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생가 앞에 세운 기념비. 지난 해인 1009년 9월 20일이 이인영 총대장이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주성
이인영은 대성전재임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인석, 이강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유인석의 제천전투에 참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의병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재기하자, 그 해 9월 원주에서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에 올랐다. 서울에 있는 각국의 공사관에 호소문을 띄우는 등 국권회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1907년 11월 전 병력을 24진으로 하는 13도 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이인영은 원수부 13도 의병총대장에 추대되었다. 군사장에 허위, 관동총대장에 민긍호, 호서창의대장에 이강년, 호남창의대장에 문태수, 영남창의대장에 박정빈, 경기황해창의대장에 권중희, 관서창의대장에 방인관, 관북창의대장에 정봉준을 선정한 뒤, 일거에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조약을 무효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