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2] 2003-2008 국공공립/사립 등록금 및 물가 인상률(단위:천 원,퍼센트)
새사연
정부가 내놓은 '취업 후 상환제'는 이러한 값비싼 등록금을 인하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다. 당장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후 갚으라는 대출제도다. 따라서 등록금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취업 후 상환제가 기존의 대출제도보다 진일보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존의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제도가 학생이 졸업하면 소득이 없어도 바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지만, 취업 후 상환제는 일정 기준 이상 소득이 생기면 소득수준에 따라 원리금을 상환한다는 장점이 있다.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1만명이 넘어선 상황에서 적어도 대학생 신분일 때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교수노조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새사연에서도 등록금 대안으로 제시한 '등록금 후불제'를 정부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정부가 최종적으로 발표한 취업 후 상환제 시행방안은 여러 가지 문제가 눈에 띈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무상장학금과 무이자 지원을 모두 폐지했고, 대출금리는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5퍼센트 대의 높은 수준으로 책정했다. 게다가 취업 후에 원금을 상환할 때 내는 이자는 당시의 시장금리에 따른다.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는 호주의 경우,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며 영국은 물가상승률만 반영하는 제로금리로 운영하는 것에 비하면 서민들에게 너무 과도한 금리다.
또한 소득기준과 상환율에도 문제가 있다. 정부는 졸업 후 대출받은 학자금을 상환해야 하는 기준이 되는 소득을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의 100%, 상환율은 20%로 정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다면 본인 소득이 연 1천592만 원 이상이면 원리금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의 신용불량자 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미래에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빚쟁이'를 양산하는 꼴이다.
이에 지난 연말에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정부의 취업 후 상환제를 수정하고 '등록금 상한제'를 함께 실시할 것을 합의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안' '장학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을 1월 27일, 28일 상임위를 열어 논의하고 2월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각 대학의 학자금 대출 일정 상 1학기 시행이 불가능하다고 밝혀 법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교과위는 취업 후 상환제를 1학기부터 시행하기 위해 1월 내 원포인트 국회를 열 것을 논의 중이다. 이제 관건은 등록금 인상을 막는 제도적 장치인 '등록금 상한제'와 제대로 된 '취업 후 상환제'가 실시될지 여부다.
MB 교육정책 전환 없이 사교육비 경감 없다2009년 이명박 정부는 표방했던 공약과 관련된 여러 정책을 추진해왔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학원 심야교습 금지와 학파라치제가 거론됐고, 외고를 위시로 한 특목고 입시제도 개선안이 오갔다. '학교 만족'을 위해 일제고사, 교원평가,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사교육비와 같이 각 가계에 교육비 부담의 주범이 되는 대학등록금에 대한 정책으로 취업 후 상환제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정책들은 용두사미에 그친 상태다. 학원 심야교습은 기존처럼 시도별 조례로 규제하도록 조치했고, 학파라치제는 사교육비 절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특목고 입시제도 개선안은 외고에 학생선발권을 주면 안 된다는 핵심 논란을 비껴갔다.
게다가 정부가 '학교 만족'을 위한 것이라 내세운 정책은 오히려 사교육을 팽창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제고사와 그 성적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정부는 각 학교의 평균성적이 높아지면 학부모/학생이 학교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적으로 일제고사를 보고 그 성적을 공개해 학교 간 경쟁을 촉발하려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은 학부모/학생의 학교만족도를 높이긴 커녕 학생과 학교를 점수로 서열화해 사교육만 팽창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학벌로 인한 임금차별과 불안정한 일자리 등 학벌구조가 공고하고 사회안정망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소수의 프로젝트형 학교는 명문대 입학의 전제조건이며, 나아가 평생 삶의 질을 좌우할 기준이 된다. 따라서 소수의 학교에만 특혜를 주는 식으로는 다수의 일반고를 삼류학교로 전락시켜 과열 경쟁의 폭을 확장시킨다. 입시 경쟁은 차별화된 교육에 대한 열망을 부추겨 사교육을 수반하게 돼 있다.
결국, 현재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정책과 '학교 만족' 정책은 기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팽창시키는 요소를 개선하거나 규제해야 하는데 정부는 학교만족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이러한 요소를 더욱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팽창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의 공공성을 견지하는 것이 선차적이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대학이나 특목고/자사고 진학을 위한 '입시산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달해왔다. 입시전형이 바뀌면 사교육도 카멜레온처럼 그에 알맞은 모습으로 재편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학교에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자율성이 아닌 학생 선발에 대한 자율성을 준다면 그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선발기준만큼 다양한 사교육이 난립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학벌구조와 입시경쟁의 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각 학교는 학생을 선발할 때 국민 대다수가 공정성과 형평성에 동의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관리해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