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영 님이 그동안 찍어낸 사진책들. <동토의 민들레>는 겉장을 잃어버려 시커먼 속알맹이만 있습니다.
최종규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그동안 <어머니>(눈빛,2007), <그 아이들의 평화>(생각의나무,2004), <석정리역의 어머니들>(솔,2003), <장날>(현암사,2001), <행복한 아이들>(현암사,2001), <중국>(눈빛,1999), <안데스의 사람들>(눈빛,1999), <일하는 부부들>(눈빛,1998), <어머니의 세월>(눈빛,1997), <베트남 전후 20년>(타임스페이스,1995), <탄광촌 사람들>(사진예술사,1994), <동토의 민들레>(호영출판사,1993),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조선일보사,1990), <내가 만난 사람들>(열화당,1987) 같은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열네 권 가운데 아직 네 권은 사지 않았으나, 사지 않았을 뿐이지 책방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네 권은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안 샀는데, 이제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모두 갖추어 놓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에서 일곱 해 동안 정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1961년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어 이태 동안 신문을 만듭니다. 그 뒤 정계로 나아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열여섯 해 동안 민주공화당 대변인과 사무처장과 무임소장관과 칠레대사와 문화공보부장관과 국회의원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9년에 정치판을 떠난 다음 사진판으로 뛰어드셨는데, 중남미며 네팔이며 인도며 부탄이며 파키스탄이며 터어키이며 그리스이며 이집트이며 모로코이며 튀니지아이며 유럽이며를 골고루 다니며 사진찍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태껏 펴낸 사진책에서도 알 수 있듯, 윤주영 님은 1993년에 <동토의 민들레>라는 작품으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고향나라를 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1994년에는 <탄광촌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탄광마을 일꾼 발자국을 사진으로 여미었습니다. <베트남 전후 20년>은 말 그대로 전쟁 피해자 뒷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입양되는 아이들 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 일하는 어머니들 삶이 고루 묻어난 <어머니의 세월>입니다.
최종규
윤주영 님은 무엇보다도 '어머니(할머니)' 사진을 많이 자주 찍었습니다. <어머니의 세월>이든 <일하는 부부들>이든 <장날>이든 하나같이 '어머니 되는 분'이 사진 주인공입니다. 다만, 윤주영 님한테는 '어머니'이지만, 저한테는 '할머니'입니다. 마땅한 소리이겠지만, 어느덧 여든 줄 나이로 접어든 할아버지 사진쟁이 윤주영 님한테는 '당신한테 어머니라 할 분은 그야말로 할머니'이겠지요. 윤주영 님 사진을 보면서 느끼지만, 윤주영 님이 가장 잘 잡아채며 담아내는 사진감은 바로 '나이 든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주영 님부터 흰머리 할아버지인 만큼, 할머니들 앞에서 서로 동무가 되기도 하고 누나로 삼기도 하며 동생으로 만나기도 할 테지요.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들 수 있고, 사진기를 들기 앞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윤주영 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할아버지가 되면 아주 저절로 '나로서는 아버지이고 내 뒷사람한테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버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러한 사진찍기는 퍽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은 만큼 '젊은이가 다가서기에 아직 어려운 사진감을 담아내는 솜씨'를 보여주면서 뒷사람을 가르친다고 할까요.
그런데 윤주영 님 사진책을 보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탄광촌 사람들>을 뒤적일 때마다 <김재영(글),김종성(사진)-검은 산 검은 하늘>(눈빛,1991)이 떠오르고, <동토의 민들레>를 뒤적일 때마다 <이토 다카시-사할린 아리랑>(눈빛,1997)이 떠오르며, <장날>을 들출 때마다 <양해남-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이 떠오릅니다. 똑같이 탄광을 사진감으로 삼았지만 윤주영 님 사진책에서는 웃음과 눈물을 살피기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광부 삶을 담은 사진책으로 <신병태-광부, 그 묻혀진 얼굴>(호영,1999)이 또 있는데, <광부, 그 묻혀진 얼굴>에서도 '광부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얼굴'은 드러나지만 삶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윤주영 님 사진에서도 비슷합니다. <장날>이나 <행복한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평화>에서 '넉넉한 구도'와 '아름다운 화면'은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구도와 화면에 어떠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는지까지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사진에서 눈물을 보이기 힘들고, 저절로 '아!' 하는 마음이 샘솟지 못합니다.

▲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쉬는 삶을 잘 담아냈습니다.
최종규
사진길을 걸어가며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온갖 자리에서 온갖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골고루 만나고 있는 윤주영 님은 우리 세상 온갖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모습'을 담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까지 엮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루는 사진감은 많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모습으로 그치고 이야기로 뻗어가지 못하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자락을 보여주지만 삶을 말하지는 못하는 사진이 아니랴 싶습니다. 삶결을 건드리지만 삶자리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일하는 부부들>과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을 여러 해 동안 사진밭 선배한테 빌려 준 적 있습니다. 선배는 <일하는 부부들>은 잃어버리고 <어머니의 세월>은 돌려주었습니다. 한 번 잃어버린 <일하는 부부들>은 헌책방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배한테 이 사진책을 빌려 줄 때에 선배한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저보다 사진 솜씨가 좋고 사진 찍히는 사람들한테 스스럼없이 잘 다가서는 선배야말로 '이 땅에서 낮은자리에서 부둥키고 얼크러지는 이웃이자 바로 이러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부부들'하고 '어머니가 보낸 세월'을 사진으로 담아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진일은 한두 해로 이룰 수 없고,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해야 할 텐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선배가 제 도움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잊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선배한테 도움말을 했듯 저는 저 스스로한테도 제 둘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사진으로 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일하는 사람들'이란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일 테지요. 그리고 저한테 '어머니가 보낸 세월'이란 바로 우리 아이를 키우는 옆지기가 젊음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내는 발자취일 테고요.

▲ 다만, 윤주영 님 또한 조금 더 '찍히는 사람'한테 깊이 다가서면서 사진을 일군다면 더 좋겠지요. 아무리 '그림이 좋아'도 찍히는 사람이 달갑잖게 여긴다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최종규
얼핏설핏 윤주영 님이 새 작품을 내놓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떠한 작품을 어떠한 빛깔로 내놓으실는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주영 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사진길을 걸어가며 새 사진감을 찾아 새 창작을 선보이는' 좋은 이슬떨이가 되어 주고 있거든요. 윤주영 님은 한 해 두 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밭을 조금씩 갈고닦으며 가다듬고 있다고 느낍니다. 비록 윤주영 님 당신이 벗어나지 못하는 틀과 굴레가 있지만, 제아무리 틀과 굴레가 있다 하여도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은 사진으로 말하면 됩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세월>은 1997년 작품입니다. 2007년도 아닌 2010년이라면, <어머니의 세월>에서 엿보인 아쉬움들을 말끔히 털어내었을 수 있겠지요. 또는, 2017년에도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을 테고요.
구도와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곱고 멋진 사진을 일굴 수 있지만, 이야기와 삶을 담아낼 때에는 '흔들린 사진'이든 '빛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진'이든 사람들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진이 되거나 따뜻하게 감싸안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마무리되는 대목을 한결같이 되새겨 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어머니의 세월
윤주영,
눈빛,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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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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