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7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3신 : 7일 저녁 7시 30분]
오세훈 "늦었지만 장례를 치러 다행" - 유가족 "1년 내내 왜 이런 고통을..."
"빈대도 낯짝이 있지,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그렇게 유가족들 길바닥 피눈물 흘리게 해놓고 다 끝나니까 왔어? 기념사진 찍으러 왔어?"
뒤늦게 용산 철거민의 빈소를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쏟아진 비난이다. 오세훈 시장은 7일 오후 6시 25분께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찾아 유가족들을 조문했다.
참사 이후 오 시장이 철거민들의 분향소를 찾거나 유가족들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협상 타결 이후에도 영결식 장소로 서울광장을 허용해달라는 유가족과 장례위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오 시장은 분향을 마친 뒤 다음 같은 입장을 밝혔다.
"돌아가신 분들, 유족들에게 정말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정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늦었지만 장례를 치르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추후에 유사한 사례가 또 발생되지 않도록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의외의 방문에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다른 발언 없이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따라붙어 "영결식 장소는 어떻게 되나", "장례절차는 어떻게 협조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보좌진들이 "기자회견이 아니지 않냐"며 가로막았다.
유가족들과 용산 범대위의 반응도 차가웠다. 오 시장을 만난 유가족들은 "1년 내내 왜 이런 고통을 유가족에게 주었냐"고 말했고, 이강실 상임 장례위원장도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라"며 요구했다.
애초 오 시장 측은 이날 오후부터 조문 의사를 밝혔지만 가족들은 오랜 논의 끝에 "장례식장을 찾는 모든 분들을 맞이하자"면서 이를 수용했다.
류주형 범대위 대변인은 "그동안 유가족에게 사과나 유감의 뜻도 밝히지 않던 오세훈 시장이 협상 타결 이후 마치 자신이 용산참사 해결의 주역인 것처럼 공치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조문을 정치적 제스쳐로 활용하려 한다면 유가족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류 대변인은 "오 시장은 참사의 근본원인인 뉴타운 재개발 정책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에도 서울시의 동절기 강제철거고 마포구 용강동의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용산 유가족의 빈소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이해찬 전 총리,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들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운찬 총리는 이날 오후 '국무총리 정운찬'이라고 적힌 조화를 보내왔다.
강기갑 대표는 "용산참사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진보정당 대표로서 죄송하고 죄인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대해 "절반의 합의를 하고서 서울광장도 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고인들을 뵐 면목이 없다"면서 "이렇게라도 장례를 챙기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 법무부 장관인 천정배 의원은 수사기록 문제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작성한 수사기록을 비공개해서는 안 된다, 3000쪽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제 용산 참사에 대해 법적·사회적 평가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면서 "1심에서는 법원이 일방적으로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진실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가족 오열... "용산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한편, 이날 다시 고인들의 시신을 확인한 일부 유가족들은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오열해서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와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는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하며 가족의 부축을 받았고,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는 "어떻게 해, 경찰들, 이 놈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죽여놨어?"라고 울부짖었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도 소리높여 울었다.
참사 당시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생긴 타박상에 고도 화상이 겹친 데다가 사건 초기 유가족 동의 없는 부검까지 이뤄지면서 철거민들의 시신들은 훼손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상림씨 큰아들 성연씨는 "(참사 이후) 8개월 동안 새활하던 곳이라서 낯설지는 않은데 아버지를 보내는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면서 "시신조차 보지 못하고 1년을 보냈는데 감회가 새롭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한일은 너무나 작고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다"면서 "용산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유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어머님들이 그동안 많이 늙으셨다, 주거시설이 아닌 곳(고 양회성시가 운영하던 용산 현장의 삼호복집)에서 생활하면서 건강도 많이 해쳤다"고 전했다. 동생 이충연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몸이 더 야위었다"면서 "우리는 막내(이 전 위원장)을 걱정하는데 막내는 가족 걱정을 많이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범국민장 장례위원은 7일 현재 8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목표치인 50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범대위는 오는 8일 최종마감일까지 1만 명에 달하는 장례위원이 모집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