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속에 흐르는 눈물을 보다

[서평] 최상일 PD가 쓴 <백두대간 민속기행1·2>

등록 2010.01.17 11:00수정 2010.01.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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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백두대간 민속기행1·2〉
책겉그림 〈백두대간 민속기행1·2〉 MBC프로덕션
▲ 책겉그림 〈백두대간 민속기행1·2〉 ⓒ MBC프로덕션

MBC에서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은 정말로 인상 깊었다. 시청자들에게 사실감을 맛볼 수 있도록 그 오지까지 찾아가 촬영한 수고도 대단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으뜸이었던 것은 문명과 단절된 부족들 나름대로 순수성과 연대감을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입술 아래쪽 부분을 찢은 채 나무 조각을 그 사이에 넣고 사는 모습이나, 화살과 창으로 짐승을 잡는 모습은 다소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와는 달리 몇몇 부족들은 문명에 노출된 채 그들의 생산성을 팔며 거래도 하고 있었다. 원숭이 하나로 티셔츠 바꾸어 입거나, 다른 물품의 대가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활보하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오랜 삶을 살아 온 마을 원로들은 여태 지켜온 순수성과 연대감, 그리고 여러 전통들을 잃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제목이 그랬던 것일까? 오랜 순수와 여럿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감과 갖가지 부족 전통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원로들이 아파하고 있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아마존의 각종 산림과 생물들이 개발이익업자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학살당하는 것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도록, 그 절묘한 '눈물'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것일까.

 

우리의 토속민요집과 북한의 민요전집을 펴낸 바 있는 최상일 PD의 <백두대간 민속기행1·2>도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있다. <아마존의 눈물>이 우리 밖에 펼쳐져 있는 민속기행을 다룬 것이라면 이 책은 우리 안에 서려 있는 민속기행을 다룬 것이다. 그것도 어느 특정 산맥을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백두대간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에 더 의미심장하다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말이 왜 중요한지는 몰랐다. 그것이 일제 때 보급된 지질학적 산맥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는, 지도연구가 이우형 선생의 말을 듣고서야 그 귀중함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나 하는 것들은 한 줄기의 흐름을 여러 갈래로 나눠버리는 것인데 반해,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전체를 한 줄기로 잇는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대간을 가로지르는 큰 고갯길을 기준으로 하여 백두대간을 네 개의 큰 구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과 삼도봉을 거쳐 추풍령까지가 첫 번째 큰 구간이 되고, 추풍령에서 속리산 줄기를 거쳐 죽령까지가 둘째 큰 구간이다. 다시 죽령에서 소백산, 태백산, 두타·청옥산을 거쳐 대관령까지가 세 번째 큰 구간이 되고, 대관령에서 오대산, 설악산을 거쳐 진부령까지가 마지막 큰 구간이다. 이렇게 하여 첫째, 둘째 큰 구간을 1권으로 묶고, 셋째, 넷째 큰 구간을 2권으로 묶었다."(<백두대간 민속기행>의 구간 나누기)

 

지금껏 최상일 PD는 백두대간을 세 차례나 타고 다녔다고 한다. 첫 번째는 산악인 구색을 갖춰 3년간 종주계획을 세워 산을 탔던 것이고, 두 번째는 백두대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민속노래를 담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 세 번째는 그 산속 마을 사람들이 지닌 삶의 애환을 듣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백두대간 속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사연이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시절을 틈타 피난길을 찾거나, 먹을 끼니를 구하기 위해 그 속까지 찾아들었다고 한다. 더욱이 북에서 내려와 살 곳이 없어서 이제는 그 산 속에 파묻혀 사는 이들도 꽤 있다고 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나물을 캐고, 나무를 베고, 도자기를 굽고,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뭐든 먹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면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문경 베바우 마을에서 7대째 살아 온 89세의 천재달 어르신도 있고, 그 옛날 90집 이상이 살았지만 이제는 단 세집만 남아 있다는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계곡 마을도 있고,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소두문동에서 5대째 살아왔다는 68세의 김흥렬 어르신도 있고, 그리고 북한에서 남으로 내려와 18년간 직업생활을 하다가 어느덧 40년을 보냈다는 실향민 김한성 어르신도 만날 수 있다.

 

그렇듯 백두대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노래와 삶을 들어 온 최상일PD는 이젠 그 줄기와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듯하다.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어떤 고난과 고통을 겪었는지, 그 속에서 어떤 애환을 읊조리며 산천을 누볐는지 생생히 보고 듣고 새겨온 까닭에서다. 그래서 그가 늙어 그 산 속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다짐한 것은 빈말이 아닌 듯하다.

 

"일제가 조선의 전통 민간신앙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오로지 조선의 민족혼을 교란하기 위한 것이었지, 스스로가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박정희가 일제의 정책을 이어받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우리 전통민속을 파괴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자체들은 관광용으로나마 개발할 전통민속이 다 없어져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1권, 506쪽)

 

"봄 가을로 성대하게 치르던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 산신제도 없어져버렸고, 훈훈한 인심의 무주 구천동 향미식당도 없어졌다. 문경 대야산 아래 돌마당 식당 주인이 바뀐 것도 확인했다. 삼도봉 골짜기의 하나 남았던 억새집은 이제 집터조차 찾기 힘들다. 다시 가보지 못한 다른 산촌도 대개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백두대간은 여전히 의연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 자락에 살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2권, 509쪽)

 

이는 1권과 2권을 통해 밝히는 최상일 PD의 진정한 속내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아마존 밀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듯이 백두대간 속에 흐르고 있는 또 다른 눈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독자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 탓에 그 순수와 연대와 전통을 보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그 가치를 잃어가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더 처참한 마음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나라가 앞서서 산과 들과 바다를 깎고 파헤치는 일에 지자체들이 두 손을 들고 합창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머잖아 가슴 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한다. 백두대간 속 어르신들이 옛 시절의 순수성과 연대감과 전통들이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데, 현 시대의 지도자들이 과연 무엇을 내다봐야 할지 뻔하지 않겠나 싶다.

2010.01.17 11:00ⓒ 2010 OhmyNews

백두대간 민속기행 2 -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PD의 신간민속 답사기

최상일 지음,
MBC C&I(MBC프로덕션), 2009


백두대간 민속기행 1 -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PD의 신간민속 답사기

최상일 지음,
MBC C&I(MBC프로덕션), 2009


#백두대간 민속기행 #아마존의 눈물 #백두대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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