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꼬메오름 초입에 있는 산담. 제주도에선 삶과 죽음이 이렇게 한데 어우러져 있다. 멀리 보이는 오름이 큰노꼬메오름이다.
이주빈
노꼬메오름 초입에서 어김없이 산담을 스치다아무리 머릿속을 비우려 해도 나절로 이런저런 상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억지로 비우려 하기보단 차라리 어우러지는 것이 낫다. 특히 제주도에서 '산담'을 스칠 때는 더욱 그렇다.
노꼬메오름 가는 길, 어김없이 산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도 말로 '산'은 무덤이니 산담은 무덤에 둘러친 담인 셈이다. 산담은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일종의 경계다.
하지만 산 자들은 날마다 죽은 자의 거처를 지나고, 말들은 죽은 자의 거처에 핀 풀을 뜯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생사를 구별 짓는 확연한 경계가 삶과 생활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그래서 시인 이생진은 <섬 묘지>에서 이렇게 노래했던가.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섬 꼭대기에 묻었다/살아서 가난했던 사람/죽어서 실컷 먹으라고/보리밭에 묻었다/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죽어서 찾아가라고/짚신 두 짝 놔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