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0년 전 우리가 외쳤던 그 구호는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이 부럽고 고맙습니다.
오마이뉴스
설 연휴를 끝내고 출근한 화요일(16일) 아침, 우편물과 신문 들이 사무실에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들추다 보니 <오마이뉴스>에서 보낸 작은 우편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겉봉을 뜯어보니 초청장이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10년 전 우리가 외쳤던 그 구호는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창간 10년이 되는 2월 22일에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개방할 테니 일터도 둘러보고 격려도 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뉴스앤조이>도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0년 8월 8일에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오마이뉴스>가 2월 22일 창간한 것을 베껴서 <뉴스앤조이>는 8월 8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날짜만 베낀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구토할 수밖에 없던 기독교신문 시절저는 1999년까지 기독교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했습니다. 기독교 언론사의 상황은 한국교회 현실의 복사판입니다. 신문 숫자가 모르긴 몰라도 100개가 넘을 겁니다. 신문사 문 닫고 문 여는 속도와 신도시에서 교회 망하고 개척하는 속도가 비슷할지 모릅니다.
홍수 때 제일 많으면서도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넘쳐 나는 것이 '물'이요, 가장 절실한 것이 '마실 물'입니다. 언론 홍수 시대에는 신문들이 넘쳐 나지만 정작 읽을 신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100개가 넘는 교단 중에 웬만한 규모가 되는 곳은 저마다 신문을 만듭니다. 모두 총회장이 발행인입니다. 국가로 따지면 대통령이 발행인인 셈이니 언론이라기보다는 홍보지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이 신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신문의 숫자 역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개신교인 숫자가 1000만 명도 안 되는 데다가, 대부분 일반 신자들은 교계 신문을 보지 않습니다. 주로 목사들이 보지요. 이처럼 시장은 매우 작은데 신문은 넘쳐 납니다.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한지 궁금할 것입니다. 운영은 됩니다. 그러나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교단에서 만든 신문들은 기본 구독 및 광고 시장이 있으니까 돈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교권'입니다. 교권 때문에 신문이 견제와 감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만드는 신문의 문제는 '금권'입니다. 이들에게는 기본 시장이 없습니다. 대신 돈 많고 자랑거리 넘치는 대형 교회, 정통 교단에 끼고 싶어 하는 이단․사이비 집단, 뭔가 뒤가 구린 목사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개인 신문사들이 이런 곳에 기생해서 살아갑니다.
6년 정도 기독교 신문사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현실에 구토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30대 젊음을 이런 곳에서 허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시간 선배 기자들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뾰족수는 찾지 못했습니다. 2000년 새해가 열렸지만 고민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끙끙대던 중 문득 '인터넷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세 시대 종교개혁이 가능했던 여러 요인 중 결정적인 것을 들자면, 성경 번역과 인쇄술의 발전입니다. 그때까지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가톨릭 사제들만 읽고 해석했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그저 듣기만 하고 가르치는 대로 믿고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그것을 대량으로 인쇄해, 일반 신자들도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귀로 듣기만 했던 사실과 내 눈으로 직접 읽은 진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종교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