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우리 동네 고사리꽃 11

등록 2010.03.10 13:38수정 2010.03.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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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는 사슴의 목소리가 그렇게 우악하고 퉁명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나는 사슴의 목소리가 그렇게 우악하고 퉁명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 토마스 알트누르메

나는 사슴의 목소리가 그렇게 우악하고 퉁명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 토마스 알트누르메

 

소란이 잠시 진정되자 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회원 여러분들을 모두 환영하는 바입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저희들은 고사리꽃의 사명을 가지고 이 곳에 모였습니다. 일년 동안 편히들 계셨지요?"

 

동물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강아지만하게 생긴 동물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눈가에 검은 점이 있는 모양이, 어느 그림책에서 많이 본듯한 모습의 동물이었으나,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작년은 너무 넓은 지역에서 일을 하느라 굴에도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올해도 그러겠지요?"

 

가슴에 반달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검은 곰이 거들었다.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어디 숨을 곳도 없고..."

 

보아하니 이 동물들은 매년 여기 은행나무 아래에 모여서 이런 이상한 조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은 노란 가죽의 동물이 말했다. 아마 여우인듯 했다.

 

"올해 모인 회원 중에는 사람이 한 명 있는 모양이에요."

 

여우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듯 교활하다거나 날렵해보이는 톤이 아니었다. 그냥 수더분한 아줌마처럼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마치 만화영화에서 목소리를 녹음하는 사람들처럼 발음이 또박또박하고 아주 정확했다.

 

쥐가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년 하지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구로, 서울로, 제주로 모여주시는 회원님들 아주 수고가 많으십니다. 올해는 아시는 바대로 여기 평택에서 회합을 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사흘 동안 수고를 부탁 드리는 바입니다. 아까 저기 여우 회원이 이야기한대로 올해에는 우리 중에 인간 회원이 한명 있습니다. 이 자리에 불러서 한번 느낌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그러자 은행나무 근처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던 동물들은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박수를 쳤다. 내 옆에 있던 토끼를 쳐다보고 눈으로 질문을 보냈다.

 

"나가야 돼?"

 

토끼는 동그란 눈을 빛내며 나가도 된다는 신호를 주었다. 정말 학교에서도 저런 자리에 나가본 적이 한번도 없는데, 저런 이상한 동물들 앞에서 소감을 말해야한다니. 나는 그렇게 마지못한 듯 동물들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아주 상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기로 했다. 

 

"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 말을 듣자 큰 뿔을 가진 사슴이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야,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이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게 무슨 말이야?"

 

나는 사슴의 목소리가 그렇게 우악하고 퉁명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아까 말을 꺼낸 눈 주위가 검은 동물도 거들었다. 아마, 그 동물은 너구리였던 것 같다.

 

"그래, 여기 사람이라고는 너 밖에 없단 말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난 정말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토끼가 황급하게 꼬리를 흔들면서 내쪽으로 뛰어오더니 말했다. 

 

"여기서는 전부를 회원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너도 회원이라고 말하면 돼."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대체 무엇이 반갑다는 것인지, 나도 감을 잡을 수 없었으나 그냥 인사만 꾸벅하고 다시 내가 서있던 자리로 들어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두려움보다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더 생긴다.

 

쥐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나는 그 자리에 얼마 있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쥐가 은행나무 줄기 밑에 앉아 동물들 앞에 서면 그 조회라는 것을 진행하거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발표하고자 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적으로 그 쥐의 작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몹시 참을성이  없어보이는 곰이 그 사이의 정적을 참지 못하고는 손을 들어 말했다.

 

"그럼 올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정확히 뭐요? 올해에도 이 땅에 전쟁이 납니까?"

 

쥐가 대답했다.

 

"곰 회원 양반. 내가 그 말을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마침 내가 우리의 계획을 말하려고 하고 있었소. 고사리꽃이 바로 어제 다시 피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도 어제 그 꽃을 본 새로운 회원들이 많이 모이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들이 할 일은 꼭두장군과 함께 곧 사라져갈 이 지방의 모습들을 담아서 하늘로 올려보내는 일입니다. 조만간 사라져버리게 될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을 상여에 모아두면 꼭두장군이 그것을 이끌고 하늘나라로 가져 올라가게 되는 것이죠."

 

그 말이 끝나자 모든 동물들이 무언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일제히 '오' 하고 탄성을 질렀다.

 

"토끼 회원이 몇 년에 걸쳐 준비를 해오다가 올해 특별히 이 자리로 불러모았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저 회원을 고사리꽃이 피는 곳에 데리고 나갔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소."

 

난 당연히 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상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동물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감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다른 동물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어었는지 쥐가 잠시 고개를 숙여 목소리를 가다듬는듯 했다. 그리고 나서 힘껏 고개를 젖혀서 팔을 하늘로 내뻗더니 외쳤다.

 

"회원 여러분, 준비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꼭두장군이 오십니다."

 

과연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큰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순간 동물들이 아까저럼 일제히 흥분이 묻어나는 탄성을 지르더니 전부 은행나무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 삽화가 소개 - 토마스 알트누르메. 에스토니아 그래픽 아티스트. 탈린 사범대학 졸업,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유학 후 조각과 그래픽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며 활동 중.

2010.03.10 13:38ⓒ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삽화가 소개 - 토마스 알트누르메. 에스토니아 그래픽 아티스트. 탈린 사범대학 졸업,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유학 후 조각과 그래픽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며 활동 중.
#고사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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