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두꺼워졌으니 배달료 더 주겠다?

영국 유학생활에서 '작은' 일에 감동하다

등록 2010.02.05 16:04수정 2010.02.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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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무료신문이 지하철 입구에서 배부되는 서울과는 달리, 내가 살고 있는 영국 중부도시 노팅험의 경우 무료신문들은 배달원들을 통해 집집마다 직접 배달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노팅험 비스톤 지역에도 여러 종류의 무료신문이 있으며, 두 세 종류가 매주 집집마다 배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국 노팅험 지역에서 배달되는 무료신문들.
영국 노팅험 지역에서 배달되는 무료신문들.김용수

무료신문 통해 정보를 얻는 영국 사람들

인터넷과 휴대폰, 첨단 텔레비전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21세기 과학의 시대, 그러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집마다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있지만, 가끔은 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실제 생활에서는 자동차보다는 일상적으로 걷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필수적인 통신수단인 휴대폰도 이곳 사람들에겐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젊은 사람들은 예외지만)

가까운 친구 사이일지라도 이메일보다는 아직도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메모가 일상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것을 보면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한국의 일상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영국인들의 이같은 일상생활 때문인지, 집으로 배달되는 광고지나 무료신문이라 하더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꼼꼼히 살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광고를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정보를 담고 있는 무료신문이 이들에겐 정보를 얻는 일상의 통로인 셈이다.

그러나 배달을 원하지 않는 경우 문 밖에 '무료신문 원하지 않음(No free paper)'이라고 메시지를 붙이는 데, 이런 집에는 배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고지 배달료는 따로 지급하는 무료신문들

<롱 이튼 트레이더(Long Eaton Trader)>와 <토퍼(The Topper)>는 영국 노팅험과 롱 이튼에 배달되는 대표적인 무료신문이다. 광고 수입을 통해 운영을 하고, 또한 배달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분의 소개로 우리 부부는 두 개의 무료신문을 지난 1년간 배달하게 되었다. 신문만 배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주에 해당하는 지역의 광고지가 있는 경우 신문과 광고지를 함께 배달하게 된다. 급여는 신문만 배달하게 되는 경우 신문 배달료만 받지만 광고지를 추가로 배달하게 되는 경우 급여외에 광고지 배달료를 추가로 받게 된다.

그러던 중, <롱 이튼 트레이더>가 경영이 어려웠는지 "신문을 더 이상 발행할 수 없다"는 소식과 "여러분의 직업(job)을 잃게 되어 미안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신문은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아 배달은 하지 않지만 "2주간의 급료를 더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 <롱 이튼 트레이더>는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아 우리는 배달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2주간 60파운드 급료를 더 지급받았다.

<비스톤 익스프레스>는 2주 간격으로 한 달에 두 번 발행되는 비스톤의 또 다른 무료신문이다. 이 신문은 노팅험 비스톤 지역의 다양한 지역정보 뿐만 아니라 세금, 예산, 지역관련 계획 등 지역의 행정기관인 '카운슬'의 행정소식들을 전달하고 있어서, 지역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정의 대부분은, 다른 무료신문은 몰라도 <비스톤 익스프레스>만큼은 거부하는 집이 거의 없다. 배달원을 통해 정규적으로 배달되는 이 신문이 그들에게는 반가울 뿐더러, "다음에도 꼭 배달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않고 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 노팅험 지역의 무료신문 배달료 지급 명세서.
영국 노팅험 지역의 무료신문 배달료 지급 명세서.김용수

우리는 두 종류의 무료신문과 함께 <비스톤 익스프레스> 300부를 2주에 한 번씩 집집마다 배달하게 되었다. 한 번 배달할 때마다 6파운드(1부당 2펜스, 약 40원)를 받았고, 한 달에 두 번 배달하여 12파운드(2만4천 원 정도)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정규적으로 2주 간격으로 발행되던 <비스톤 익스프레스>가 한 달에 한 번 발행으로 바뀌게 되었고, 실제로는 별다른 무게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문지면이 약간 증가됐다.

배달 담당자는 페이지 증가로 인한 배달료의 상승을 언급하였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12페이지에서 이후 24페이지로 증가되니 배달 임금 또한 2펜스에서 5펜스(약 100원)로 높여 지급될 것이라는 소식을 편지를 통해 전해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배달'에서 '한 달에 한 번 배달'로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받는 급여는 12파운드에서 15파운드로 인상되었다. 물론 기본 15파운드 이외에 추가되는 광고지의 종류와 수에 따라 꼬박꼬박 지급되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노동가치의 평가가 다른 한국과 영국

비록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3대 주류 신문사 지국에서 배달원으로서 오랜 기간 경력자로 일했던 나에게 영국에서 경험한 이 두 가지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는 매일 같이 신문속에 삽입되는 수많은 종류의 광고지와 이유도 설명을 하지 않은 채 특별 발행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로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 배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배달원들에게 단 1원도 추가 지급되지 않았다. 노동착취에 다름 아니다.

영국 일상 가운데 경험한 이 사건은, 두 사회에서 경험한, 그러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현실인식이요, 한국사회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각도의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현상을 일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 없음은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작은 부분이라 할 지라도 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일부는 그 사회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되기도 한다.

좋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또는 발전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건강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차이는, 사회를 두 가지 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을 지라도, 전자는 어려운 때일수록 사회의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욱 보살피는데 반해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어려운 때일수록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근간으로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사회일 것이다.

영국에도 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Part-time job)'들이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겪은 두 가지 일들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작게나마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비추어 볼때,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비록 비정규직일지라도 한국사회가 노동자들의 노동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고, 차별 없이 평가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무료신문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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