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친구를?...15리길 달려가 학교 쑥대밭으로

50년 전 고등학생은 어른스러웠을까?

등록 2010.02.27 16:06수정 2010.02.2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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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뭔놈의 쌈박질이여? 쯧쯧! 옛날에는 고등학생이면 상 어른이었어! 암~ 그라제!"

 

윗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경따윈 잊은 지 오래고, 당돌한 모습들을 두고 보자니 미래까지 걱정되어 지나가는 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말처럼 옛날(?)의 고등학생이면 정말 어른스러웠을까? 그렇다면 50년전인 1960년의 고등학생은 얼마나 어른스러웠는지, 당시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신문을 살펴보니, 시국이 시국인지라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맞서 끈질긴 싸움을 벌이면서 4월 19일의 대항쟁을 이끌어낸 주역이 어르신들의 말처럼 역시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신문의 사회면 기사에 고등학생끼리의 패싸움 기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암울한 시기라 실제로 싸울 이유가 많았는지,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도 어른을 닮기 위해 시비가 자주 붙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수백명끼리 난투극을 벌여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이야기는 사회면의 단골로 자주 등장한다.

 

곽경택 감독의 히트작 <친구>가 영화 개봉 당시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해 흥행 대성공을 거둔 일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짐작하는 대목이다.

 

-10여명중경상(OOO공고생 수백명 패싸움)1960년 5월12일

-사제(師弟)간에 난투(상급생이 투석) 1960년 5월17일

-한때 투석전까지(OO상고생과 OO고생 난투) 1960년 5월25일

-3백 학생들이 난투(OOO고 교장파와 교감파 간에) 1960년 7월15일

-소풍간 학생들 패싸움(오백명이 집난난투)1961년 10월19일

 

기사의 제목도 상상을 초월하고 내용은 한술 더 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전남 광양지역의 70~80대 어르신들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온다는 기사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그 '전설'은 전해 내려오는 입소문이나 무용담이 아닌 실제 사회면의 4단기사로 크게 다뤄진 것이 확인된다.

 

a "1천명 학생이 집결"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7일 경향신문 사회면

"1천명 학생이 집결"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7일 경향신문 사회면 ⓒ 경향신문

▲ "1천명 학생이 집결"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7일 경향신문 사회면 ⓒ 경향신문

 

다음은 1960년 6월17일 경향신문의 사회면 기사.

 

1000여학생이 집결 - 진성농고 피습에 보복할 기세

17일 상오 10시, 쇠뭉치 장작 곤봉등을 손에 쥔 1천여명의 전라도 광양군의 각 고등학교생들은 경남 하동고등학교를 때려 부수겠다고 도 경계선을 넘고 정오 현재 폭행직전에 들어섰다. 경찰보고에 의하면 이들은 전남광양군 진성면 소재 진성농업고교생을 위시한 순천 여수 광양지방의 일부 고등학생이라는데 16일밤 하동고등학생 150여명이 진성농고를 습격하여 학교를 산산이 부순데 대한 보복행위로 보고 있다. 사건은 16일 하오5시40분 진성농고생 수명이 하동고교생 김태근군외 3명을 때려 눕힌 데에서 발단되었다. 사소한 언쟁끝에 얻어맞은 3명은 곧 동료들에게 달려와서 복수하자고 제의하자 150여명의 고고생이 호응, 그 길로 진성농고에 가서 ▲부상자 1인에 25만환씩 위자료를 내라 ▲신문광고를 내어 사과하라는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성농고측은 이에 불응하였다. 그 순간 "때려부수자!"고 한 한생이 고함치자 삽시간에 교실의 유리창과 기물들은 파괴되고 진성농고측은 도망쳐버렸던것이다. 도경찰은 경찰관 200여명을 긴급 현지에 파견, 사태수습에 힘쓰고 있으나 불상사의 사전진압은 힘들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960년 6월17일 경향신문 (기사중의 '진성면'은 '진상면', '진성농고'는 '진상농고'의 오보)

 

a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8일 동아일보 사회면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8일 동아일보 사회면 ⓒ 동아일보

광양과 하동지역 고등학생들의 패싸움을 다룬 1960년 6월18일 동아일보 사회면 ⓒ 동아일보

그 다음날은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서도 다룬다.

 

15리길 달려가 교사(校舍)를 파괴 - 하동에서 두 학교생 집단싸움

경남하동에서 고교생들간에 집단싸움이 벌어졌다. 지난 16일하오 15리나 되는 길을 달려와서 전남광양군 진상농고의 유리창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돌아온 하동고교생 150여명은, 이들의 파괴행위를 보복하기 위하여 17일 상오 전남광양에 있는 진상농고와 중학교생 3백여명과 또한 광양고교와 순천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합세해서 하동으로 달려가고 있다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15일 하오 하동고교 3학년생 김태군(19)외 3명이 진상면에 소풍갔다가 집단폭행을 당하고 분개한끝에 하동고교생 전원은 수업을 마치고 15리나 되는 길을 달려 진상농고에 몰려가 유리창을 모조리 파괴한데 대하여 이를 보복할 목적으로 하동으로 달려간 것이라한다.

-1960년 6월18일 동아일보

 

소설처럼 느껴지는 기사 속의 현장감 넘치는 표현과 단어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난다.

 

더 이상의 속보기사가 없어 이후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소문에 의하면 이후에도 심심치 않게 패싸움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후에도 '저런 싸가지없는 전라도 깽깽이들'하며 벌떼처럼 몰려가 박살을 내고 나면 어김없이 '천하에 염빙할 경상도 보리문딩이들이 감히'하며 쑥대밭을 만들고 돌아오곤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사회면을 장식했던 '패싸움'이 고등학생의 전부는 아니었으리라. 세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던 60년대의 고등학생들은 지독히도 가난했다. 하지만 암울했던 나라를 먼저 생각했고, 단결력도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정이 가득했으리라.

 

하루종일 소꼴을 베고 나무를 해야 했고, 밤에는 가마니를 치며 배가 고프면 고구마를 삶아 먹기도 하고 날무우를 깎아 먹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성장기 학생들과 청년들이 지금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감히 기대한다. 그 시절 불의라고 생각하면 참지 못했던 순수한 단결력과 낭만이 회복되기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이 로맨티시스트들이 되어서 끈끈한 정이 넘치는 푸른 계절을 도래케 하는 주역이 되기를….

2010.02.27 16:06ⓒ 2010 OhmyNews
#1960년 #패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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