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36%도 채 안 올랐는데 등록금은 116% 올랐잖아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등록금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00학번이던 과 선배가 입할 때 낸 등록금은 약 100만 원. 04학번인 나는 230만 원 가량의 등록금을 냈고, 10학번 새내기들은 300만 원 가량의 등록금을 낸다. 공립대니까 이정도다. 사립대는 정말 살벌하다. 대표적 여대인 이화여대, 숙명여대의 미술계열 학생들은 한 학기에 600만 원 가량의 등록금을 낸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학생회장이던 후배의 말에 따르면 화장실 벽에 '등록금 때문에 죽고 싶다'는 낙서가 써있었다고 한다.
대학은 늘 말한다. 교육환경 개선과 더 나은 교육의 질을 위해서는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사립대들은 수백, 수천억 원의 이월적립금을 쌓아놓고도 돈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다. 2005년 국회 교육위원회 최재성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무려 6000억 원, 홍익대 3000억 원 등 엄청난 규모의 이월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립대들은 이 이월적립금을 교육 질 향상이나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 투기를 통한 자산 증식에 혈안이 돼있다.
얼마 전 고려대 총장이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이기수란 양반이 "한국처럼 등록금이 싼 나라가 없다"고 공식 자리에서 발언하셨다. 알면서 거짓말을 친 건지, 아니면 명문대 총장이란 양반이 일자무식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틀려도 한참 틀렸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소득 대비 등록금 액수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다.
"취업 후 상환제? 그럼 취업 안 되면 안 갚아도 돼?"
맞다. 취업 안 되면 안 갚아도 된다. 또한 취업 후 갚아나가다가 실직하더라도 실직기간 동안은 원리금 납부가 유예된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취업이 안 되면 학자금 대출 못갚는 건 둘째치고, 끼니를 잇기도 힘들 테니까. 또한 만약 취업을 했을 경우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원리금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 취업 후 상환제는 연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만 넘으면 무조건 원리금 상환을 시작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의 기준을 1592만 원으로 잡고 있지만, 이 같은 기준이 너무 낮다는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뭐 이런 저런 수치를 들먹일 것도 없이, 한달 동안 4인 가족이 약 132만 원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상상해보자. (그래서 파산법원은 최저생계비 기준을 2400만 원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임금 수준이 높거나, 취업할 일자리가 많으면 또 모르겠다.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에 허덕이는 작금의 현실이나,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지고 점점 비정규직과 인턴만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소득이 최저생계비만 넘으면 원리금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제도는 너무 가혹하다. 결국 '취업 후 상환제=카드 돌려막기'나 다를 바가 없다.
"제도 아주 쿨해, 근데 인간적으로 이자가 너무 비싸잖아~"
그렇다. 이자가 너무 비싸다. 예를 들어 대학 4년간 한 학기 400만 원(총합 3200만원)의 등록금을 5.8% 이자율에 대출 받았다고 가정하자. 취업 후 상환제도를 이용하면 결국 갚아야 하는 돈은 총 9705만 원이나 된다. 물론 상환 기간이 25년일 경우이지만, 어찌 됐든 이자가 원금보다 많은 꼴이다. 일종의 고리대 사업이나 다를 바가 없다.
등록금이 아예 공짜이거나(핀란드, 스웨덴, 베네수엘라 등) 아니면 등록금이 거의 없다시피하거나(프랑스, 독일 등) 하는 꿈만 같은 사례는 일단 접어두고, 우리와 만만치 않게 등록금이 비싼 나라들만 보자. 호주는 졸업 후 이자율이 2.4%, 일본은 최대 3%, 영국의 경우 물가인상율(2.6%) 이다. '막장' 미국도 이자율이 5%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저소득층에 대한 이자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5.7%, 혹은 그보다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취업 후 상환제가 시행되면서 차상위계층, 소득 7분위 계층에 대한 이자 지원은 아예 폐지되어 버렸다.
동혁이형이 몰랐던, 혹은 지나친 사실 '학점'
그런데 수많은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이자가 너무 높다는 푸념조차도 부러워 해야할지도 모르게 생겼다. 취업 후 상환제도는 평균 학점이 B 이상인 학생들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과목에서 B를 맞고, 단 한과목만 C+을 받는 경우에도 등록금을 안 빌려주시겠다는 거다. 문제는 대부분 대학들이 상대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거다. 설령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가정해도, 줄세우기에 따라 등수는 매겨지게 되어있고, 점수는 달라지게 되어있다. 백번 양보해서 '평균성적이 D 이상이면 대출 안된다!' 하면 아주 조금은 납득해 줄 만하다.
"이거 아니잖아, 슬프잖아!"
슬프긴한데 알바-> 공부 -> 알바-> 공부에 치여서 감상에 젖기도 힘들다. 힘들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이미 빚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내 처지를 생각하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고 신발 끈을 조여매야 한다. 한번 절망이란 어둠에 물들기 시작하면, 다시는 빛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작년 전북 지역의 한 대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대학 건물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등록금 때문에 먼저 간다"는 유서 한장 달랑 남기고. 또 작년에는 고대생이 등록금 문제와 취업난에 신음하다 자살 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매년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십수명의 대학생들이 등록금으로 인해 죽음을 택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수만,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메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신 부모님들도 계신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진짜 막장 아닌가?
"그냥 쿨하게 등록금을 깎아주란 말이야!"
대한민국 교육의 막장 드라마를 끝내기 위한 대안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의 '개콘' 장동혁이형이 소리친 대로, 그냥 쿨하게 등록금을 깎아주면 된다. 국립대는 교육재정 중 대학교육 비율을 높여서 해결하면 되고, 사립대는 이월적립금을 풀면 된다. 법안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은 이미 한 학기 등록금을 250만 원 가량으로 규제하는 '등록금 상한제'를 몇 년 전부터 마련해왔다. 4대강 살리기(?) 사업비에서 조금만 돈을 떼어줘도 반값 등록금은 가능하고, 주한미군을 위해 쓰는 우리 세금을 대학교육으로 돌려도 반값 등록금은 가능하다.
아니 도대체 처음 '반값 등록금'이란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누구란 말인가. 분명 대선 공약으로 걸어놓고, TV에 나와 그런 공약 한 적 없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일삼는 대통령께서 겨우 이런 취업 후 상환제로 생색내려 하시면 곤란하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블로거 빨간기차(www.rearcadia.com)가 지적했듯이 2004년에 벤처로 시작해 현재 시가총액 150억 달러로 추산되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 '다음'의 이재웅씨나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씨 등 IT산업을 주도한 창업주들의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20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오로지 '스펙' 쌓기, 알바 하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20대들에겐 더 이상 창조적인 도전정신이 남아날 겨를이 없다. 만약 등록금이 반값이 되거나, 혹은 무상교육이 된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의 동혁이형께서 KBS의 인기프로인 '개그콘서트'에서 큰 사고 한번 치셨다. 제대로 된 사회 풍자 개그, 사회 비판적인 개그를 찾아보기 힘든 이 나라에서 정말 박수 받아 마땅하다. 요새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고 있는 KBS 였기에 동혁이형의 미래(?)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개념찬 그의 개그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동혁이형의 재치있는 비유와 애드리브에 한참을 웃으면서 봤지만, 막상 TV에서 돌아서자 가슴 한 켠이 시리다. 개그맨마저 큰 맘먹고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대학 교육의 현실이 처참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그동안 일반 학자금 대출을 이용했던 나는 MB 정부 덕택에(?) 처음으로 취업 후 상환제 대출을 신청한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신청한 대출이지만, 그나마도 혹시 심사에서 떨어질까봐 매일 가슴을 졸이며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를 들락거린다.
궁금하다. 등록금 걱정없이 학교 다닐 수 있는 날이 먼저 올까, 아니면 내가 등록금 대출 빚을 모두 상환할 수 있는 날이 먼저 올까.
덧붙이는 글 | *주 : 위 글에서 언급한 해외 등록금 현황 중 핀란드는 지식채널e '유럽의문제아2부'를, 스웨덴은 <한겨레> 2009년 2월 20일자 권태선 논설위원 글을, 베네수엘라는 <레디앙> 기사를 참고했다. 또한 각 나라별 학자금 대출 이자율은 참여연대 자료를 참고했다.
2010.02.02 16:2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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