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屍)은 산짐승 사냥을 나온 송찬우(宋燦宇)의 시선에 걸려 발견됐다. 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소문에 사람들 발길이 뜸한 인왕산 마루턱, 영혼이 저승의 문지방을 넘어선 빈껍데기뿐인 사내 몸이 발견된 건 고삐 풀린 한여름 더위가 물러간 지 일주일 가량 지났을 때니 단풍에 물들기 시작한 삼천리금수강산은 그야말로 산짐승 천국이었다.
"허리 아픈 내가 시신을 발견한 건 짐승 사냥을 그만 두라는 계시인 것 같습니다. 혼백이 없다지만 목숨이 질긴 건 짐승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동료들과 사냥 나섰다가 자신만이 달랑 꿩 한 마릴 잡은 걸 생각하며 그런 넋두리를 풀어헤쳤다. 관아의 서리배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한양으로 돌아온 정약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누가 발견했는가?"
송찬우가 앞으로 나서며 상황 설명을 그려냈다. 아침 밥상 밀어내고 인왕산에 올랐으나 그 많던 짐승 한 마리 구경 못하고 쉬고 있던 중 발견한 것이라 했다. 하루 전에 내린 비로 주검이 놓인 곳은 습기가 가득해 근방을 걸을 때엔 발이 푹푹 빠졌다.
"따로 금역을 설치할 것 없네. 주검을 방치했다간 내일이라도 구더기가 생길 터, 서둘러 관아로 옮기게. 죽은 자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학문은 있어 보이는데 손바닥에 군살이 없고 검지에 먹물 자국이 없으니 부모 재산이나 축내는 건달 선비가 아닌가. 이 자의 인상착의를 붙여 아는 자를 수소문 하게."
주검의 임자는 정한수(鄭翰秀)였다. 산 아래 옥인동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수소문을 나선 송화는 달갑지 않은 소식을 내놓으며 혀를 찼다.
"몇 번의 과거시험에 낙방하자 시중의 모리배들과 어울린 모양입니다. 잡기에 능하다고 알려진 걸 보면 글 읽는 것관 담을 쌓았어요. 가끔 고개를 넘은 것은 선비들과 어울려 시회(詩會)를 즐긴다지만 이 자의 패거리들은 투전판이나 엉뚱한 일 꾸미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러한 일이 과부를 보쌈해 몇 날이고 즐기다 되돌려 보내거나 투전판을 급습해 재물을 빼앗는 것이었으니 목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라고 농질했다. 숲이 깊어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인왕산.
대낮에 가는 데도 밤인 것처럼 숲길이 먹물을 뿌린 듯 웅크린 인왕산. 인왕산 모른 호랑이 없다는 건 기암괴석과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명승지가 즐비하기 때문이리라. 조사가 끝나고 검시기록이 작성됐다.
사인은 머리를 무엇엔가 부딪치거나 강한 충격을 순간적으로 받았을 때 나타난 것으로 풀이했다. 동공이 열린 건 그런 이유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으로 보면 갑자기 변을 당해 산속에 유기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이라는 것인데?"
관아에 돌아 온 정약용의 중얼거림에 송화가 반색하며 뒤를 받았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주검이 있던 자리 말일세. 올라오던 사람 발자국이 있던데 사냥꾼인 송찬우의 걸 빼면 두 사람 것으로 보이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동행했던 서리배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다모(茶母)가 정한수(鄭翰秀) 집으로 갔으니 요즘 어떤 일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되겠지요. 정가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는 걸 보면 곤욕을 치를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만···."
"가을 문턱이니 살이 쉬 상하는 계절일세. 확실한 사인을 찾아보게."
서리배는 다시 사체를 보관하는 곳으로 들어가 그것을 관측대 위에 올려 감초 즙으로 닦아냈다. 구석구석을 닦았지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역한 냄새가 고약했다. 영초를 바르고 상흔을 살폈으나 흔적이 없었다. 칼로 찌르거나 몽둥이로 구타당한 흔적이 없으니 사인(死因)은 날붙이나 몽둥이가 아니었다. 또한 목을 조른 흔적도 없어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둔기로 맞거나 날붙이로 찌른 흔적이 없고, 이렇듯 곱게 죽은 사체는 처음 보는구먼. 어느 한 곳 함몰된 부분이 없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
이번엔 은수저를 입안에 찔러보았다. 독물에 중독된 흔적도 없었다. 어떻게 죽은지를 모르는 사체(死體)를 놓고 사인 규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약용은 한식경이 지나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인왕산은 한양 서쪽을 지켜주는 우백호에 해당한다. 종로의 누상동·옥인동과 서대문구 홍제동 경계에 있는 높이가 338미터에 이르는 한양 내사산(內四山)의 하나다.
이곳에 인왕사란 절이 있어 인왕산이라 하였고, 서봉(西峰)이니 서산(西山)이라 한 것은 조선 초기 서쪽 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필운산(弼雲山)은 중국 사신이 지은 것으로 그 이름을 따 필운대라 명명한 곳도 있다.
이 괄이란 장수가 난을 일으켰을 때, 산 아래 무악재에서 장 만과 정 충신이 이끄는 관군과 반란군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것으로 유명한 피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이다. 조선 시대엔 호랑이의 출몰이 빈번해 방문을 붙여 경계한 탓에 인왕산 호랑이는 알게 모르게 유명한 말이 돼 버렸다.
이곳 산 아래 묘각(廟閣)이 하나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행인들은 지난 세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각(祭閣)이라 알았지만, 분명 묘각이었다.
향촌(鄕村)에서 제를 지내려 지은 것으로 묘각이 세워진 건 두 해 전이었다. 처음엔 관우(關羽)를 모셨으나 지금은 토지신을 비롯해 도가의 사당 역할을 했다. 가뭄이 들거나 장마로 인해 백성들의 탄식이 깊어질 때면 마을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신령께 제를 올리며 복 주기를 청했다.
묘각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졌다. 시회를 열 수 있는 2층 툇마루를 비롯해, 비를 피해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서너 평의 공간과 잡다한 물건을 넣어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배려한 다목적 곳간이 있었다. 그러므로 산중에 왔다가 고르지 않은 날씨에 오가지 못한 행인들은 이곳에서 충분히 쉬어갈 수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이곳에서 쉬어갈 때면 묘각을 지은 이는 없는 이에게 적선을 베푼 부처의 화신일 거라고 오가는 사람들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정오가 지나서야 정약용은 이곳에 당도했다.
'주검이 놓인 곳에서 발자국이 내려간 방향은 저쪽이고, 올라온 쪽은 이곳으로 향해 있다. 발자국이 깊이 팬 것으로 보면 사체(死體)를 안고 주검이 있는 장소로 갔을 것이다.'
발자국의 길이와 폭이 넓은 건 사내 것이지만 좁고 가느다란 건 여인의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그 날은 남녀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니 살인이 행해지기 전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사대부가의 아낙이 정부와 모의해 일을 저지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한적한 곳까지 올 일은 없을 터이고···.'
이런 생각은 정한수가 악동처럼 파렴치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점에 가능한 추정이었다. 그의 부인 장씨(張氏)는 온순 가련형으로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성격이었다. 남편의 주검을 보는 순간 주르르 눈물 흘리며 마음 속으로 슬픔을 삭이는 여자에게 어찌 정부가 있고 살생 계획을 세우겠는가.
이번 사건은 정한수 가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게 원한을 산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해야 옳았다. 문제는 사인(死因)과 살해 동기였다.
하루가 지나자 사체에선 악즙이 흐르고 냄새는 더욱 강해졌다. 진마유(眞麻油)를 코 밑에 바르고 코마개를 한 정약용은 감초 즙으로 사체를 닦아내며 손끝으로 눌러 상흔을 찾으려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상흔은 전연 나타나지 않았다.
'약물에 중독된 것도 아니고 맞아 죽은 것도 아니다. 액살을 당한 것 같으나 그것도 아니니 참으로 묘한 일이야.'
문득 그의 손길이 머리 쪽으로 향하자 후두부(後頭部)의 한 지점에 진물이 배어나는 게 시야에 걸렸다. 구멍 뚫린 곳이라면 그런 상흔이야 나타날 법 했지만 이곳은 구멍이 없었다. 확대경을 들이대고 머리 섶을 뒤적이자 한 부분에서 새어나온 악즙(惡汁)은 건드릴수록 부패된 냄새를 고약스럽게 풍겨냈다. 풍지(風池)라 부르는 혈 자리였다.
다른 곳과 달리 풍지에서만 악즙이 부풀어 오르듯 수포가 있었다. 아무리 혈(穴) 자리라도 제 자리를 찾아 침을 놓지 않으면 부패가 시작됐을 때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라는 건 이미 검험장(檢驗帳) 작성 요령을 익힐 때부터 귀 따갑게 들었었다. 정약용의 뇌리는 벌레마냥 꿈틀거렸다. 경혈에 밝은 검시의의 설명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후두부는 강한 것보다 약한 마찰을 필요로 하는 곳이오. 나이 드신 분들이 머리가 묵직하고 몸이 둔할 때 목을 매만지거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질 않던가. 그런 정도의 마찰이 필요한 곳이오. 목에는 독경(督經)을 비롯해 방광경(膀胱經) · 담경(膽經) 외에 삼초경(三焦經)이 흐르고 있네."
경혈이 집중돼 있는 곳이기에 경락(經絡)의 집중점이라는데 검시의의 목소리에 힘을 주었었다. '풍지'는 머리가 아프거나 흔들리고 어지러운 증세를 고치는 경혈이다. 혼미한 일을 만나거나 고약한 상황을 당해 어찌할 바 모를 때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풍지'를 자극해 고통을 완화하려는 스스로의 보호본능 때문이었다.
'살인자는 피해자의 머리를 매만지며 이곳에 침을 찔러 넣었어. 풍지에서 수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게 그걸 말하는구먼. 다른 장소에서 찔러 유기된 현장까지 운반했다고는 볼 수 없고,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사고는 인왕산 인근에서 일어났을 게야. 그게 산 중에 버려야 하는 이유니까. 풍지를 찔렸다면 이곳에서 침술 치료를 받았다는 건 어설픈 가설일 게고 계집과 방사를 치르는 과정에 혈자리를 급습 당했다면 가능한 일이긴 하나 혈자리를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의문은 꼬리를 물고 정약용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검시기록을 다시 점검하고 그 동안 조사해 온 피해자 주변 인물부터 만나는 게 순서인 것 같아 그의 집으로 향했다. 부인 장씨와 사이에 일 점 혈육이 없고 혼인한 지 두 해 동안 집구석이라고 편히 들어와 쉰 건 손을 꼽을 정도라고 한숨부터 쏟아놓았다.
몰락한 양반가문이지만 그래도 옛 자취는 있는 편이어서 군데군데 획이 뜯겨나간 주련(柱聯)의 글씨가 빛바랜 채 남아 있었다. 그 곁엔 반쯤 치매 현상이 있다는 팔순이 다 된 시어머니가 무릎걸음으로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주]
∎진마유(眞麻油) ; 참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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