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사법개혁인가?

PD수첩에 대한 판결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등록 2010.02.08 13:48수정 2010.02.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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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게는 사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PD수첩의 제작진에 대한 무죄선고를 계기로 사법부를 손보고 싶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일부 수구단체의 노인들은 대법원장과 법관들에게 테러까지 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PD수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하등의 결함이 없고 완벽하게 증거와 논리를 갖춘 판결이라는 점이다. PD수첩이 허위사실을 보도해서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집권세력이 검찰을 시켜 무리한 수사를 했고, 무혐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수사팀을 교체까지 하면서 기소를 했다. 당연히 그들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PD수첩의 번역을 담당하던 정지민씨의 증언만이 검찰이 의존한 거의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레사 빈슨씨의 어머니가 발언한 변종 CJD는 통상 vCJD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는 곧 인간광우병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인들이 미국의 소송자료까지 제출하여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밝혔고 재판부는 증거에 근거하여 무죄판결을 한 것이다.

 

판결이 나온 후 집권세력의 대응은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법관들의 연구모임에 불과한 '우리 법 연구회'를 지칭하여 '하나회'를 운운하고, 마치 판사들이 이념에 물들어서 재판을 하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사법부의 개혁을 운운하는 꼴은 더더욱 가관이다.

 

사법부에 여전히 개혁되어야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한 일이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법부를 개혁의 대상으로 운위하는 꼴은 볼썽사납다는 말이다.

 

또 '하나회'가 무엇인가? 12.12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던 5공 세력이 그들이다. 그들이 만든 민정당이 다른 야당과 야합해서 민자당이 되었고, 이름을 바꿔서 신한국당이 되었다. 또 그 신한국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한나라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들의 뿌리에 침을 뱉으며 그리 당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기반삼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할 민주공화국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 판결들을 주문 생산하던 추억은 이제 버려야한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때로는 법정에 세워 더러운 죄명을 마구 선사하고 투옥하던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일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갔던가?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증거와 사실에 근거하여 판결하는 일은 모두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집권세력만 자신들이 마구 권력을 남용하는데 걸림돌이라 느낄 뿐, 매우 옳고 고무적인 일이다. 오히려 그런 판결을 항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모든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휘두르고 있다. 검찰, 국세청, 경찰, 국정원 등 지난 정권에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했던 기관들이 이제 모두 집권세력의 통치수단이 되고 있다. 조선, 동아, 중앙 등 거대신문은 본래 지금의 집권세력을 편들어 왔고, 그나마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독립성을 찾는 듯 했던 방송들도 이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없는 처지로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사법부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한다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다. 무슨 왕조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 시급한 개혁의 대상은 사법부가 아니라 검찰이고, 국세청이며, 경찰과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이런저런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국민을 공권력의 힘으로 제압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국세청은 전직대통령의 측근을 편법까지 동원하여 세무조사하고 결과를 집권세력에게 제공하여 정치적 보복을 도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에 뒤질세라 검찰은 측근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수사하였고, 급기야 전직대통령까지 억지로 수사의 대상에 올렸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측근들까지 모두 잡아들여 형벌을 가하며 전직대통령의 혐의를 밝히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날마다 확실하지도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재판을 가했고, 결국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간 것이다. 지금도 검찰은 여전히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정권이 좋아하는 일만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의 검찰이 집권세력에게도 엄혹하게 단죄를 가하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PD수첩의 제작진을 기소한 것도 결국 그렇게 정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검찰의 개혁이 화급한 이유가 담겨있다. 검찰이 그렇게 계속 정권에 봉사하게 된다면 그 결과 국민은 주권을 잃고 정권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검찰이야말로 하루속히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며 철저히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할 대상이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검찰은 극심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음에도 그저 등이나 두들겨주고, 정권의 주문에 맞지 않는 판결이 좀 나왔다고 사법부를 개혁대상으로 거론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든 사회는 이미 독재국가일 뿐이다.

 

누구라도 나서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있었던 지난 정권이 그립다. 심지어 지금의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대통령을 마음껏 조롱하고 마구 근거 없이 비난하고도 처벌받은 일이 없었다. 당시 혹자는 대통령 욕하는 것이 국민스포츠가 되었다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집권세력이 바로 차마 듣기에 민망한 욕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자신들은 그러한 자유를 누리더니 이제 집권하고 나서 그런 일은 용인하지 않겠다니 참으로 이율배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단한 민초들이 집권자를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인 것이다. 사는 것이 고달픈데 그런 비판조차 못하게 입막음을 당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사법부까지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모두 집권자를 찬양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민주공화국을 포기하고 속히 왕정을 선포하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이씨의 나라가 될까? 아마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호주에서 발행되는 주간 코리아타운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0.02.08 13:4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호주에서 발행되는 주간 코리아타운에 기고한 글입니다.
#PD수첩무죄 #사법개혁 #검찰개혁 #권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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