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에 성산포, 서귀포, 모나코, 프랑스까지

[포토에세이] 제주여행기(7)

등록 2010.01.22 11:41수정 2010.01.2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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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애마 용눈이오름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애마, 다음 여행엔 자전거가 나의 애마가 되면 좋겠다. ⓒ 김민수


용눈이오름에서 내려와 빨강 애마를 종달리 쪽으로 몰았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곳,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조마조마 도둑처럼 가야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그 죄는 이제 막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쯤 그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빨강 애마를 타고 종달리 골목길을 천천히 다녔다. 아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윈도 틴팅 덕분에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냥, 가자, 나중에 이 글을 읽고 서운해하는 이가 있어도 오늘은 그냥 가자'고 생각하고 종달리를 빠져나와 해안도로를 타고 성산포로 달렸다. 성산포에서 1박을 하면 종달리에 사는 지인 몇 명을 부르고,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야경사진도 담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제주도에 온 것을 아는 지인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다시 서귀포로 넘어와 저녁을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 내가 그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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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일몰 오름의 정상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 김민수

일주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가는 길. 서쪽 하늘 구름 사이로 예쁘게 그려놓은 여인의 눈썹을 닮은 초승달이 떠있다. 지금껏 살면서 저렇게 예쁜 초승달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잘 빠진 초승달이었다.

초승달은 음력 3일경 해가 진 후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다이어리를 꺼내 음력 날자를 확인해 보니 12월 3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망원렌즈가 있으면 좋았을 것을, 최대한 당겨 찍을 수 있는 것이 단렌즈 100mm뿐이니 저 예쁜 달을 담을 재간이 없다.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전에는 그랬다. 장비가 문제가 아니라 보는 눈이 문제라고, 똑딱이 카메라도 얼마든지 구도만 잘 잡고 주제만 잘 잡으면 전문가용 못지않게 담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면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사진을 접하면서 담고 싶은 대상과 주제에 따라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에도 '돈'이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놓고 돈 먹기'는 진리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아프지만 그것이 현실이다보니 너도나도 일등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초승달을 바라보는 내내 내 머릿 속에는 일몰의 시간 용눈이 오름에서 바라보았던 제주의 풍광들이 스쳐지나갔다.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오름을 배경으로 한 초승달을 보았을 터인데….

서귀포에 도착하여 지인들과 식당에 들렀다. 일요일 저녁이라 외지의 손님들은 다 빠진 상태, 식당은 썰렁했지만 제법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별로 음식에 까다롭지 않은 내게도 별맛인 데다 8시 30분인데 주문할 것이 있으면 지금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먹고 나가주시면 자기들도 퇴근을 빨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음 놓고 편하게 드리라고 덧붙이면서.

눈치를 보느라 얘기할 시간을 놓쳐버렸다.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 역시도 외지 손님이 다 빠져나가서인지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그곳은 '모나코'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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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리틀 프랑스 제주에는 하이킹 여행객들을 위한 저렴한 게스터하우스도 많이 있다. ⓒ 김민수


모나코는 유럽의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근처에 있는 나라로 페니키아인이 최초로 거주하다가 로마에 정복되었던 나라다. 후에 이탈리아 그리말디가의 영지가 되었다가 1861년, 프랑스의 보호(?) 하에 주권을 인정받은 후 1919년 베르사이유 협정에서 독립과 주권을 보장받은 나라다.

모나코의 창으로 보이는 서귀포시, 그곳에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야간조명이 보였다. 그것은 천지연방파제에서 새섬을 잇는 다리로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새섬은 다리가 생기기 전에도 낚시꾼들이 배를 타고 많이 가던 곳이다. 다리가 생겼으니 새섬은 낚시꾼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교양있는 낚시꾼들이라면 새섬이 잘 지켜지겠지만 사람들이 꼬이다보면 결국 새섬의 오염도 불가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주도에 사는 지인이 말했다.

"다리가 생긴 후 새섬은 낚시꾼들의 천국이 되었고, 난장판이 되었다네. 그전엔 배타고 드나들었는데 이젠 걸어서 들어가니까 너도나도 그곳에 가는 거지."

서울 야경이라면 담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용눈이오름에서 본 괴물 같은 풍력발전기와 오버랩 되면서 사진 찍을 맛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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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리틀 프랑스에서 바라본 서귀포시 ⓒ 김민수


지인이 모나코 근처에 숙소를 잡아놓았으니 가서 이름만 대고 자면 된단다. 숙소 이름은 '리틀 프랑스'였다. 성산포에서 서귀포, 모나코, 프랑스까지 이어지는 여행코스인 셈이다. 숙소의 창밖으로 서귀포항의 불빛이 보이고, 서귀포시의 야경이 펼쳐진다. 모나코에서 보이던 다리가 보이질 않으니 비로소 제주도의 야경 같은 느낌이 든다.

펜션이 아닌 호텔급이다보니 세면도구가 골고루 갖춰져 있어 아침에 대중목욕탕에 들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시간이 되면 '해수탕'에는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해수탕하면 역시 함덕에 있는 해수탕이 전망도 좋은데 리틀 프랑스에서는 너무 멀다.

정원을 바라보니 하귤나무에 하귤이 가득하고, 비파나무에 꽃이 무성지게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잔디밭에 수선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 그렇구나, 여기는 제주도구나. 수선화를 보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제주도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새겨진다.

(이어집니다.)
#제주도 #성산포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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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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