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세상에 그대의 얘기들을 던져라

영화 '개청춘', "20대가 해야할 일은 일단 '질문하기'"

등록 2010.03.14 19:59수정 2010.03.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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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청춘' 영화 '개청춘'은 '20대들이 먼저 자신의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 '개청춘'영화 '개청춘'은 '20대들이 먼저 자신의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반이다
스물일곱 살 김민희씨는 대기업 인사과에 다닌다. 더없이 완벽해 보이는 20대의 삶. 하지만 카메라의 시선 앞에 천천히 자신의 얘기를 꺼내놓는 김민희씨의 진실은 그렇지 못하다.

번듯한 직장에서 7년째 일하고 있지만 고졸 학력 때문에 김민희씨의 봉급은 대졸 신입사원보다 적다.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야간 대학에 등록했지만 버거운 생활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꿈을 찾아 간다했지만 여전히 그는 위태로운 삶에 힘겨워한다.   
 
"언니, 나 정말 멍청한 것 같아. 늘 꿈만 꾸고 있나봐. 드라마만 많이 봐서 그런가. 열정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머리를 싸맨 '88만원 세대' 김민희씨는 그렇게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말을 세상에 건넨다.

88만원 세대로 빚내는 그들의 불안한 줄타기

영화 '개청춘'에 등장하는 김민희씨의 이야기이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작품 '개청춘'에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세 명의 20대가 등장한다.

고졸 학력의 직장인인 김민희, 군입대를 앞두고 좌충우돌하는 스무살 청년 우인식, 그리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방송사 막내작가 신승희가 그들.


'반이다'의 나비씨는 영화에 담긴 이들의 모습이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0대들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 명문대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 이들의 모습을 20대의 모습으로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모습이 불안한 기반 가운데 놓인 20대 대다수의 모습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영화 '개청춘' 영화 '개청춘'에 등장하는 우인식 씨
영화 '개청춘'영화 '개청춘'에 등장하는 우인식 씨반이다

영화 '개청춘'에서는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불안한 줄타기"('고대 자퇴녀' 김예슬양의 대자보 중 일부)를 하는 20대들의 하소연들이 솔직담백하게 담겨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인식씨는 "열심히 사는데 세상이 몰라준다"고 투덜댄다. 그는 '일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노동만 착취한다'는 아르바이트 자리들을 전전하며 군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지만 혹시 영화에 이런 자신의 모습이 패배자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조바심낸다.

신승희씨는 결국 방송사 막내작가 일을 그만두고 다른 프로덕션으로 직장을 옮겼다. '재입대'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몹시 씁쓸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누군가 정신차리고 스펙 만들라고 해주었더라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 그 소릴 들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타협적인 말을 하느냐'며 발끈했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말들을 담아 낼 뿐 어떤 메시지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인 20대의 모습을 '이 것이 20대다'라며 덤덤히 비추고 있을 뿐이다.      

"이상한 것은 20대가 아니라 세상"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송경화 씨 '반이다'의 송경화 씨는 김예슬 양의 자보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송경화 씨'반이다'의 송경화 씨는 김예슬 양의 자보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오대양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후문에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자보가 붙었다. 경영학과 04학번 김예슬양은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며 대학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을 진솔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반이다'의 송경화씨는 김 양의 메시지가 깊이 와 닿았다고 말한다. 송씨는 "이 시대에 대학을 그만둔다는 얘기는 이전 세대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며 "20대에 많지 않았던 특별한 용기를 내준 것에 대해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우리 영화가 약하대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면서요. 근데 일단 말부터 꺼내봐야 뭐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린 영화를 매개로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송씨는 김양의 행동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같은 이유로 자퇴하는 사람은 많이 있어왔지만 김양이 20대의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이 대단한 점"이라며 "우리도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같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양의 자보와 마찬가지로, 20대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낸 영화 '개청춘' 역시 세상에 건네는 '88만원 세대'의 목소리다. 영화 '개청춘'은 영화를 바라보는 20대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모르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질문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닐까?"
#개청춘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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