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가 한 차례 지나갔다. 날씨도 풀렸다. 겨울을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왠지 아쉽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여행이다. 방에 콕 박혀 지내는 '방콕'보다 놀거나 여행하는 것이 몇 배 좋다.
두툼하게 옷을 여미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전라북도 무주다. 앞장은 삼촌이 섰다. 삼촌은 해마다 이맘때면 나를 비롯해 조카들을 데리고 스키장에 가셨다.
당초 아빠께서도 같이 가시기로 했다. 그런데 허리를 다치셔서 같이 갈 수 없었다. 아빠가 못 가신다고 하자 예슬이도 가기 싫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집에선 나 혼자 갔다. 대신 내가 두 사람 몫까지 더 재미있게 놀아야했다.
들판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하얗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동이 터 오르려고 했다. 창밖은 아침의 색과 저녁의 색이 조화를 이뤄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나와 혜미, 한솔이 언니는 차 안에서 수다를 떨었다. 차가 무주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도 넘게 수다를 떨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아줌마' 같았다. 나도 벌써 아줌마가 다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다로 채웠다.
무주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날씨가 엄청 추웠다.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인 줄 알았는데 추웠다. 겨울이어서 그렇겠지만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추운 것 같았다.
나는 보드를 빌리며 다짐했다. 오늘은 꼭 폼나게 보드를 타고 스키장을 자유자재로 휘몰아치고 다닐 것이라고. 사실 나는 보드를 지난 겨울에 처음 타봤다. 그 전에는 스키만 탔는데, 작년부터 스키가 조금은 시시해졌다. 그래서 보드를 탔었는데 엉덩방아를 많이도 찧었다. 그래서 이번에 타는 보드가 내게는 두 번째 타보는 것이다.
스키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피난민들의 집합소 같았다. 우리는 보드를 들고 곤도라를 타고 중급 코스로 곧장 올라갔다. 보드를 잘 타는 한솔이 언니는 뒤로 타는 법을 익힌다고 했다.
보드의 초보라 할 수 있는 나와 혜미는 S자로 속도를 높여 타는 법을 완전히 익히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끄덕하면 넘어졌다. 아마도 수십 번은 넘어졌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눈이 많이 녹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번 제대로 넘어졌다.
그곳에서는 잘 타는 사람들도 넘어지기 일쑤였다. 한 번은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남의 눈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나와 혜미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한동안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나와 혜미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계속 같이 다녔다. 거기서 혜미의 친척 언니와 오빠도 만났다. 그 언니와 오빠는 나와도 만난 적 있었다. 우리는 보드가 처음이라는 그 언니와 오빠들 앞에서 타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뭐... 나도 어지간한 것은 할 줄 알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 언니와 오빠는 운동신경이 아주 뛰어난 것 같았다. 한 번 가르쳐주면 바로바로 터득했다. 이렇게 같이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나와 한솔이 언니, 혜미, 삼촌 그리고 그 언니와 오빠는 처음부터 같이 온 것처럼 보드를 함께 즐겼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아침 일찍 와서 보드를 타기 시작했는데도 해가 산등성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마치 시계 초바늘이 째깍 째깍 가듯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갔다. 해 기우는 것을 보니 아픈 줄 몰랐던 몸도 여기저기 아파왔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장비를 반납하러 갔다. 옷에는 얼음이 달라붙어 있었다. 몸도 여기저기 쑤셨다. 보드를 타고 놀 때는 전혀 몰랐었다. 이제 그만 탄다고 생각하니 몸이 나른해지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바지를 걷어보니 멍도 여기저기 크게 들어있다. 엉덩이는 엎어지느라 멍들고, 팔과 손바닥은 넘어지면서 지탱하느라 멍들고, 관절은 또 에고고고... 발목은 보드를 타면서 브레이크를 자주 잡다보니 곳곳이 쑤셔왔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쓰러져 내리 잤다. 새벽에 스키장에 갈 때는 '아줌마' 같았는데 돌아올 때 보니 우리는 말 한 마디 없는 새침 도도한 '청춘 걸 쓰리'였다. 잠시 아줌마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벌써부터 온몸이 쑤셔온다. 집에까지 다시 데려다 준 삼촌한테 겨우 "고맙다"는 인사만 남긴 채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소중한 몸이...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을지, 또 일어나더라도 분명 아파서 악부터 지를 것만 같다.
2010.01.25 11:00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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