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자케는 비열처리 청주를 말한다
맛객
어제(20일) 신사동의 한 술집에서 나마자케를 마셨습니다. 나마자케란 말 그대로 생주입니다. 그러니까 열처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상태의 술입니다. 효모가 살아있기에 국내 유통은 쉽지 않은데요. 일본 내에서도 동절기에만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한정품의 술입니다. 물론 영하 5도 이하로 보관한다면 여름에도 마실 수는 있지만 말이죠.
참고로 일반적인 사케는 두번의 열처리를 거칩니다. 술탱크에서 숙성통으로 옮기기 전에 한번, 병입 전에 또 한번 열처리를 합니다. 이러한 열처리는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유독 생탁주를 고집하는데요. 안정적인 품질을 위해서 열처리를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보리다데 나마자케를 마셨던 자리에는 이 술을 만든 카스미츠루의 요시오 후쿠모토 사장도 동석을 하였습니다. 인상을 보니 그간 만나본 일본인 중에 가장 한국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고 말했더니, 본인도 뿌리가 한국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답니다. 빈말로 들리지 않는 게 후쿠모토 사장이 사는 효고현과 인접한 나라시는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지역입니다. 헌데 나라시에 문물을 전파했던 민족이 바로 백제인들이었습니다. 어때요, 딱 감이 오지 않나요?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니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말구요.
맛을 봤습니다. 향은 미미한 편이지만 신선한 느낌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첫맛은 아마구치(단술)풍이었지만 여운은 카라구치(드라이)였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니혼슈보다 알콜도수가 2~3도 높은 19도이기 때문일 겁니다. 양조장 카스미츠루는 1725년에 태동하여 285년의 내력을 자랑하는데요. 일본에서 이 정도의 역사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양조장 역사가 대부분 몇십년에 불과하니 그들의 양조장 역사는 부럽기만 합니다.
카스미츠루 양조회사는 1.8리터짜리 병으로 년 30만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나마자케는 1만2천병이구요. 생산된 술은 약 80% 가량이 동네에서 소비된다네요. 진정한 지자케(지역술)라 할 만하죠. 역시 지자케였지만 명성이 전국적으로 뻗어나가 브랜드술이 되어버린 '구보타'나 '핫까이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좋은 술을 만드니까 명성이 난건 인정하겠지만 이제 그 술들은 지자케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본다네요. 그럼 카스미츠루도 전국술이 되고 싶은 욕망은 없는지도 물었습니다. 대도시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영업력이 들 뿐 아니라, 수많은 양조사들의 견제도 무시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때문에 카스미츠루는 자신의 술을 알아주는 지역에 더욱 충실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막걸리가 붐이죠. 이게 일시적인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하나로 통신판매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인데요. 만약 통신판매가 허용된다면 지방의 술이 유통사 농간에 휘둘리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수준 있는 술들은 전국적으로 팔려나가게 되니 합병되거나 문 닫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진즉부터 통신판매가 허용되었는데요. 언제부터 그래 왔는지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본인도 언제부터 허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관행이랍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통신판매가 허용되어 지방의 양조사들이 신바람 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