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해직 이어 두 번째 해직"

[최후진술문] 전 광양중학교 윤여강 교사

등록 2009.12.18 21:05수정 2009.12.18 21:05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a

윤여강 교사 ⓒ 유성호

윤여강 교사 ⓒ 유성호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지난 1983년 처음 교직에 나와 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습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때 탈퇴하지 않아 해직되었고 현재도 전교조 조합원입니다.     

 

대부분 교사들이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듯이 저 또한 모범생이었지만 꿈도 없고 자존감도 부족한 학생이었고 교사가 된 것 또한 좋은 직업이라서 택해 운 좋게 되었을 뿐 '어떤 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다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교사였던 저는 다행히 지금의 전교조를 있게 한 좋은 동료 교사들을 만나 조금씩 교사의 삶을 배울 수 있었으며 이런 제 변화를 통해 저처럼 겉으로는 순종적이고 착한 모습에 감춰진 아이들의 고민과 억눌린 자아를 일깨워주고 진정한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옳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무조건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그 일에 관계있는 사람들이 서로 충분히 얘기해서 결정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듯이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책 또한 해당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교사임을 밝혀주십시오

 

국가의 경쟁력은 인재양성에 있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모두들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창의적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문제풀이'나 '줄세우기'식의 일제고사를 강제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들 모두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무한한 잠재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되도록 풍토와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책무성에 대해 고민한 끝에 제가 선택한 행동은 일제고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과 체험학습 안내 정도의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행동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며, 감수하고자 했지만 파면이라는 징계를 받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행동들이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들의 입장에서 거슬리고 일제고사를 강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될지 모르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성적을 조작하거나 비위를 저지른 행동이 아니고 교사로서 교육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누가 보기에도 해서는 안 될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 적용된 법령 위반의 내용이나 징계과정을 보고 겪으면서 같은 교육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 아이들 앞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정리나 최소한의 상식이나 아이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교사의 소신이나 양심은 가져서는 안 될 잘못된 것으로조차 여기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은 말이나 수업보다 교사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배우는데 말입니다.     

 

법을 지키고자 했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로 살고자 했던 저희들의 행동이 결코 헛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판결을 통해 밝혀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들은 '내일'이 아닌,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의 인격이 형성될 때 자발성과 자기통제능력이 함께 발달해야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주성이란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동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진정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족하나마 저 또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의 제 삶에 다시 주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치하에서 자기 손으로 길렀던 아이들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고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자신을 신뢰하며, 인간의 선을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고 싶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스실로 가는 열차에 올랐던 야누슈 코르착이란 분이 쓰신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은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들을 대할 때는 진지하게, 부드러움과 존경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건 간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미지의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언젠가는' '지금이 아닌 내일'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2009.12.18 21:05 ⓒ 2009 OhmyNews
#해직교사 #최후진술문 #윤여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저출산, 지역소멸이 저희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5. 5 '최저 횡보' 윤 대통령 지지율, 지지층에서 벌어진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