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론 씨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 모습.
고두환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젊은 운영위원장 '말론'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두른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장시간 이동하고, 모내기로 피곤해서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혹 전달되지 않진 않을까? 그렇게 다른 곳에서 서봄으로써, 이푸가오 지역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곳이 보존되기 위해서 현재를 즐기는 여행자들 역시 일종의 행동을 해야된다는, 우리의 고민을 참가자들은 이해했을까?""글쎄. 우리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당장 답을 구할 수는 없겠는데."미국, 영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젊은이들과 함께 '생태관광'의 모델을 고민했던 말론 씨지만, 처음 여행을 해본 한국의 젊은이들의 반응을 그는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지난 밤 가진 평가에서, 각자 생각이 다르면서도 '공정여행'의 모습을 무조건 좋게만은 바라보지 않는 일부 비판적인 의견이 도출될 때 그는 짐짓 놀라는 모습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린 결국 가진 자의 입장에서 지역의 볼거리를 보며, 볼거리를 파괴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가진 자만이 떠날 수 있는 여행에서, 지역에 대해 고민을 하며 내가 쓰는 돈의 일부나마 그 지역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공정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한들, 내가 밟는 논둑길은 무너져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정한 것일까?' - 곽수현(영남대 특수교육학과) 참가자의 에세이 중 일부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공정여행'에 대해 처음 말론씨와 이야기 나누던 것이 생각났다.
지구를 반바퀴나 돌 수 있는 계단식 논을 자랑하는 이푸가오 지역의 세계문화유산은 이미 30%가 파괴한 상태, 이것을 더 이상 지킬 원주민도 없고 몰려드는 관광객을 막을 재간도 없는 상태에서 젊은 청년 말론은 '생태관광'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사람이 견문을 넓히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 막을 수 없다면 그 행위에 책임을 지워주자!'는 생각 아래, 계단식 논 농사 일정과 이푸가오 족 전통 행사 일정을 조합하여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는 주민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이제 계단식 논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찾아오는 여행자들도 어느새 그 가치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을 깨우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저 와서 눈요기만 하고 가면 모든 것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여기 사는 사람들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요'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그의 그런 의도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쓰라린 500여 년의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지는 히틀러와 나치의 오만이 무너진 베를린만일까.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이 위치한 '키안간' 역시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지 중 하나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입맛에 맞추어 국토가 유린당한 쓰린 기억이기도 하다.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생태관광 프로그램 자원봉사 가이드를 하고 있는 '조나단' 씨는 그 이야기를 잠시 풀어놨다.
"이곳은 연일 패전을 거듭하던 일본군의 잔당들이 숨어들었었고, 미군은 이푸가오 족과 연합하여 그 잔당들을 쫒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키안간'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잡히게 되지요. 이 때 일본군을 이끌고 있던 사람은 '말레야의 호랑이'라 불렸던 야마시타이고, 그를 끝까지 추격했던 사람은 미군의 맥아더였는데 그 둘은 악연이 있었습니다. 야마시타의 필리핀 공격 당시,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낳고 도망가는 형국이었거든요. 결국 야마시타는 동경전범재판에 회부도 되지 못한 채 맥아더에게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이나 미국이나 필리핀을 그저 도구로 이용했다고 밖에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일본은 그랬을지 몰라도, 미국은 우리와 연합한 상태였죠. 그들은 지형을 이용하여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던 이푸가오 족을 포섭하려 든 것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