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늘 쪼들리는 나, 호사를 누리다

가수 강허달림과 추가열의 공연을 보기까지

등록 2009.12.31 18:59수정 2009.12.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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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가게를 접을 무렵, 당시 가장 많은 지출 통로였던 3개의 카드를 잘라버렸다. 이후 카드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10만원이 넘어가는 현금 지급은 늘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게다가 몇 년 새 청소년을 둘이나 둔 학부모가 되면서 내가 느끼는 현금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진 것 같다.

이런 내게 표 나는 것 없이 기분으로나 느낄 수 있는 콘서트 표 구입은 여간 망설여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일지라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속으로야 아무리 바쁘고 쪼들려도 나를 위한 마음의 여유나 쉼이 중요하다 벼르지만, 현실은 영 딴판. 콘서트 표를 살 수 있는 돈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되고 마는 것이다.

삶에 늘 쪼들리는 나, 호사를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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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열 크리스마스 콘서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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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허달림 송년 콘서트(홍대입구 상상마당 12월 18일) ⓒ 김현자


이런 내가 올 연말 일주일 사이 두 번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누렸다. 그것도 몇 년 전부터 좋아하여 즐겨듣던 노래를 부르는 가수(추가열)와 올 가을 우연한 계기로 좋아하게 된 가수(강허달림)의 공연을 말이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겠다 싶은 행복이다.

강허달림의 콘서트가 있던 지난 18일에는 극심한 몸살이 시작되고 있었다. 늦여름부터 가을, 겨울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혹사당한 몸이 이제는 좀 쉬웠으면 좋겠다는 신호를 며칠 전부터 보내왔음에도 약으로 버틴 결과였다.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아 몸살 약을 먹고 공연장을 찾아 팬들의 열기에 휩싸였다. 시시때때로 내려앉는 눈꺼풀의 무게를 느끼며.

와중에 아는 분이 추가열 콘서트에 가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런데 이런!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싶어 기쁜 마음에 덜컥 약속부터 하고 날짜를 헤아려보니 공연이 있는 날까지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공연은 오후 5시인데. 아니, 한달 동안 해온 일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오후 6시에 끝낼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기분이 그랬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좋은 기회를 놓아야만 하는, 허둥대고 사는 내 삶이 한편으로 서글퍼지기만 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까지 겹치면서. 하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함께 일을 한 사람들의 배려로 23일 늦은 저녁에 일을 마무리하고 다소 여유 있는 마음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사실 추가열의 이번 콘서트를 놓치지 않고 꼭 보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처럼 가족을 챙긴다고 자신의 문화적인 충족은 거의 챙기지 못하는, 때론 언니인 나보다 더 의젓하고 속 깊은, 때론 친구 같은 6살 터울의 동생이 추가열의 팬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그가 노래하는 라이브 카페에 가봤으면 할 만큼 몇 년째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꿈 속에서 콘서트를 보지 못해 얼마나 아쉽고 서운했는지 몰라. 언니를 콘서트 장 입구에서 만났는데 언니가 너무 피곤하게 자고 있는 거야. 그래서 깨우지 못하고 나도 옆에서 가만히 있다가 잠깐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2부까지 끝나고 만 밤 9시인 거야."

불과 며칠 전까지 일 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으니 혼자 가라고 했기 때문일까? 늘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사는 언니의 처지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일까? 콘서트가 있는 숙명여대 아트홀을 향하는 지하철 6호선에서 동생은 며칠 전의 꿈을 들려주며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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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열 크리스마스 콘서트-임지훈 ⓒ 김현자


사실 좀 부끄럽게도 하나뿐인 친정 여동생에게 언니로서 그간 행복한 생활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결혼과 함께 사고와 화재, 사업실패 등 원치 않는 일이 몇 년 주기로 연거푸 일어나다 보니 언니로서 동생을 보듬어 줄 때보다는 걱정과 염려를 하게 할 때가 더욱 많았던 것이다. 이런 내가 동생에게 안겨 줄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동생은 그간 내게 감로수와 같은 도움을 참 많이 줬다. 몇 년 전 화재가 났을 때 사소하지만 가장 절실한 아이들의 옷가지들을 챙겨준 것도 동생이었다. 급하게 메워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절절 매다가 염치없게 몇 번을 손을 벌려도 핑계 한 번 없이 도와줬던 동생의 변함없는 마음을 어찌 잊으랴.

이런 동생이 수많은 가수 중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추가열씨였고 콘서트에 함께 가자는 말에 언니 잘 둔 덕분에, 언니와 함께 오붓하게 귀한 콘서트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무척 행복해 했던 것이다.

몇 분 후면 드디어 동생이 몇날 며칠을 기다려 왔던 콘서트 시작, 콘서트를 선물한 지인의 특별한 배려로 동생과 나는 두 번째 줄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다렸다.

콘서트의 주인공인 추가열씨가 등장해 대표곡이랄 수 있는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비롯한 여러 곡들을 불렀다. 동생은 옆에 내가 있는 것조차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는 듯 디카와 폰카에 추가열씨의 모습을 열심히 담고 손을 머리끝까지 올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추가열씨의 수많은 아줌마 팬들에 휩싸여.

추가열씨의 목소리는 추억 속 알싸한 첫사랑처럼 감미롭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요즘 몇 년 소규모 자영업자의 아내로 가정 경제 일부분을 감당하느라 팍팍해진 내 가슴을 추억에 젖게 했고 울먹이게 했다. 콘서트를 앞두고 50~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의외다 싶었는데, 추가열씨의 노래를 들으며 아줌마 팬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혜은이, 원미연, 임지훈 등이 우정 출연했다. 혜은이는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가수이고 임지훈씨는 20대 초반에 친하게 지내던 한 언니, 88올림픽 무렵에 간신히 이어오던 시한부 삶을 마감해버린 언니가 좋아하던 가수라 아픈 추억과 함께 좋아하는 가수다. 추가열씨와 우정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동안 잊고 있던 지난날과 스쳐간 인연들이 떠올랐다.

우리 내년에는 형제들과 콘서트 송년모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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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열 크리스마스 콘서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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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열 크리스마스 콘서트 ⓒ 김현자


"내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러 와야겠어. 아무리 쪼들려도 한 번씩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여주고 그래야 할 것 같아. 우리 아이들에게 공연 같은 경험을 너무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오늘 참 미안한 생각이 들고 그러네."

"그래. 형제들 송년회를 멋진 공연과 함께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공연의 특별함과 의미도 알게 하고 말이야."

해마다 친정 형제들끼리 송년모임을 하곤 했다. 가끔은 아이들과 좋은 공연을 함께 보는 송년모임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 동생은 콘서트의 감동을 자꾸 말한다. 내게 더러더러 듣기 거북한 지적도 조심스럽게 곧잘 하는 동생이다. 그러나 듣기 좋은 소리는 잘 하지 못하는 동생이 감동을 자꾸 말하는 것을 보면 무척 좋은 시간이었나 보다.

몇 년째 계속되는 불황에 작은 규모의 자영업자의 아내인 내게 2009년은 유독 많이 힘들었다.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더 앞설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일에 치여 몸살과 몸살을 되풀이하는 동안 1년이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그래도 바쁘고 힘든 와중에 이렇게 잠깐 누리는 마음의 여유는 삶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몸살에도 불구하고 만끽한 강허달림의 콘서트와 일에 치여 못 볼 뻔 했음에도 전력을 다해 본, 동생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본 추가열의 콘서트는 2010년을 희망으로 맞이하는 활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날 써두었던 글을 이제야 다듬으며 콘서트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는 감회가 새롭다. 

'언제나 알뜰하고 소박한, 깊은 생각한 조용한 목소리로 친정 형제들을 조근 조근 챙길 줄 아는, 때로는 언니인 나보다 더 깊은 배려를 가진, 때로는 친구와 같은 동생의 얼굴에 흐르는 행복을 보는 마음이 사실은 추가열씨와 TV로만 봤던 가수들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행복했노라고 기록한다.' - 추가열씨의 송년콘서트를 본 12월 24일 밤에

그날 집에 돌아와 동생이 "이 다이어리를 보는 순간 언니 생각이 나더라"라는 말과 함께 건넨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2010년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나와 연결된 '소중한 인연의 끈'들을 꼭 잡고.

덧붙이는 글 | 추가열 송년-크리스마스 콘서트는 지난 12월 24일과 25일에 숙명여대 숙명아트홀에서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추가열 송년-크리스마스 콘서트는 지난 12월 24일과 25일에 숙명여대 숙명아트홀에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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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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