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보러 갔다 탁본만 했어요

등록 2010.01.21 18:16수정 2010.01.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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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 셋, 동생네 아이 셋. 이들 여섯은 올해도 어김없이 낮에는 우리 집, 밤에는 동생집에 삽니다. 그러니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제수씨가 힘듭니다. 특히 제수씨는 낮에 힘들게 일을 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여섯을 감당해야 하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여섯이 좋아하니 어떻게 합니까. 아내와 제수씨가 감내해야 할 일입니다.

 

그제(19일)는 아이들에게 다음날 진주성 안 국립진주박물관에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박물관에서 호랑이 해를 맞아 '호랑이 전'을 연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달 전에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제 비가 와서 아이들을 설득시키기는 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가지 못한 진주성 나들이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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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앞에서 ⓒ 김동수

촉석루 앞에서 ⓒ 김동수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추웠습니다. 촉석루 앞에서 찍었는데 촉석루를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지겹지 않습니다. 1년에 아무리 가지 못해도 4-5번은 갑니다. 그런데도 지겹지 않고 새롭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다들 서울 서울 하는데 왜 그 복잡한 서울에 사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아이들이 환호를 합니다.

 

"아빠 대포가 있어요. 큰 아빠 대포예요. 대포"

"대포가 아니야."

"대포가 아니면 무엇인데요?"
"응. 임진왜란 때 썼던 천자 · 현자 · 지자 총통이다."

"총통이요?"
"응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래 모르겠다. 쉽게 말해 대포다. 대포"

"아빠 우리 대포 한 번 쏴 볼까요?"

"막둥이가 한 번 쏴라."
"여봐라 방포하라 방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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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현자, 지자총통을 쏘고 있는 아이들 ⓒ 김동수

천자총통,현자, 지자총통을 쏘고 있는 아이들 ⓒ 김동수

막둥이가 <불멸의 이순신>을 보았는지 '방포하라'는 말을 합니다. 방포하라는 말에 형과 누나들이 천지와 현자, 지자 총통을 쏘는 시늉을 합니다. 막둥이와 아이들이 쏜 천자 총통에 적군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천자총통 쏘는 일을 뒤로 하고 오늘 목적인 호랑이 전에 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 전은 어디서 하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왔는데 진짜 호랑이는커녕 사진도 없었습니다. 결국 박물관 안에서 상영하는 '진주대첩' 입체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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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 입체영화를 보기 위해 안경을 쓴 막둥이 ⓒ 김동수

진주대첩 입체영화를 보기 위해 안경을 쓴 막둥이 ⓒ 김동수

박물관에 올 때마다 진주대첩 입체 영화를 보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대포알이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울기도 하지요. 맨 앞자리에 앉은 막둥이는 무섭다면서 아빠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입체 영화를 보고 호랑이 전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아무리 호랑이를 찾아도 호랑이는 없었습니다. 사실 박물관에 호랑이가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호랑이를 보러 왔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들은 호랑이 전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호랑이 그림을 탁본하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 그림을 탁본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먼저 십이지와 호랑이에 관한 동화를 읽고 문제를 풀어야 탁본을 할 그림과 종이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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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 공부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 김동수

십이지 공부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 김동수

호랑이 그림을 탁본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은 십이지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냥 종이 한 장 주어 탁본하는 것보다. 십이지 공부도 하고, 호랑이에 관한 동화도 읽고서 호랑이을 알게 하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아내도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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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 김동수

십이지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 김동수

"아빠 호랑이는 없고 십이지와 동화만 읽었요? 아빠가 호랑이 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빠는 호랑이가 있는 줄 알았지. 그래도 생각해보라. 박물관 안에 어떻게 호랑이가 있을 수 있겠니. 호랑이는 진양호 동물원에 가면 있다."
"호랑이 보고 싶었는데."
"호랑이는 보지 못했지만 십이지 공부 잘 했잖아. 쥐부터 돼지까지. 이런 공부하기 힘들어. 책에서만 읽지. 그림을 직접 보면서 공부하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그림을 직접 보고 공부하면 머리에 오래 남아 있을거다. 이제 확실하게 십이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다."

 

호랑이 탁본을 하기 위해 십이간지를 열심히 공부하고, 동화책을 읽고 호랑이가 어떤 동물인지 안 아이들은 호랑이 탁본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호랑이 탁본은 처음이라 그런지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대로 잘 따라합니다. 자기가 뜬 탁본은 집에 가져 갈 수 있다는 말에 그림을 뜨고, 풀을 칠합니다. 풀 칠한 그림을 천에 붙입니다. 막둥이는 풀 칠이 힘든지 아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아빠가 해주세요."
"막둥이가 해. 풀 칠도 못해."
"아빠가 그냥 해주세요."

"자꾸 아빠한테 부탁하면 안 돼. 네가 할 수 있어야지.

"풀 칠만 해주세요."

"사실 아빠가 더 하고 싶었다. 아빠는 이런 것 잘 안 해봤다."

 

탁본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었지만 아이들과 십이지 공부 열심히 하고, 호랑이 동화 읽고, 호랑이 탁본 뜨면서 한나절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 없는 곳에 자기들을 데려갔다는 이유로 쟁반자장과 쟁반짬뽕을 사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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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진 탁본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동수

호랑이 사진 탁본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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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간 뜬 호랑이 탁본을 들고 찰칵 ⓒ 김동수

자기간 뜬 호랑이 탁본을 들고 찰칵 ⓒ 김동수

2010.01.21 18:16 ⓒ 2010 OhmyNews
#진주성 #십이지 #호랑이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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