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향한 분노의 감정

웬수 같은 자식, 마녀 같은 엄마 (22)

등록 2009.12.17 17:31수정 2009.12.1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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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뛰어난 의사가 있다. 심장 분야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의사다. 만일 그의 사랑스런 아들이 심장병에 걸려 대수술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아이의 수술은 과연 누구에게 맡겨질까.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그 아이의 아버지일까. 아마도 그 아이의 수술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질 것이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나 제자 중에서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은 수술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남의 살이 아닌 바로 자신의 살을 상대로 수술을 해야 하기에 그러하다. 칼이 그 아이의 살을 베고 들어갈 때, 그 고통에 대한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게 전달되어서(실은 당사자가 상상해 내는 것이지만), 수술하는 의사는 감정적으로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자신의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 이유 때문이다. 

이는 가르치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무리 학생을 잘 가르치는 선생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기는 정말 힘들다. 부모는 자기 자식 과외 못 한다는 소리다. 특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간 형이 그 동생을 맡아서 잘 돌봐 주면 좋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경우에 최악의 과외 선생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형은 형대로 아우를 향해 분노와 신경질을 퍼부어 대고, 동생은 동생대로 형을 향해 증오와 불신감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 수준은 항상 높을 수밖에 없다. 부모 자신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말이다. 기대 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기에 부모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대 수준이 결코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조금 높더라도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충분히 노력하면 가능한 수준이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항상 수준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감정이 아이의 현 수준을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감정이 불쌍함(?)에서 분노(?)로 뒤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기 자식이 잘 되어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부모로 하여금 아이의 수준 미달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남의 자식은 아주 편하다. 잘하든 못하든 그건 그 아이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해서 어떤 불행한 상황에 빠진다고 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 대한 감정적 거리 두기가 자연스레 가능해진다. 감정적 거리 두기는 아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아이가 처해 있는 현 상황(학업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짐으로써, 아이에 대한 적절한 교육 방식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얘기다.  

감정적 거리가 유지되는 만큼 아이에 대한 분노도 줄어든다. 아이에 대한 분노를 접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의 분노가 아이에게는 심각한 의욕 상실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업 수준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면 될수록 아이의 집중력과 학습에 대한 의욕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아이가 정신 차리고 더 잘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가르치면서 부모가 감당치 못하는 분노의 감정은 아이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일단은 아이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갖게 되는 일반적 감정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잘 하는 아이를 보면 가르치는 자로서 감탄이 흘러나오게 되고,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가르치는 자로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아이가 내 아이라는 사실이다. 내 아이이기에 감정적인 거리 두기가 어려워진다. 내 자식이 학교에서도 낙제생으로 낙인 찍혀서 교사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애들한테도 왕따당하고, 영영 무능력한 인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닌가. 사회에 나가서 직업도 못 얻고 무시당하며 살거나, 정말 밥 벌어먹기도 힘든 상태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아이의 미래에 대한 온갖 불행한 상상들과 함께 부모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노력으로 그 아이의 학업 수준을 올리는 것이 잘 되지를 않으니 더욱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과 아이에 대해 화가 나고,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사실 아이의 학업 수준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게 당연하다. 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의 학업 수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화부터 나고 손부터 먼저 올라간다. 아이의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부모의 감정을 접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아주 태평스럽게 말이다.

그런 다음 좀 더 나아지기 위해 함께 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나름대로 아이에게 노력을 기울였건만, 기대만큼 아이의 학업 수준이 오르지 않더라도 이를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몇 번이고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더라도 늘 기꺼이 수용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에게 좀 더 나은 배려를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학습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소리다. 이는 일종의 인격 수양이다.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다.

사실 자식이 좀 모자라야 부모가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자식 돕는 재미도 인생의 큰 행복 중의 하나이다. 부모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는 자식 별 재미가 없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 좋을지는 모르지만, 아이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별 소득이 없는 것이다. 매 맞고 혼나 가면서 자란 못난 자식들이 오히려 나중에 부모에게 더 잘 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못남 때문에 부대끼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학업 수준이 부모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내 자식의 장래가 암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아이는 결국 자신의 영역을 찾아내어 남들처럼 잘 살아갈 것이다. 부모가 보여 주는 호의와 지지가 아이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는 현재 삶에 대한 만족과 미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부모로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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