준 은혜를 생각하고, 또 제가 벌어서 아이들 공부 시킨다는 생각을 하면 무한한 자부심과 행복감을 늘 가집니다. 모두가 감사하고 축복이지요."

 

- 이렇게 노점상을 하여서도 자녀들 학비를 충당 할 수 있나요.

"예, 할 수 있어요. 저는 하루하루 물건을 시골에서 바로 가져 오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물건 좋다고 단골손님이 되고, 저도 그 단골손님들 덕분에 오전 장사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단골손님을 유치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별 비법은 없어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하루하루 좋은 물건 구해 가지고 깨끗이 다듬고 포장해 와서 좀 싸게 정직하게 드리면 돼지요. 아줌마들은 한번 속으면 다시 사러 오지 않습니다."

 

- 채소 같은 것은 생물이라서 하루 이틀에 팔리지 않는다면 버리는 것입니까.

"버릴 정도가 되기 전에 없는 이웃에 나누어 먹지요. 제보다 어려운 주변 이웃에서는 채소를 사다먹기 보다 제게 무료로 공급 받을 때가 더 많을 겁니다.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받는 사람들 기분 좋고 드리는 저는 즐겁고 행복 하잔 습니까."

 

- 노점상으로서 불편함은 없나요.

"물론 많지요.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비나 눈이 오면 공치는 날이 되니까. 점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포항시에서는 거리 교통에 크게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해먹도록 봐주니까 감사하지요. 산다는 것 행복해요.(웃음)"

2009.12.08 19:11 ⓒ 2009 OhmyNews
#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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