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에 길 양보, 법제화가 최선인가

교통문제 함께 생각해 봅시다

등록 2010.02.16 10:46수정 2010.02.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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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에서 구급차에 길을 양보하는 것을 법제화할 예정이란다. 긴급 출동을 하는 119 구급차에 길을 터주는 차량이 드물어 '생명을 살리러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긴급 출동차량에 길을 양보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12일 "관련 부서에 긴급 출동 차량 길 터주기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외국 사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올해 안에 관련법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연구·검토하여 결정을 하겠지만, 과연 법제화·의무화만이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데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왜 이런 발상이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먼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운전 중에 번쩍이는 경광등에 사이렌 소리까지 요란한 구급차 혹은 소방차를 만난 적이 있다. 가능하면 빨리 피해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시민들이 들은 척 만 척 전혀 비켜줄 생각도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일반 시민이 터준 길을 구급차 뒤에 끼어들어 유유히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술 더 떠서 구급차를 위해 비켜준 자리에 구급차보다 먼저 끼어드는 얌체족들도 분명 있다. 따라서 소방방재청의 이번 결정은 바로 우리 시민들의 의식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만큼 시민의식에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법제화·의무화하기 이전에 우선 몇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시민들이 왜 비켜주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기적인 운전자들이다. 그들은 구급차가 아니라 소방차가 와도 전혀 비킬 생각을 않는다. 소방차의 경우 지휘차가 나서며 호각을 불고 방송까지 해대서야 겨우 비켜주는 시늉을 하고, 교통경찰이 차도를 막아서서야 정지하여 길을 터준다. 분명 이런 이기적인 운전자들이 있다.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 아닐까. 경광등을 번적이고 사이렌을 울리는 차량은 경찰순찰차, 사고견인차, 구급차, 소방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사고견인차는 고속도로에서도 갓길로 달리며 경광등을 울려댄다. 그들이 빨리 가고자 하는 것이 사고를 당한 위급한 생명을 구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분일초라도 먼저 도착하여 고장난 차를 견인하려는, 즉 손님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영업행위라는 것을 일반 시민들은 대충 알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병원 구급차의 불법영업행위, 즉 사용 목적 외 운행을 하여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그렇기에 구급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면 저들이 진실로 위급한 환자를 태우러 가는 것인가, 정말 위급한 환자가 타고 있는가, 혹 병원장의 심부름으로 백화점에 급히 장보러 가면서 울려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기에 비켜줬더니 휴게소로 들어가더라는 얘기는 이제 우스갯소리도 아니다. 그만큼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순찰차도 마찬가지다. 범인을 잡으러 출동하는 것이라면 지극히 조용히 운행해야 할 것이다. 뒤에서 빵빵대고 경광등 번쩍이는 경찰순찰차는 대개가 그리 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운전하는 경찰이 조급증 환자이거나 시민들에 대한 권위의식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불신이 결국 정작 위급한 구급차, 순찰차에게 길을 터주지 않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도심의 도로상황이다. 고속도로나 고속국도 혹은 지방 국도의 경우 폭이 넉넉하여 두 대의 차량이 좌우로 한껏 밀착하면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도심을 관통하는 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심의 일반도로일 경우, 왕복 4차선만 되어도 비킬 공간이 부족하다. 서울의 모든 도로를 조사해 보고 과연 교통혼잡으로 도로가 메워져 있을 때 좌우로 길을 넓혀 구급차가 운행할 공간이 나오는가도 살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좁은 도로만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앞뒤로 꼬리를 물고 운행할 경우 좌우로 붙여 공간을 확보할 만한 도로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넉넉한 왕복 2차선 간선도로를 왕복 4차선으로 차선을 개조한 도로도 많다. 이 경우 도저히 확보할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한 후에, 먼저 그것을 해결하고 법제화를 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본다.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점은 누가 위반차량을 단속하는가이다. 구급차 운전자에게 단속까지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위급한 상황에 긴장하며 운행을 하는데 거기에 비켜주지 않는 차량번호를 적고 증거사진까지 확보하라는 것은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구급차 앞좌석에 단속요원을 한 명씩 배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자리 창출 효과라면 모를까, 구급요원이 한 명이라도 더 타야할 구급차에 단속요원까지 태워야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정리하자.

구급차가 오면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의 시민의식이 최우선 과제다. 다음으로 양보할 공간을 확보한 도로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구급차에 대한 불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사 구급차의 단속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행정편의에 따라 법제화·의무화부터 하고 보겠다는 발상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우선은 시민들을 옭아매고 보겠다는 심보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lby56/150080921257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lby56/150080921257
#구급차 #소방방재청 #길터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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