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돌아보면서 생각이 남는 책들 여섯 가지 1.
최종규
그리고, 올 2009년을 놓고 돌아볼 때에는 <우애의 경제학>(가가와 도요히코 씀,그물코 펴냄)이나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숲속여우비 펴냄)나 <흐느끼는 낙타>(싼마오 씀,막내집게 펴냄)나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필립 퍼키스 말,안목 펴냄)가 돋보인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가운데 <아돌프에게 고한다 1∼5>(데즈카 오사무 그림,세미콜론 펴냄)과 <리틀 포레스트 2>(이가라시 다이스케 그림,세미콜론 펴냄)과 <현미선생의 도시락 1>(오사무 우오토 그림,대원씨아이 펴냄)가 퍽 좋았습니다. <민들레솜털>(오자와 마리 그림,북박스 펴냄)이 올해에 3권과 4권이 번역되어야 했을 텐데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가만히 보면, <내 마음속의 자전거> 또한 13권까지만 번역이 되고 14권부터는 나오지 못합니다.
2009년에 제 마음속에 파고든 좋은 책을 더 든다면, 여기에 <지로 이야기> 1·2·3권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빈센트 반 고흐 글,아트북스 펴냄)를 들고 있는데, 누군가 이 가운데 한 권을 다시 추린다면 어느 책이냐고 여쭐 때에는 <지로 이야기>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628쪽(1권) + 564쪽(2권) + 372쪽(3권)으로 이루어진 긴 소설인 <지로 이야기>는 자그마치 1564쪽이나 되는 두툼한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이 책은 글쓴이 시모무라 고진 님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만한 부피로 끝났지, 글쓴이가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면 훨씬 길었겠지요.
무척 긴 이야기라 할 만하지만, 저는 아기 기저귀를 빨고 어르고 달래면서 <지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기를 겨우 잠재운 깊은 밤에 조용히 일어나서 읽고, 새벽나절 빨래를 하고 나서 읽으며, 아기 죽을 끓이는 부엌에서 읽었습니다. 아기를 안고 소리내어 읽어 보기도 하고, 전철간에서도 이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밖에 <잊혀진 미래>(팔리 모왓 글,달팽이 펴냄)와 <희망을 여행하라>(이혜영과 임영신 글,소나무 펴냄)와 <시타델의 소년>(제임스 램지 울만 글,양철북 펴냄)을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바지런히 읽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느꼈습니다. 제 손이 짧고 머리가 짧으며 생각이 짧은 탓에 더 많은 좋은 책을 더 널리 제 가슴으로 껴안지 못했습니다. 읽거나 훑거나 살핀 책은 천 권이 넘지만,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다문 한 권이라도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있던 해라고 생각하니, 2009년 한 해 책읽기 또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즐거웠습니다. 지난 열 해를 거슬러 보면서 기쁩니다. 이렇게 가슴으로 읽은 책들을 앞으로 우리 딸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 식구한테 돈은 없으나 좋은 마음밥이 있는 셈이니 괜찮은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식구는 돈벌이가 시원치 못하나 마음나눔은 흐뭇하게 한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