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에 대상포진 약까지... 까꿍이는 괜찮을까

[까꿍이 출산기 ③] 진통의 시작

등록 2009.12.09 11:54수정 2009.12.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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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타미플루 복용기


타미플루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나 집에 도착하니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아내가 이미 산부인과 의사에게, 조산사에게 물어본 뒤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였던 것이다. 36주면 이미 아이의 장기가 모두 형성되었기 때문에 약이 태아한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 산모의 몸을 위해서 하루 빨리 약을 복용하라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찝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부작용이 채 알려지지 않은 타미플루. 비록 태아가 다 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 영향은 태아에게 갈 것이 분명한데 까꿍이는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제발 까꿍이에게 별 탈 없기를.

아내는 그 뒤로도 5일 동안 타미플루 나머지 10알을 모두 복용했다. 다행히 복용한 지 이틀 만에 신종플루 음성 판단을 받았지만, 신종플루의 감염여부를 떠나 타미플루를 먹기 시작한 자는 무조건 10알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방침인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 독한 약을 임산부의 몸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다 먹고야 마는 아내.

어처구니없는 일은 타미플루를 모두 복용한 뒤 찾은 산부인과에서 벌어졌다. 의사에게 타미플루 복용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은 정부 보건 당국의 방침이 바뀌어 신종플루 음성이 밝혀지면 타미플루 투약을 중단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며칠 새에 정책이 바뀔 걸, 아내는 아무 이유 없이 그 독한 약을 다 먹은 것이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종플루가 최신 질병이어서 정보가 없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다른 이들도 아니고 임산부를 상대로 그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혹여 그렇다 손 치더라도 다시 개인적으로 타미플루 복용을 금지하라고 공지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 보건당국의 행태에 대해 내가 당장에라도 고발성 기사를 쓰겠다고 씩씩거리고 있자니, '고발'이란 소리에 깜짝 놀란 의사가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의사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국 그 모든 책임은 약을 먹은 부모가 질 수밖에 없지 않냐며. 가재는 게 편이던가? 고소, 고발 이야기에 학을 떼는 의사를 보고 있자니 착잡해질 따름이었다.

이번에는 피부약까지


아내의 또 다른 출산 아내가 힘들었던 이유
아내의 또 다른 출산아내가 힘들었던 이유학전
아내의 투약은 타미플루로 끝나지 않았다. 신종플루로 오인했던 독감으로 1주일 고생했던 아내가 이번에는 예정일을 1주일 정도 앞두고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 것이다.

임산부와 같이 면역체계가 아주 약해진 사람한테 찾아온다는 바로 그 대상포진. 아내는 독감과 함께 허리 주위가 두드러기처럼 부어오르고 가렵고 아프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상포진일 줄이야. 도대체 작품을 쓰는 데 얼마나 고생했으면 대상포진마저 걸리는가. 아내는 무척이나 아파했고, 옆에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난 괴로울 뿐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처음에 바르는 피부 연고만을 고집했지만 대상포진은 번지기만 할 뿐이었고, 결국 피부과를 다시 찾으니 의사는 먹는 약 아니고서는 대상포진을 잡을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어차피 아이는 다 컸으니 빨리 약을 먹고 대상포진을 치유해서 까꿍이가 태어났을 때, 대상포진에 전염되는 걸 막자는 그들.

결국 또 문제는 피부약을 먹느냐 마느냐로 귀결되었다. 약 중에서도 가장 독하기로 유명한 피부과 약. 피부약에 대한 공포는 그 부작용을 잘 모르는 타미플루를 능가했다. 안 그래도 피부약을 잘 못 먹어 태아가 이상해진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보아온 탓이었다.

그러나 별 수 있는가. 이왕 타미플루까지 먹은 거, 피부약까지 용인할 수밖에. 의사는 20년 된 약이라 큰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우리를 위로했지만,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99%의 확률이어도 그 1%가 우리라면 결국 우리에게는 100%이지 않은가. 대신 마냥 까꿍이의 건강함을 믿을 뿐이었다. 까꿍이가 타미플루에 이어 피부약의 독성까지 모두 이겨내길 바랄 뿐이었다. 까꿍아. 할 수 있지? 그치?

다행히 피부약 복용 이후 아내의 대상포진은 많이 가라앉았다. 그만큼 먹는 피부약이 강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우리 태아는 무사할는지.

드디어 진통이

진통 주기 주기적으로 진통이 걸리면 그게 진진통이다
진통 주기주기적으로 진통이 걸리면 그게 진진통이다정가람

D-4 21일 새벽. 아내가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느끼는 진통이 예전과 달리 아프고 주기적이라는 것이었다. 하필 결혼식에 워크숍까지 잡혀있는 토요일 진통이라니.

그래도 별 수 있는가,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고, 워크숍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 놓은 뒤 출산가방을 싸고, 조산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증상을 중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면 당장 입원시킨 뒤 촉진제를 맞을 것 같았는데, 조산사는 5분 단위 진통으로는 아직까지 멀었으니 하루 정도는 제 할 일 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정 미심쩍으면 조산원으로 와보라는 말과 함께.

덕분에 아내는 계속되는 진통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같이 참여해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고, 우리는 결혼식이 끝난 뒤 그 길로 곧바로 조산원으로 향했다. 이미 난 병원에서의 출산을 고집할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막달까지 진찰해준 산부인과 의사도 자연분만 하는 데 큰 이상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출산가방 경황없이 싼 출산가방
출산가방경황없이 싼 출산가방정가람

조산사의 내진. 조산사는 아직 자궁문이 1cm 밖에 열리지 않았다며, 진통이 2~3분 주기로 더 아프면 오라고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지 않는 이상 출산은 아이의 의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조산사는 이야기했다.

그렇다. 아이가 언제 나올지는 우리가 아니라 아이가 결정할 일이다. 산모보다 10배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아이의 의지를 믿어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 아니겠는가. 이를 참지 못하고 병원에서 의사들이 특이사항 없이 배를 째고, 무통주사와 함께 촉진제를 투여한다면, 이는 자신들의 편의를 맞추기 위한 근대 의학의 만행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돌아온 집. 난 아내를 홀로 남겨놓고 회사 워크숍으로 향했다. 마음은 집에서 채 떠나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이가 나오려면 하루 정도 더 있어야 된다지 않는가. 부디 아내의 산고의 고통이 덜 하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산원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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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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