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여 치욕적인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이것이 정치다 27] 권력의 언론장악과 공정성 위기

등록 2010.02.11 11:37수정 2010.02.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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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월 2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 파문
3월 2일: MB 측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
4월 29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언론 난립구조 청산, MBC 민영화 발언
5월 12일: 최시중 위원장 김금수 KBS 이사장 만나 정연주 사장 교체 위한 압력행사
5월 14일: 정연주 KBS 사장 배임혐의로 고발
5월 15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KBS 국민감사 청구
5월 29일: YTN 이사회, MB 측근 구본홍씨 대표이사로 추천
6월 11일: 감사원, KBS 특별감사 착수
6월 12일: KBS 이사회, 유재천씨 새 이사장으로 선출
6월 20일: 동의대학교, 신태섭 전 이사 해임 통보
7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MBC <PD 수첩>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징계 결정
7월 17일: YTN 주주총회에서 40초 만에 MB 특보 출신 구본홍 사장 내정자 선임
7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 신태섭 KBS 이사 해임 확정
7월 29일: 검찰, <PD 수첩>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발표
8월 5일: 감사원, 정연주 사장 해임요구안 의결(근거: 인사권 남용과 경영 부실)
8월 8일: KBS 임시 이사회,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 의결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 정연주 사장 해임
8월 27일 : KBS 이병순 신임 사장 취임식
9월 17일: KBS, 개혁적 성향 PD․ 기자 50명 이상 좌천 인사 단행
10월 6일: YTN 구본홍 사장, 노조 지부장 등 6명 해고, 돌발영상 팀장 등 6명 정직

# 2009년
3월 3일: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 <PD수첩>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6월 18일: 검찰, <PD수첩> 제작진 5명 기소
7월 22일: 한나라당, 미디어법 강행 처리
8월 1일: 김우룡 교수 등 친여 인사들로 방문진 이사진 개편
8월 3일: YTN 구본홍 사장 사퇴
8월 26일: 방통위,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 등 친여 인사 중심 KBS 이사진 확정
10월 9일: YTN 이사회, 배석규 사장 선임
11월 13일: 서울행정법원, 정연주 KBS사장 해임처분 취소 판결
11월 14일: 서울중앙지법, YTN 노조원 6명 해고무효 판결
11월 19일: KBS 이사회, MB 방송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 선임
11월 30일: 방문진 이사장, 엄기영 사장 자진 사퇴 압박
12월 7일: MBC 본부장 일괄 사표

# 2010년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 <PD수첩> 제작진 무죄선고(1심)
1월 27일: 감사원, 방문진 감사 착수 발표
2월 8일: 방문진, 친여 성향 MBC 이사진 선임, 엄기영 사장 사퇴      

살아있는 정치권력과 언론의 최근 2년 동안 관계일지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직전부터 임기 3년차를 맞는 현재까지 정권 주변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언론장악일지'란 표현이 어쩌면 그리도 딱 어울린다. 

그런데 숨가쁘게 진행돼 온 일련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남은 2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잔혹사가 벌어질지 끔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간의 과정에서 읽히고도 남는다. 국민의 한 사람, 그리고 언론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써 부끄럽고 한없는 자괴감이 앞선다. 

그러나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MBC 엄기영 사장마저 사퇴함으로써 방송의 공영성이 가장 위기다. YTN, KBS 장악에 이어 눈엣가시였던 MBC마저 권력의 손에 쥐어졌으니 큰일이다. 여기에 올해 안으로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을 넘겨주게 되면 원대한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그제야 끝날지 모르지만 공정성 또한 끝장이다.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쫓아내라?"


<한국기자협회>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쫓아내라!'란 제목의 성명.
<한국기자협회>'차라리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쫓아내라!'란 제목의 성명.한국기자협회

문제는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다. 가뜩이나 국내 언론의 취재보도 자유가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PD수첩> 사건에 이어 MBC 사장 인사에까지 전 방위적으로 넘나드는 살아 있는 권력 앞에 기자들은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쫓아내라!"로 외치고 있다. 실제 <한국기자협회>가 최근 내놓은 성명 제목이 그렇다.

정권의 방송장악일지를 더는 인내하며 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기자협회>는 8일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쫓아내라!'란 제목의 성명과 함께 "MBC에서 물러나야 할 사람은 바로 방문진 김우룡 이사장"이라고 맹비난했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언론장악 실태를 이렇게 개탄했다.


"현 정부의 후안무치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들의 의식을 정권의 입맛대로 바꿔보겠다는 의도는 노골적이기만 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MBC 기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모든 기자들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엄기영 MBC 사장을 쫓아내고 낙하산 사장을 투하하기 위한 뜻이었다면 이미 충분히 성공했다."

'오죽했으면...'이란 표현 외에 더는 보충할 말을 찾기 어렵다. 권력을 잡자마자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칼춤 앞에 일부이긴 하지만 기자들이 분개할 만하다. 이 정부는 YTN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낸 뒤 기자들을 무더기로 잘라냈다. 또 KBS 신태섭 이사를 해임시키고, 정연주 사장을 잘라내는 수순을 착착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YTN 기자 6명 해고 무효판결, KBS 신태섭 이사의 해임 무효판결, 정연주 사장 해임 취소 판결 등 사법부에 의해 줄줄이 위법적인 것으로 판결 받았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멈추지 않고 또다시 MBC에 유사한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언론의 '기능과 역할', '훼손-복원'만 반복하다 날 샐라 

따라서 <기자협회>는 "현 정부는 과연 그 폭발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대한민국 기자 전체를 적으로 돌려세우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언론 장악 음모를 멈추고, MBC를 포함한, KBS, YTN 등 언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도록 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국민과 언론, 정부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성명에서 일갈했다.

전국언론노조와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도 10일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방문진의 낙하산 이사 선임은 정권의 직할통치 야심이 부른 참극이요, 방문진 섭정 야욕이 부른 비극"이라며 "MBC 구성원과 언론인, 시민사회가 한마음으로 공영방송 MBC를 사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불교인권위원회 명진 스님, 김덕재 PD협회장, 현상윤 새언론포럼회장,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무모하고 저돌적으로 MBC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세종시 수정을 강행하는 등 지방선거에서 독주하려는 흑심의 발로다"고 말했다. 또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MBC 사태는 이명박 정권이 붕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방송사와 신문사의 모든 언론 노동자들이 싸움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고,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는 "이명박 정부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와 같다. 정권에게 국민들이 무서운 것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왜 이토록 집요한 것일까? 권력의 언론에 대한 장악의 꿈이. 문득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쓴 <권력변환>(인물과사상사)을 들여다보게 한다.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권력의 그림자' 오명, 100년 지난 오늘까지?

그는 "권력변환은 권력이동을 포함하여 권력의 성격 변화까지 담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 정치권력에서 언론권력으로 이동했다는 걸 의미하는 동시에 정치권력의 성격과 언론권력의 성격은 물론 두 권력의 상호관계까지 변했다"고 규정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과의 사이의 상호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띄게 됐지만, 강 교수는 근본적으로 정치가 여론정치로 이행되고 있음을 일찍이 간판한 듯하다. 그의 책에선 한국 언론의 공정성 시비는 늘 제기돼 왔고, 특히 정치적인 보도에 대해선 끊임없는 물음표가 던져져 왔음을 읽을 수 있다.

정치와 언론의 관계가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권력의 그림자'라는 오명이 어언 10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음 시사해주는 책이다. 특히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해 내지 못한 보도와 자세는 늘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제시해 주는 대목들은 해방 전후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참으로 끔찍하다. 

한국 언론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아온 것이 공정성 문제였다. 그런데 다시 공정성의 위기를 논하며 걱정하는 현 상황을 미래의 학자들은 어떻게 진단할지 궁금하다. 자주 반복돼 온 문제라 매우 난감할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불편부당한 것을 뜻하지만 언론의 공정성은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의 공정성은 어떤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 편견 없이 수용자들이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한편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윤리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권혁남 교수, "이 땅의 민주주의 위해 방송인들 스스로 방송독립 지켜야"

 8일 오전 엄기영 MBC 사장이 기자들에게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8일 오전 엄기영 MBC 사장이 기자들에게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권우성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정치적 검열의 새로운 시대, 즉 언론의 공정성이 권력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11일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 '방송인 스스로 독립 지켜야'에서 잘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는 언론의 권력종속이 공정성을 얼마니 심각하게 훼손하는지를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   

"한국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가 지난 1월25일부터 31일까지의 '뉴스 9'를 분석한 보고서가 좋은 증거물이다. 분석결과를 보면 7일 중 무려 4일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 관련 기사가 톱뉴스로 보도되었고 현 정권에 불리한 뉴스는 내보내지 않거나 단신으로 축소해 보도하는 일이 잦은 것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정권과 언론의 불편하고 부당한 관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종사자들 몫이란 지적이 따갑다. 권 교수는 "이번 문화방송 사태를 계기로 방송인들은 부끄럽고 굴욕적인 과거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며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국민들은 한국방송 시청료 거부운동을 펼쳤으며 문화방송은 취재차량이 시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그 굴욕을 씻어내기 위해 방송인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국민에게 사과방송까지 하지 않았던가?"라고 반문한 뒤 "그 노력의 결과로 잠시나마 쌓아올린 국민적 신뢰도가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당시의 굴욕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방송인들이 스스로 방송 독립을 지켜야 한다. 방송인들의 진정성은 국민들을 감동시킬 것이며, 그 감동은 방송 독립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득세했던 '정부 홍보 방송'으로의 자기변신을 보이고 있는 요즈음 <언론과 민주주의: The media and democracy> 저자인 키인(John Keane)의 지적은 더욱 뜨끔하다. 그는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을 유린하는 요인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해 제시했다. 그 중 협박, 금지, 체포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하는 정부의 비상권력을 으뜸으로 지적했다.

과연 한국 언론은 키인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MB정권으로부터 강제 해임된 뒤 승소한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1심)과 정연주 전 KBS사장, <문화일보>와 싸워 승소한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이 2009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영빈예식장에서 열린 '승리한 민주주의 국민보고대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MB정권으로부터 강제 해임된 뒤 승소한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1심)과 정연주 전 KBS사장, <문화일보>와 싸워 승소한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이 2009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영빈예식장에서 열린 '승리한 민주주의 국민보고대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권우성

이어 국가권력의 핵심인 경찰조직과 군사조직의 감시, 실상과 무관한 이미지 조작, 국가의 일방적인 홍보정책, 국가 내의 수직적․수평적 조직들에 의한 조합주의의 횡행 순으로 꼽았다. 이 중 어느 하나에도 언론이 귀속되었다면 공정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한국 언론은 키인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자유롭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공정한 언론이 되기 위하여, 또 공정한 시각을 갖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인의 자세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종사자들의 적합한 시각과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론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언론종사자들은 잠깐이라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엄기영 MBC 사장의 사퇴로 완성 단계에 접어든 권력의 방송장악이 한국 언론은 물론 민주주의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부를 것이란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특히 정권의 MBC 장악은 지상파 방송 3사의 목소리를 단일화시키는, '한국 언론 기능의 심각한 퇴행'을 뜻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 목소리가 거세된 '침묵의 카르텔'이 일부 보수언론과 그 세력들에 의해 준동되고 있다. 이는 중요 현안의 사회적 의제 및 여론 형성 차단과도 직결된다. MBC 구성원들은 물론 깨어 있는 모든 언론 종사자들에게 거듭 당부한다.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 KBS에 이어 MBC마저 정권의 방송장악에 짓밟힌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후퇴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제 치욕적인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언론장악 #엄기영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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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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