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폐쇄가 세종대 발전 위한 일?

어느 졸업예정자가 총장님께 드리는 편지

등록 2010.01.08 14:20수정 2010.01.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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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희 세종대 총장님께

안녕하세요. 총장님!

서울에 지난 1669년 1월 이후 40년 만에 가장 큰 폭설이 내렸다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눈이 가득 쌓인 캠퍼스를 바라보니 문득 취임하시고 각종 학생들의 행사와 초청강연 등에 바쁘게 교정을 돌아다니시던 총장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이번 2010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세종대 교육학과 05학번 이민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갑자기 총장님께 편지를 띄우게 된 까닭은 폭설 못지 않게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총장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요. 바로 지난 12월 22일, 교무회의에서 세종대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의 학내 복지사업 전체 운영권을 모두 입찰하겠다는 공고 안을 통보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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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견 없는 학생복지 웬말이냐 세종대 캠퍼스 곳곳에는 학내 복지사업 외부업체 매각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 이민영


평범한 조합원 중 한 명이었지만 저는 누구보다 우리 대학의 생협에 자부심을 느끼며 학교를 다녔기에 그 소식에 먼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미 연말에 진행된 5주간의 감사를 통해 생협이 아무 문제없이 복지사업을 운영해 왔다는 것이 확인됐다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궁금했던 것은 왜 학내복지와 같이 학생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사업이 진행 중인데 학생들에게 일언반구가 없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새로 개관할 학생회관의 목적과 쓰임은 오랫동안 학교와 학생들이 논의하여 결정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총장님도 충분히 들어오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토록 갑작스럽고 비공개적으로 학내 복지사업을 외부업체에 매각하신다고 하는 것인지 저는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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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 모형도 3월 완공예정인 학생회관에는 편의점, 푸드코트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www.sejong.ac.kr


총장님께서도 들으셨겠지요. 바로 그 폭설이 쏟아지던 지난 4일, 공부를 하겠다고 학교에 삼삼오오 모여든 600여 명의 학생들이 추위에 언 손을 녹여가며 펜을 쥐고 복지사업 외부 업체 매각에 반대하는 서명을 한 일을요. 단 이틀 동안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취임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종대의 당면과제는 "화해와 발전"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화해란 학내에 아직도 상존하는 불편과 불화를 우리 스스로 없애자는 것이라고, 내 편과 네 편 가르지 말고 네 편의 허물도 감싸 안는 너그러움을 서로 가지자고. 저 역시 그 "화해와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총장님은 또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화해와 발전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만나겠다고. 한 명 한 명과 소통하겠노라고. 그런데 한 명이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도 없는 방학 중에 천 명이나 모였습니다. 길이 얼어붙고 미끄러워 찾아오기 불편하시다면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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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 폐쇄 반대 시위 지난 4일, 학생들이 교직원 식당에서 한 시간 가량 학내복지사업 일방적 외부업체 매각을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 세종대학보사


학생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복지사업의 매각과 생협의 존폐 여부가 아닙니다. 물론 세종대학교 생협은 대학 생협 중에서도 단연 모범사례로 손꼽히며 학내 구성원들에게 위탁받은 복지사업을 내실 있게 운영해 왔습니다. 한일 간 대학생협 교류 시 일본학생들이 잊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바로 우리대학 생협입니다.

학생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렇게 의심할 여지없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생협의 존폐 결정마저 한두 달 안에 뚝딱 학생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된다면, 과연 총장님이 누누이 강조하신 "화해와 발전"이 가능하겠냐는 것입니다. 복지사업처럼 학생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마저 암암리에 결정되고 일방적으로 공지하는데 어떻게 학생들이 학교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혹 발전과 관계없는 것에는 눈, 귀, 입을 모두 닫겠다고 하신 말의 대상이 바로 학생들입니까? 학생들의 주장이 대학의 발전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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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학교 자유게시판 복지사업 매각과 관련한 소식이 전해진 뒤로 학내 게시판은 생협을 지켜야 한다는 학우들의 목소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 세종대학교 공식홈페이지


저는 총장님이 '생협은 학내 좌파 학생들의 배후조종자'라는 억측 담긴 루머 따위를 믿고 있으시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여 그 소문이 사실일지라도 학생은 좌파이든 우파이든 모두 학교의 구성원이기에 불화의 씨앗이 아니라 화해하고 함께 협력해 발전해 나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그들과 소통하지 않고서는 학교의 화해와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박우희 총장님! 우리 대학을 그토록 화해와 발전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저는 학생과 교수님들께 더 나은 학업과 연구를 위한 기회를 마련하여 그들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적정한 가격 수준에 학내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비용이 다시 학생들을 위해 투자되는 비영리조직인 생협을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가 발전해야 할 이유인 학생들이, 외부업체가 아무리 학교 운영지원금을 준다 해도 결국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이윤임이 자명하기에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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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지키기 서명운동 지난 4,5일 이틀간 진행한 생협 지키기 서명운동에 일천명이 넘는 학우가 참여했다. ⓒ 세종대학보사


한 차례의 기록적인 폭설을 뒤집는 또 다른 폭설이 오기까지의 40년간 세종대는 끊임없는 분규에 시달려 왔습니다. 총장님이 3년 간 힘쓰실 "화해와 발전"은 오랫동안 상처 입은 세종대 구성원들을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화해와 발전'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과 같은 일방적이고 비공개로 처리하는 학내복지사업의 외부업체 매각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배운 '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educare'로 '이끌어 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모교의 총장으로서 학생, 교직원, 교수 모두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이를 이끌어내는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주십시오. 제가 졸업한 후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찾아오면 자랑스러울 학교는 3주체의 의견이 고루 반영돼 그것이 현실이 되어있는 학교입니다.

지난 11월 26일, '세종대학교 발전방안 공모' 표창식 때 총장님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서 언제든 기꺼이 의견을 들으시겠다고요. 총장님!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세종대 #생협 #학내복지 #외부매각 #박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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