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총동원, '해임' 향해 석달간 총진군

[정연주의 증언15] 감사원, '특감 실시' 방향 정해놓고 회의 진행

등록 2009.12.17 20:10수정 2009.12.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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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에서 오간 육성을 듣기 전에, 이즈음에서 지난해 5월 중순부터 8월 11일 내가 해임될 때까지 석 달 동안 감사원, 검찰,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들과 그들의 하부기관 같았던 KBS 이사회, 대학 등이 '해임'이라는 과녁을 향해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지를 한번 정리해보겠다.

 

일사분란한 권력기관들의 '해임작전'

 

 불법으로 얼룩진 정연주 KBS사장 해임과정
불법으로 얼룩진 정연주 KBS사장 해임과정안승권
불법으로 얼룩진 정연주 KBS사장 해임과정 ⓒ 안승권

- 5.13 KBS 감사 거부하던 전윤철 감사원장 사임

- 5.13 KBS 임시 이사회에서 친 한나라당 이사들, 정연주 사장 퇴진 문제 제기. '사퇴권고 결의안' 추진 의지 밝힘.

- 5.14 조상운 KBS 전 직원, 배임죄로 정연주 사장 검찰에 고발. 검찰은 바로 수사에 착수.

- 5.15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우파 시민사회단체, 감사원에 KBS 국민감사 청구.

- 5.15 동의대 측 고위 관계자 "학교 존립이 위태롭다. 이번 사태가 교육부 차원을 넘어섰다. 내일 교육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당신 문제를 어떻게 매듭지을지 답해야 한다. 그곳이 어딘지는 묻지 말라"라고 신태섭 교수(KBS 이사)에게 통고.

- 5.21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 수용, KBS 특별감사 결정

- 5.21 김금수 KBS 이사장 사퇴

- 6월초, 국세청, KBS에 드라마 등을 납품해온 외주제작사들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 시작.

- 6.11 감사원, KBS에 대한 특별감사 시작

- 6.13 언론, '검찰, 정연주 사장 소환 결정' 일제히 보도

- 6.17 검찰, 정연주 사장 1차 소환 통보. (이후 7.16일 5차 소환까지 다섯 차례 소환 통보)

- 6.20 부산 동의대, KBS 이사 겸직 이유로 신태섭 교수 해임.

 

- 7.14 유재천 KBS 이사장, 정연주 사장에게 '명예로운 퇴진' 종용. 정연주 사장, 이를 거부.

- 7.18 방송통신위원회, 동의대 교수 해임된 신태섭 KBS 이사, 방송법 제48조에 따라 이사 자격 상실을 결정하고, 후임으로 강성철 부산대 교수 보궐이사로 선임.

- 7.18 발간된 월간 <신동아>와 가진 회견에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KBS 사장은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하려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밝힘.

- 7.25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에게 KBS 사장 해임권 있다" "만약 해임사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면 무효소송을 해서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

- 7.28 감사원, 정연주 사장 감사원 출두 요구. 정 사장 이를 거부(이후 세차례 더 출두 요구)

- 8.4 검찰, 감사원의 해임 요구와 임시 이사회의 긴급 소집 시기에 맞춰,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된 정연주 사장에 대해 출금 조치를 하고, 기소하겠다는 내용의 언론 발표.

- 8.5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공식 발표. 정연주 사장 해임 요청.

- 8.8 KBS 이사회, 11명 이사 가운데 이사 4명이 퇴장한 가운데 강성철 보궐이사 등 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의결.

- 8.11 이명박 대통령, 정연주 사장 해임

- 8.11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 위원장, 김회선 국정원 제2차장이 회동. 야당은 '언론장악 위한 대책회의'라 주장했으며, 나경원 의원은 "아침 식사 같이 한 것을 갖고 언론장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

- 8.11 검찰, 대통령이 해임을 결정한 날 저녁에 정연주 사장 체포 영장을 청구하고, 다음날 자택에서 정연주 사장 체포. 이틀 동안 조사. 정 사장, 묵비권 행사.

 

수구언론·한나라당· KBS 노조 3각 편대, 연초부터 총공세

 

 정연주 KBS사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권우성
정연주 KBS사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 숨 가쁘게 벌어졌던 권력기관들의 '정연주 해임작전'이었다. 어느 한 곳의 통제부 없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5월 중순, 권력기관들이 총동원되어 본격적인 '해임 작전'에 돌입하기 전, 이명박 정권 출범을 전후하여 수구언론과 한나라당, KBS 노조(박승규 집행부)가 강력한 황금의 3각 편대를 이루듯 나의 퇴진을 촉구하는 다발성 공격을 펼쳤다. 그 모양새가 마치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사용한 초토화 작전을 연상시켰다.

 

(나는 이 '증언'에서 5월 중순부터 시작된 권력기관의 해임 작전, 즉 감사원 특감, 검찰의 배임혐의 수사, 국세청의 외주독립사 세무조사, 방통위, KBS 이사회의 숨 가쁜 움직임을 먼저 자세하게 전하려 한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권력기관들 해임 작전의 전초전이었던 수구언론, 한나라당, KBS 노조 등의 다발성 공격을 증언할 예정이다. 1년 여 전을 돌이켜 보면, 그들은 참으로 집요했고, 무모할 정도로 '나의 퇴진'에 집착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의 KBS, 지금의 방송 전반, 언론 상황을 보면 답이 절로 보인다.)

 

자, 이제 감사원의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의 육성을 들어 보자. 지난주 설명한 대로 감사원은 이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국회의원실에 열람만 허용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한 비서관이 열람을 하면서 손으로 필사를 했는데, 회의록 전체가 아닌 일부만 필사를 하여 공개했다. 그래서 회의록 발언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가 않고 흐름이 끊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감사원에서 발언자의 이름을 000으로 처리하였기에, 발언자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앞으로 정보공개법 등을 통해 회의록 전체와 발언자의 실체도 파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것은, 발언 속기록을 보면, 발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말 구사실력이 좀 그렇다. 이 경우 원래 발언 취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도움말을 넣기도 하고, 일부 줄이기도 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공개된 회의록에 처음 등장하는 부분은 법인세 추징과, 이를 둘러싼 KBS와 국세청 사이의 오랜 소송, 그리고 법원 조정을 통해 법인세 문제를 매듭지은 문제, 그리고 '누적 적자'와 관련된 것이다.

 

000 : 과오납이라는 것은 법인세 등을 잘못해서 실제보다 많이 냈거나 또 오류로 잘못된 것을 과오납이라고 합니다.

000 : 어떻습니까. 이에 대해 (감사원) 실무책임자인 000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000 : 제가 보완설명을 드리면 지금 이 자료 자체는 팩트, (즉) 감사청구인이 대표적인 사실인 팩트를 제시했기 때문에 그 내용만 가지고 저희가 자료에는 발췌를 했고… 별첨자료 59페이지에 보면 청구 원인이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자료를 만들 때 팩트 두 가지만 예를 든 것이고, 전체적으로 청구인의 취지는 지속적인 적자가 부실경영으로 KBS가 굉장히 심각하다… 지난 5년간에 적자가 계속 늘어서 1500억 원이 되는데… 전체적으로 그 부실경영의 하나의 팩트로서 그 동안에 세금환급을 KBS가 많이 냈는데, 그것을 충분히 되돌려 받을 수도 있는데, 중도 포기하고 일부 금액만 환급을 받아서 경영에 적자를 가져왔다… 그래서 여기 의견대로 (감사원 실무부서 지칭. 지웠음)으로서는 감사 실시하는 것으로….

 

일부 심사위원, 자괴감 드러내기도

 

이 발언은 감사원 실무책임자의 발언인데, 감사원 실무부서에서는 감사청구인인 뉴라이트 쪽에서 제시하는 '누적 적자 1500억 원'을 그대로 '팩트'로 인정하고 자료에 인용했다. 더군다나 법원의 조정에 따라 해결한 법인세 환급문제를 한 쪽(나를 배임죄로 고발한 고발인과 검찰)의 논리대로 받아들여 설명한 뒤, 감사원 실무부서 의견이라며 '감사 실시'라는 결론을 회의 도입 때 이미 제시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다음 발언을 보면 심사위원들 중 일부는 이런 일련의 흐름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듯했다.

 

000 : 그런데 왜 나는 이런 경우에 시민감사청구로 들어왔을까 의심이 (듭니다). 직접적인 통로로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조금…

 

000 : …이것 접수가 5월에 된 것인데, 5월에 접수된 것 중에 지금 이 건만 올라와 있는 경위랄까, 거기에 대해서 한번 듣고 싶고… 여기에서 내용 중에 전체적인 감사를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국민감사청구위원회에서 결정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소송에서 조정에 응했다고 해서 서울고등법원에서 조정한 것을 문제 삼는 것으로, 또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까지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 가지고는 조금 법원의 조정절차에 따라 승소했다 하더라도 상급법원에서 조정을 권한 이유도 있을 것 같고, 그런 것을 살펴보아야지, 그냥 서울중앙지검에서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또 감사하는데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은 조금 있는 것 같고… 과오납 환급 포기한 것이 정말 환급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세금 문제는 과오납했다고 해서 과연 환급을 반드시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명백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어서, (이것을) 중점적으로 감사하면 오히려 감사했다가 감사에서 000 을 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마지막 000으로 감춘 부분의 내용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전후 문맥으로 보아, '해임요구 처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발언자의 발언 앞부분은 왜 5월에 접수된 많은 국민감사청구건 가운데 KBS 건만 달랑 위원회 회의에 올렸는가 하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지적만 했을 뿐, 그렇게 그냥 지나갔다. 또 다른 위원의 발언이 뒤를 잇는다. 그는 감사청구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000 : 저도 (앞에 이야기한 000 위원이)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하고, 현재 진행 중이었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가) 건드리지 않았는데, 이 사건도 여전히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아니면 결정이 되었거나 그런 상황이고… 여기 밑에 경영실적에 대한 얘기를 보면 MBC하고 SBS가 흑자가 나 있는데, 방송사에서 흑자 내겠다고 생각하면 한 달만에 흑자 낼 수 있습니다. KBS1에서만 흑자 낼 수 있고, (KBS)2에서도, 방송국에서 흑자낼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자제하고 있는 부분들은 저희가 조금 이해를 해줘야 하지 않는가… 과거 신문사에 비해서 방송국은 광고 하나를 드라마 한 타임, 야한 드라마 보내거나 선정적인것 하나만 보내면 그것 하나로도 돈이 엄청나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글쎄 우리가 여기서 건드려서 이게 흑자이고, 적자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되지 않을까. 분명히 위법한 사항이나 부패한 사항이 있으면 저희가 들어가는데, 앞에 이 부분을 가지고 들어가기는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히 위법한 사항이나, 부패한 사항이 있으면" 특별 감사 결정이 어렵지 않은데, "앞에 이 부분"(누적 적자 등 부실 경영)만으로 감사 들어가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이 발언을 한 사람은 KBS라는 방송사가 마음만 먹으면 적자를 없애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KBS가 공영방송이니 그렇게 막가파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적자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는 그냥 묻혀버리고 회의는 감사원 실무팀이 만든 결론, 즉 '감사 실시'를 향해 힘차게 가고 있었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연재
#정연주 #KBS 노조 #감사원 특감 #검찰 배임혐의 수사 #국세청 세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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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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