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셋에 월세, 게다가 빚까지... 뭐라고 조언하지?

[서평] 가정경제 설계 이야기 <희망통장 콘서트>

등록 2009.12.18 11:18수정 2009.12.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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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무설계회사 직원들 이야기 <희망통장 콘서트>
재무설계회사 직원들 이야기 <희망통장 콘서트>정보와사람

세상엔 돈이 없어도 걱정이고 돈이 있어도 걱정이다. 언론에서 가끔씩 나오는 희망소득 보도를 보면 '한 달 1000만 원만 받으면', '10억 원만 있으면'이라고들 나오지만, 실제 그렇게 버는 이들은 어떨까.

<희망통장 콘서트>(정보와 사람 펴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무설계회사 가운데 하나인 포도재무설계 직원들 이야기다. 여기에 고객들 이야기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재무설계'에서 '재테크'를 먼저 떠올릴 이들도 있겠지만, '재무설계'와 '재테크'의 차이는 꽤 크다.


책에서 다룬 고객들 중엔 돈 많은 이들도 있지만, 빚만 있는 이들도 있다. 먼저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살펴보자.

# 1. 아파트 열 채를 갖고 있다. 부동산이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위기에 처했다. 자산평가액이 32억 원이나 됐지만 월 2500만 원에 이르는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급매물로 내놓은 집은 팔리지 않았다. 연체 독촉과 채권자의 협박에 우울증 약을 먹는다.

2. 부부 모두 교사로 주위에서 작은중소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개발예정지를 샀다 사기를 당해 2억 원을 날렸다.

3. 맞벌이 공무원 부부다. 첫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이후 빚 1억 원이 새로 생겼다. 원룸 전세비 때문이다.

4. 세녹스(유사석유)를 팔면서 월 600만 원 정도를 꾸준히 벌었지만, 꽤 오랫동안 장사를 했는데도 5000만 원 밖에 모으질 못했다.


재무설계사들이 볼 때 많이 버는 이들은 실제 수입은 높게, 지출은 적게 생각한다. 게다가 장사를 하는 이들의 경우 허술하게 돈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새는 돈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돈이 꽤 많다.

한 아이 사교육비로 300만 원을 쓰는 자영업자는 식당 여러 개를 운영한다. 한 가게 월 수익이 3000만 원이 넘는다고 생각했지만 재무설계에 따라 따져본 결과 1000만 원에 불과했다. 자영업자는 장사를 하면서 생긴 이익으로 굴린 사채 수익률도 60~70%라 여겼지만, 역시 따져본 결과 18% 정도에 불과했다.


수입/지출을 잘못 알고 있으면 미래 계획은 당연히 꼬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 나온 재무설계사들은 여기에 칼을 들이댄다.

수입이 열악한 이들도 재무설계 대상이다. 재테크가 아니라 가정경제 점검이 재무설계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재무설계사들은 해답을 내놓는다.

# 1. 잔뜩 빚을 지고 남편은 집에서 논다. 쓰임새는 줄지 않는다. 부인이 갚고 갚아도 여전히 빚은 2억 원이다.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2. 애 셋에 월세, 게다가 빚까지 잔뜩 짊어진 상태다.

도저히 답이 없다 느껴지면서 갑자기 창문을 열고 달이라도 바라보고픈 사연도 있다.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채무자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경남은 남편이 법원에 제출한 '이의 제기서'를 혼자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암 보험도 가입한 게 없고, 집도 팔았고 카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차마저 팔았다. 그런 상태에 처한 채무자 부부가 익산 원광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대학로에서 아내가 평소 좋아하던 냉면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냉면을 사줄 수 없었다. 병원비를 내고 그의 호주머니에 남은 건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 244쪽

이런 이들에게 재무설계사들은 어떻게 조언을 할까. (2)번에 대해선 직장에서 출퇴근이 가까운 시골에 이사할 것을 권유한다. 게다가 이사할 시골엔 꽤 좋은 시골학교도 있다. 주거비용과 교육비용은 줄지만, 출퇴근이 가능해 수입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망해본 사람은 안다, 재무설계의 중요성을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는다. 어떻게 우리는 가정경제를 설계해야 할까. <영화 : 작전>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는다. 어떻게 우리는 가정경제를 설계해야 할까. <영화 : 작전>작전


포도재무설계는 처음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상대로 일을 시작했다. 생산직 조합원들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오토바이로 출근한다고 해서, 용접공이라서 보험 가입이 거부됐다. 이후 겨우 보험사와 연결이 됐을 때는 조합원들이 거절했다. 이유는 "들 만큼 들어서 더 낼 돈이 없다"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재무설계를 시작한 이유는 대표이사가 가진 신념 때문이다.

"근로자가 가정을 꾸려나가고 미래의 삶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임금을 올려받아도 그들의 생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런 바탕에서 만들어진 회사인 만큼 직원 이력도 독특하다. 라의형 대표이사는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현대자동차에서 해고된 그는 배추장사와 식당 영업을 하다 아파트 단지 새시 공사를 했지만 IMF로 망했다.

이 책을 쓴 이광구 이사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생활협동조합을 하다 크게 망한다. 이후 대우자동차, M&A회사, 부동산회사를 거쳐 포도재무설계에 들어왔다. 두 사람과는 다른 측면에서 인생 쓴 맛을 본 이들도 있다.

허남돌씨는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며 하루 만에 165% 수익이 나는 것도 봤고, 일 년 만에 여섯 배나 오른 새롬기술 종목도 가진 적이 있다. 그 때 화려한 기억 때문에 결국 주위 사람들 돈까지 끌여들여 투자를 했지만 결국 빚만 남기고 접어야 했다.

김재현 이사는 한때 부모가 서울에서 5층 주상복합 건물을 소유했다. IMF로 파산해 시골로 내려가 비닐하우스 생활을 한다. 보험일을 하며 4년 만에 부모님께 아파트를 장만해 드리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재무설계 분야로 직장을 옮긴다. 대신 소득은 1/3으로 줄었다.

최재철씨는 5년간 무역업을 하며 대략 10억 원쯤 모았다. IMF 환란에 재산은 0이 돼버린다. 이후 일당 5천 원 받는 인력시장 생활을 거쳐, 카센타에서 타이어 펑크를 때우며 월급 100만 원을 받는다. 이후 현대광업에서 월급 140만원을 받으며 일하다 재무설계에 몸을 담게 된다.

뼈빠지게 번 돈 제대로 관리하자

돈을 제대로 관리하고 계획하는 것을 모르면 아무리 벌어도 소용없다는 게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 주위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는 장기 헬스권이다.

3개월, 6개월, 1년짜리 할인 헬스권이 많이 팔린다. 사람들은 싸다는 점 때문에 많이 가입하지만 실제 이용한 날수를 따져 보면 오히려 한 달짜리 회원권을 산 사람들이 더 돈을 아꼈다는 게 통계결과다. 장기 할인권은 바로 사람들이 대체로 얼마 이용하지 않는다는 행동심리를 분석한 데 따른 만들어졌단다. 이게 바로 행동경제학이라고.

똑똑한 체하지만 결국 돈을 굴리는 이들이 만든 함정에 빠져 다들 허우적대는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돈 때문에 울고 우는 사람 여럿을 보면서 드라마 여러 편 본 듯한 기분을 느꼈다. 책을 덮고 난 뒤 통장과 각종 계약서를 꺼내 계산서를 두드렸으니 적어도 나에겐 이 책이 자극이 된 셈이다.

희망통장 콘서트 - 가정경제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 이야기

이광구 지음,
정보와사람, 2009


#재무설계 #희망통장콘서트 #이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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