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막걸리 마신 일본 양조업자... 첫말은?

[맛객의 맛] 비열처리 청주를 마시면서

등록 2010.02.21 18:33수정 2010.02.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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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마자케는 비열처리 청주를 말한다
나마자케는 비열처리 청주를 말한다맛객

어제(20일) 신사동의 한 술집에서 나마자케를 마셨습니다. 나마자케란 말 그대로 생주입니다. 그러니까 열처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상태의 술입니다. 효모가 살아있기에 국내 유통은 쉽지 않은데요. 일본 내에서도 동절기에만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한정품의 술입니다. 물론 영하 5도 이하로 보관한다면 여름에도 마실 수는 있지만 말이죠.


참고로 일반적인 사케는 두번의 열처리를 거칩니다. 술탱크에서 숙성통으로 옮기기 전에 한번, 병입 전에 또 한번 열처리를 합니다. 이러한 열처리는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유독 생탁주를 고집하는데요. 안정적인 품질을 위해서 열처리를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보리다데 나마자케를 마셨던 자리에는 이 술을 만든 카스미츠루의 요시오 후쿠모토 사장도 동석을 하였습니다. 인상을 보니 그간 만나본 일본인 중에 가장 한국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고 말했더니, 본인도 뿌리가 한국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답니다. 빈말로 들리지 않는 게 후쿠모토 사장이 사는 효고현과 인접한 나라시는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지역입니다. 헌데 나라시에 문물을 전파했던 민족이 바로 백제인들이었습니다. 어때요, 딱 감이 오지 않나요?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니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말구요.

맛을 봤습니다. 향은 미미한 편이지만 신선한 느낌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첫맛은 아마구치(단술)풍이었지만 여운은 카라구치(드라이)였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니혼슈보다 알콜도수가 2~3도 높은 19도이기 때문일 겁니다. 양조장 카스미츠루는 1725년에 태동하여 285년의 내력을 자랑하는데요. 일본에서 이 정도의 역사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양조장 역사가 대부분 몇십년에 불과하니 그들의 양조장 역사는 부럽기만 합니다.

카스미츠루 양조회사는 1.8리터짜리 병으로 년 30만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나마자케는 1만2천병이구요. 생산된 술은 약 80% 가량이 동네에서 소비된다네요. 진정한 지자케(지역술)라 할 만하죠. 역시 지자케였지만 명성이 전국적으로 뻗어나가 브랜드술이 되어버린 '구보타'나 '핫까이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좋은 술을 만드니까 명성이 난건 인정하겠지만 이제 그 술들은 지자케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본다네요. 그럼 카스미츠루도 전국술이 되고 싶은 욕망은 없는지도 물었습니다. 대도시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영업력이 들 뿐 아니라, 수많은 양조사들의 견제도 무시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때문에 카스미츠루는 자신의 술을 알아주는 지역에 더욱 충실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막걸리가 붐이죠. 이게 일시적인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하나로 통신판매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인데요. 만약 통신판매가 허용된다면 지방의 술이 유통사 농간에 휘둘리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수준 있는 술들은 전국적으로 팔려나가게 되니 합병되거나 문 닫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진즉부터 통신판매가 허용되었는데요. 언제부터 그래 왔는지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본인도 언제부터 허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관행이랍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통신판매가 허용되어 지방의 양조사들이 신바람 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의 양조업자 요시오 후쿠모토 사장이 송명섭 명인이 빚은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일본의 양조업자 요시오 후쿠모토 사장이 송명섭 명인이 빚은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맛객

일본에서 나마자케를 가져온다니 저도 빈손으로 갈수 없어 막걸리 두병을 챙겼습니다. 어떤 막걸리인지 다들 눈치 채셨죠? 바로 송명섭막걸리입니다. 일본의 양조업자에게 내보여도 전혀 꿀리지 않는 막걸리입니다. 맛을 본 후쿠모토 사장의 소감은 한마디로 마시기 편하다였습니다. 일본의 탁주인 니고리자케 느낌도 난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니고리자케나 송명섭막걸리나 주 재료는 쌀과 누룩 두가지입니다.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데에서 서로간 닮은꼴인 셈이죠.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산이 미각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답니다. 예전 우리네 막걸리는 산의 느낌이 각별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막걸리는 산미보다 감미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인데요. 한국의 양조업자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송명섭막걸리는 저질스러운 단 막걸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니 해당사항 없는 얘기입니다.

송명섭막걸리에서 느낌을 받았는지 관심을 표합니다. 몇명의 양조자가 일하는지 묻더군요. 송명섭 명인 혼자서 빚는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랍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양조장에는 정사원만 4명, 토우지(양조자)가 3명이랍니다. 송명섭명인의 태인양조장에도 한때는 20여명 넘는 직원이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후쿠모토 사장의 말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앞으로 한국술 번창할겁니다."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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