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십년감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인도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십년감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정혜진-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 223쪽
"인도(人道)와 도로(道路)"는 "사람길과 찻길" 또는 "거님길과 찻길"로 다듬습니다. 또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로 다듬어 줍니다. '교차로(交叉路)'는 '엇갈림길'이나 '갈림길' 또는 '길'로 손봅니다. 앞뒤 말을 이어 본다면,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 만나는 자리에서는"이나 "사람과 차가 서로 만나는 길에서는"이나 "사람과 차가 함께 다니는 길에서는"쯤이 되겠지요.
┌ 십년감수(十年減壽) : 수명이 십 년이나 줄 정도로 위험한 고비를 겪음
│ - 십년감수는 실히 했을 거요 / 자네가 죽는 줄 알고 십년감수했네
│
├ 십년감수할 때가
│→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 깜짝깜짝 놀랄 때가
│→ 크게 놀랄 때가
│→ 죽을 뻔할 때가
└ …
"너 때문에 목숨이 십 년은 줄었어."라든지 "그 일을 치르며 목숨이 이십 년은 줄었지."처럼 말하곤 합니다. 몹시 힘든 일을 겪을 때나 아주 큰 고비를 넘기면서 하는 말입니다. 말뜻 그대로 "죽을 뻔했어."나 "죽는 줄 알았어."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모두 크게 놀란 모습을 가리키고, 깜짝 놀란 모습을 나타냅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유 깜짝이야." 하고 읊을 때가 있고, "참 큰일날 뻔했네." 하고 욀 때가 있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놀랐잖아." 하고 외칠 때가 있고,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고 한숨을 쉴 때가 있습니다.
놀라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고, 놀람을 받아들이는 느낌 또한 사람마다 다릅니다. 다 다른 모습과 느낌대로 다 다른 말투가 있으며, 다 다른 말투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우리 말살림을 북돋웁니다.
┌ 십년감수는 실히 했을 거요 → 목숨이 십 년은 넉넉히 줄었을 테요
└ 십년감수했네 → 목숨이 십 년 주는 줄 알았네 / 큰일날 뻔했네
이 보기글에서는,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늘 목숨이 줄어듭니다"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오래 못 살겠어요"로 손질해도 되겠지요.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제 목숨대로 못 삽니다"로 손질하거나,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로 손질해 주어도 괜찮습니다.
ㄴ. 이번엔 정말 십년감수했다
.. "도대체가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이 꼴이 돼서 돌아오다니, 이번엔 정말로 십년감수했다." .. <모리모토 코즈에코/장혜영 옮김-조폭 선생님 (15)>(대원씨아이,2007) 187쪽
'도대체(都大體)가'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도무지가'라든지 '그야말로'나 '세상에가'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처녀(處女)'는 '아가씨'로 다듬습니다.
┌ 이번엔 정말로 십년감수했다
│
│→ 이번엔 참말로 아슬아슬했다
│→ 이번엔 참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 이번엔 참말로 네가 죽는 줄 알았다
│→ 이번엔 참으로 크게 한숨 돌렸다
│→ 이번엔 참말로 너한테 큰일 나는 줄 알았다
└ …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르신들이 "어이구, 십년감수했네!" 하고 말씀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곧잘 보았습니다. 어른들 말마디를 익히 들으면서 우리들도 이 말이 익숙해지며 서로서로 "십년감수했잖아!" 하고 외치곤 했습니다. 동무들이 짓궂게 깜짝깜짝 놀래키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십년감수'가 무슨 뜻인지는 오래도록 몰랐습니다. 그리고 '십년감수'가 무엇을 뜻하는 낱말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뜻은 모르는 채 '깜짝 놀라'거나 '크게 놀라'는 자리에서 알맞게 쓸 말이라고만 느꼈습니다.
어린이라 하여도 '십 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압니다. 그러나 '감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구태여 알 까닭을 찾지 못했으며, 둘레 사람들 누구도 '감수'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더러 알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다가 퍽 오랜만에 '십년감수'라는 대목을 만나면서 살짝 덮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감수'가 무엇을 뜻하는지 여태껏 모르고 있었네?'
[감수(減壽)] 수명이 줆
국어사전에서 '십년감수'와 '감수'를 따로따로 찾아봅니다. 두 가지 모두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그런데, 이 두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서 말을 익히거나 가다듬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있을까요?
국어사전에서는 "수명이 줆"이라고 나오는데 '수명(壽命)'은 "생명이 살아 있는 연한"이라고 합니다. '연한(年限)'이란 "정하여지거나 경과한 햇수"라고 합니다. '경과(經過)'란 "시간이 지나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명 = 생명이 살아 있기까지 시간이 지나간 햇수"를 가리키는 셈이며, 우리 말로 하자면 '목숨'입니다. 곧, '십년감수'라는 한자말은 '목숨이 열 해 줆'을 나타냅니다.
┌ 이번엔 크게 놀라 목숨이 열 해 주는 줄 알았다
└ 이번엔 참말 놀라 목숨이 열 해 주는 줄 알았다
말뜻 그대로 말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뜻 그대로 글을 쓰면 넉넉하지 않을까 헤아려 봅니다. 말뜻 그대로 알맞게 말하면 좋지 않을까 곱씹어 봅니다. 글뜻 그대로 글을 쓰면 사랑스럽지 않을까 되뇌어 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말뜻 그대로 말을 안 하고 있는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왜 글뜻 그대로 글을 안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쳤나요? 어버이가 이처럼 가르쳤는가요? 우리 스스로 이렇게 말길을 걸어가고 있나요? 누가 시켜서 이러한 글길을 붙잡고 있는지요?
┌ 간 떨어지는 줄 알다
├ 간이 콩알만 해지다
├ 심장이 벌렁벌렁 뛰다
├ 심장이 멎는 줄 알다
└ …
곰곰이 따지고 보면 '십년감수'같이 네 글자로 적는 한문은 '한자말 문명 사회 관용구'입니다. '한자로 적바림하는 속담'입니다. 우리 삶자락에 한자말이 꽤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한문을 쓰는 겨레'가 아니라 '한글과 우리 말을 쓰는 겨레'입니다. 우리 말밭을 넓히고 우리 생각밭을 키우고자 '한자를 어느 만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영어를 여러모로 받아들여 쓰는 오늘날 모습'처럼 지난날에는 '한자로 지은 낱말을 이모저모 받아들여 쓴' 우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써야 할 자리에는 알맞게 한자말과 영어를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을 자리에는 올바르게 걸러내고 털어내고 씻어내면서, 우리 낱말과 말투와 속담을 싱그럽고 해맑게 살려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올바르게 가누고, 우리 깜냥껏 우리 상말(속담)을 슬기롭게 빛내며, 우리 온힘과 온마음으로 우리 말밭과 글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한겨레라고 한다면.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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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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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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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87) 십년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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