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관계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

[2010 코리아, 전망과 과제 4] 2010년 노사관계 전망: 노사관계의 '실종'

등록 2010.01.25 19:44수정 2010.01.2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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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2010 코리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새해 특별기획을 6회에 걸쳐 공동 진행한다. 2010년은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한반도 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노력이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MB 정부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출범 3년 차를 맞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코리아연구원'은 2010년 새해를 맞아 통일외교안보-경제-사회분야에 대한 전망과 정책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Ⅰ. 들어가며

 

연말연초가 되면 빠지지 않는 연례행사 중 하나가 신년 노사관계에 대한 진단이다. 그렇다면 왜 노사관계에 주목할까? 파업 등 노동쟁의로 비용이 증가하고 기업환경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사실 꽤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 노사관계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면 적절한 대답은 아니다.

 

2009년 12월 현재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2406만3천 명(59.7%), 취업자 2322만9천 명(57.6%), 실업자 83만4천 명(3.5%)이고 임금근로자는 1655만5천 명(71.3%)이다. 노사관계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삼권의 보장 및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의 실현을 통해 이들의 개별적 혹은 집단적 취업 및 근로환경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즉 노사관계는 원래 노동권의 구현과 그것을 통한 사회 정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며 일자리의 창출이나 기업경영 제고는 이에 종속되는 하위 범주이다.

 

취업자 특히 임금근로자들은 고용주와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따라서 노사 간의 개별적 혹은 집단적인 정의는 법을 통한 '강제적 규율'과 노사관계를 통한 '자율적 규율'에 의해 보장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모든 나라의 노동법과 단체협약의 근간을 이루는 기조이다. 한 나라의 헌법과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노사관계를 통해 적절히 구현되고 있는지 여부가 노사관계 진단이나 전망의 중요한 항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특정 사업장에서 개별적 혹은 집단적으로 노사가 대등한 관계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가 규율할 수 있는 범위가 특정 사업장이나 기업 혹은 정규 근로 등으로만 제한될 경우 한쪽의 정의는 다른 쪽의 부정의의 대가일 경우가 생긴다. 때문에 정부와 사용주는 사업장을 넘어선 전 국가적 수준에서의 공정성(fairness)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노사관계는 공정성 구현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정의나 불평등의 개선에 얼마나 기여하는가가 노사관계 전망의 또 다른 척도이다. 더불어 부정의나 불평등이 파업 등의 노동쟁의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사관계는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를 높이는 수단일 수 있다. 최근 '고용없는 성장'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바 있으며 그것의 핵심은 비정규직이나 근로빈곤이다. 경제지표나 성장률의 회복 혹은 노동시장 참여가 저임금 근로를 넓힐 뿐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에 우리 사회의 고민이 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노사관계의 주요한 목표가 되면 문제 해결은 한결 쉬워진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 않는가. 노사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해소하고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개선을 위해 위해 협력한다면 노사관계는 항상 파란불일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이 글에서는 2010년 노사관계를 ①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의 노사관계를 통한 구현, ② 개별적 혹은 집단적 수준에서의 사회적 보호와 불평등의 개선, ③ 일자리 질과 양의 확대에 끼치는 효과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진단하고 전망하려 한다.

 

또한 구체적인 전망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덧붙인다. 노사관계는 사실상 노동계, 사용주 그리고 정부(및 국회) 간의 상호관계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부는 직접적 개입에서부터 법제도적 강제 등을 통해 노사관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2009년 노동계 10대 인물 1위가 추미애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3위 이명박 대통령, 4위 임태희 노동부장관, 8위 이영희 전 노동부 장관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고 할 것이다. 2010년에도 정부의 영향력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2010년 노사관계 전망에서 정부 변수는 상당히 크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정부 변수는 주목하지 않을 것이라서 분명히 제한적이다.

 

Ⅱ.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의 노사관계를 통한 구현

 

첫째,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노사관계를 통해 구현되는지 여부는 노동권과 노사관계에 대한 노사 혹은 정부의 태도와 능력, 노사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노동법의 개정 혹은 제정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정부 태도의 경우, 2009년 한 해 동안 정부는 사용자측과 노조측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상실하였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 이유를 혹자는 정부가 노사관계를 노동권 보호보다는 기업의 비용절감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경제위기 시기에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균형감각의 상실 여부는 전적으로 진리의 개별성에 맡길 문제이겠지만 그 결과는 노사관계에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 심각할 경우 노사관계의 실종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율적인 해결 대신 법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상 노사관계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월 21일 개최한 '업무방해죄와 노동인권정책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단체행동권 행사가 형법에 의해 범죄행위로 처벌되고 있는 실정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안하였다. 외국에서는 쟁의행위를 이유로 형사 처벌하는 사례가 드물며 사용자에게 만능열쇠를 줄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점 때문이다. 만약 법치가 노동삼권의 구현을 어렵게 한다면 노사관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렇다고 노동계나 시민사회가 노사관계의 복원을 주도할만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이것은 10.8%에 불과한 노조 조직률이나 기업별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표하는 노조 조직체계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 내부의 자기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한 협력이나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의 연대 등이 어렵고 무엇보다 노동계에 대한 낮은 사회적 지지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계의 리더십 취약이나 도덕성 위기는 이미 10년 정도 계속 지적되었고 악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노사관계의 실종과 부정의의 확산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복수노조 허용 및 창구단일화나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유급근로시간면제 제도 등의 법제도적 변화는 노사관계의 불씨이긴 하다. 1월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300인 이상 기업체 19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도 노사관계 전망조사에서 기업의 88%가 "올해 노사관계가 지난해에 비해 더 불안해질 것"이라고 답하였으며 중요한 이유를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둘러싼 노사갈등(43%)"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것이 파업 등 노동쟁의로 이어지거나 노사관계의 복원을 낳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쟁의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파업에 대한 부담감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은 불안'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Ⅲ. 개별적 혹은 집단적 수준에서의 사회적 보호와 불평등의 개선

 

둘째, 노사관계를 통해 개별적 혹은 집단적 수준에서의 사회적 보호와 불평등을 개선할 가능성은 매우 적으며 이것이 노사관계의 실종을 부추길 것이다.

 

한국에서는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조합원 범위를 노사가 정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기간제 근로자나 파견 혹은 용역 등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취업한 사업장에 단체협약이 있다 하더라도 조합원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협약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노사관계의 밖에 있는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30조는 "신의에 따라 성실히 교섭"해야 한다는 성실교섭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81조는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하지만 사실상 법이 지켜지지 않거나 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특히 조직력이 취약한 비정규직이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가 이것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게다가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는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렵다.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2007년 3월 4.7%에서 2009년 3월 3.4%로 오히려 떨어졌으며 이와 같은 추세가 개선될 여지가 적다. 산별 시도도 비정규직 조직화에는 성공적이지 못하여 금속노조의 조합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5%(2008년말 기준)이고 보건의료노조도 8% 수준이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전면 시행될 경우 산별과 비정규직 노조 모두에게 부정적이다.

 

비정규 근로는 실업 및 근로빈곤의 확대에 따른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낳는다. 1년간 실직 비중이 정규직은 13.3%인 반면 비정규직은 33.7%로 두 배가 넘는다. 실직한 경우 빈곤가구로 떨어지는 비중이 전체의 60.3%이며 재취업을 한 경우에도 35.7%는 여전히 빈곤가구라는 것을 고려하면 비정규직의 높은 실직비중과 근로빈곤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또한 2009년 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6.7년인 반면 비정규직은 1.9년이고 1년 미만 근속비중이 정규직 25.6%, 비정규직 55.9%로 두 배 이상이다. 임금의 경우에도 비정규직의 월급여는 정규직의 54.6%에 불과하며 고용보험 42.7%, 퇴직금 32.7%, 상여금 29.8%, 유급휴가 31.7%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노사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적 형평성의 훼손은 부분적 혹은 파편적이지만 개인적이거나 집단적 저항을 낳는다. 2009년 현재 파업 횟수는 2008년 대비 12% 늘어났지만 근로손실일수는 22% 줄어든 것은 소규모 신규사업장이나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쟁의가 증가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렵게 파업을 하고 부당함을 호소해도 효과는 너무 적다. 2010년 새해벽두 한양대 안성캠퍼스 청소용역 노동자의 노동쟁의는 사회적 약자의 외로운 절규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소수만의 국지적 저항은 노사관계의 실종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Ⅳ. 일자리 질과 양의 확대에 끼치는 효과

 

셋째, 노사관계가 일자리의 질과 양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경기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취업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2009년 10월 -0.2%, 11월 -0.1%, 12월 -0.3%로 감소하기까지 한다. 성장과 일자리 양의 상관관계는 2000년대 이후 깨졌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하다.

 

일자리 질의 측면에서 상황은 더욱 나빠 비정규직은 늘고 임시 일용직은 줄었다. 경제위기의 타격은 여전히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늘어난 상용직 일자리의 상당부분이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영세자영업까지를 고려한다면 일자리 질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업 간 격차가 매우 크고 대기업의 일자리가 준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기업 문제' 특히 노동력 수요 측의 문제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 대기업의 아웃소싱이나 사내하도급 사용관행에서 일자리의 저수지인 중소기업은 기간제나 저임금 근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가 대기업-중소기업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노사관계를 통해 규율하는 방법일 터이지만 그와 같은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공부문조차도 민간위탁이나 기간제 등 비정규 근로 사용에 편승하는 현실이고 그것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소수자보호와 상호호혜의 인간의 법칙으로 바꿀 여지를 우리 사회의 노사관계는 가지고 있지 못하며 2010년은 그와 같은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Ⅴ. 나가며

 

노사관계의 전망으로 시작된 글이 노사관계의 실종으로 끝나 버려 결론을 맺기가 어렵다. 사회과학이 있어야할 자리를 개인적 기원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 것을 양해하기 바란다.

 

필자는 노사관계 실종이 잘못된 판단이기를 바란다. 노사관계가 새롭게 복원될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책상물림의 한탄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왜냐하면 노사관계의 실종이 사실일 경우 그 타격은, 전망을 하는 연구자가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사관계의 형성을 위해 수십년간에 걸친 숱한 노력을 생각하면 함부로 노사관계의 실종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전망은 전망일 뿐이며 2010년 말의 평가는 또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새해 쏟아져나온 노사관계에 대한 인터뷰, 희망에 대한 서술이 현실로 바뀔 것을 기대한다.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으면 외우라지 않던가.

덧붙이는 글 | * 이글을 쓴 은수미님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경제통상·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이 글(특별기획29-4호)의 원문 및 관련 정책자료들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10.01.25 19:44ⓒ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은수미님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경제통상·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이 글(특별기획29-4호)의 원문 및 관련 정책자료들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사관계 #일자리 #노동조합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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