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변두리 골목의 풍경

2009년 한해의 끝자락에서.

등록 2009.12.30 18:05수정 2009.12.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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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 광경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김성현

▲ 동네 골목 광경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김성현

여기 나오는 동네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하면서도 진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관찰하고 이야기 들은 바는 그렇다. 여기 이야기는 여느 서울 변두리 동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다 비슷한 환경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이런 동네 골목 중 하나에 있다. 이런 덕에 오고 가며 동네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지난 여름 두 돌 가량 된 아이 유모차를 밀며 동네를 방황할 때, 어릴 때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우리 동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여름에 관찰했던 그 동네 골목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아마 이 골목은 동네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한 골목 중 하나다. 물론 시장이 위치한 골목이 훨씬 복잡하고 상권이 발달해 있긴 하지만, 여기도 나름대로 슈퍼, 미용실, 삼겹살집, 호프 등 없는 장사 빼고는 웬만한 장사는 다 있는 번화한 골목이다.

 

이 골목에는 세 집 건너 하나씩 미용실이 있고, 세 개의 횟집이 있으며 삽겹살 등을 파는 고기집이 다섯개가 있다. 호프집도 다섯개 가량 있는데 꼬치구이와 유사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맥주집까지 합치면 열개는 족히 될 것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떼다 파는 옷가게도 세개가 있으며, 몇 달전에 한 부부가 연 분식집도 있다.

 

중국집은 세 개가 있었는데 개점 휴업 상태였던 한 집이 고깃집으로 재개장한 후 두 개로 줄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유달리 외식을 좋아할 리 없건만 이렇게 집집마다 식당이니 호프집 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렇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볼 수 있지만 막상 이들 건물 주인은 볼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주인이 자기가 주인이라고 이마에 쓰고 다니는 일은 없을테니.

 

지류 골목까지 합치면 10개가 넘는 미용실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파마값은 바로 5분 거리 아파트 촌에 있는 미용실의 1/5에 불과할 정도다. 같은 성당에 다니는 교우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집도 있고, 밤 늦게 손님을 기다리며 꾸벅 꾸벅 조는 주인 아주머니도 자주 볼 수 있다.

 

근처 공장이나 가게를 대상으로 한 밥집도 있는데 여기엔 매장이 없다. 아주머니 두 세분 이서 열심히 도시락을 만들 뿐이다. 이웃 동네보다 반 정도 싼 세탁소도 있고. 세탁공장도 있다. 아직 대기업들이 한다는 대형슈퍼마켓의 침공은 받지 않아서 대형 슈퍼마켓도 두세개 있고, 중간에 작은 슈퍼마켓도 하나 있다.

 

골목 끝에 위치한 놀이터엔 밤낮으로 사람들이 북적댄다. 여름엔 제발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히 해 달라는 집에서 제작한 듯한 플래카드가 붙어 있기도 하고, 유지보수가 별로 필요없을 듯한 단순한 운동기구가 있다.

 

공원 벤치엔 누워 있지 못하게 중간에 분리대를 설치해 놓았고, 공원 지하는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더운 여름날에 한쪽에선 탈선 청소년인 듯한 아이들이 맥주를 먹기도 하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더운 집을 못 견뎌 나온 아저씨가 잠을 자기도 한다.

 

이 동네에서 가장 서글픈 장면은 손님없는 가게에서 주인이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 그나마 장사가 그럭저럭 되는 집은 일한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손님이 북적이지 않는 가게는 다른 손님을 끌지도 못해서 몇 달 안가 문을 닫고 만다. 장사가 안되는 집에 숙제하는 아이들과 같이 있는 부모의 모습은 더 가슴이 아프다.

 

지난달 시끌 벅적하게 연예인까지 불러다가 개업식을 해 결국 밤 11시에 경찰을 출동시키고야 말았던 프랜차이즈 치킨집도 그 이후로는 붐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멍하니 서있는 알바생들도 두명으로 줄었고, 명퇴금을 몽땅 부어 장사를 시작했을 주인아저씨만 손님이 부를 때마다 큰소리로 대답하며 뛰어가기 바쁘다.

 

서민 경제를 살린다는 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이 수시로 시장에 나타나지만, 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언제 되살아 날지 모른다. 좀 더 좋아질수도 있고, 더 어려워 질 수 있겠지만 이들이 지대를 내는 한 스스로 자립하기란 항상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우리 동네의 한해는 지나간다.

#사는이야기 #골목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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