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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사의 사다리> 에서 아유타(카나에 준)가 그린 <천사의 사다리> 그림 ⓒ 송유미
누가 지붕 고칠
사다리를 가져갔다
주룩주룩 비새는
지붕 쳐다 보며
사다리 없이 지붕
어떻게 고칠까 생각한다.
사다리 없이 지붕에
올라 갈 방법이 없어
아주 멀리까지
사다리 구하러 갔다.
사다리 구하러 가다가
사랑했던 옛정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지붕 고칠
사다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거절할 수가 없어
옛날에도 그랬듯이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굽혔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신발 신은 채 내 등을 밟고
비가 새는 지붕에 올라가
탕탕 못을 박고 사라졌다.
아, 그렇구나. 항상 내가
그의 사다리가 되는 순간,
그는 사다리였던
나를 아예 잊어버렸다….
그렇다면 내 잘못이다.
내가 그의 사다리되는 순간,
그도 나에게 공평하게
사다리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왜 나는 그가 나의 사다리였음을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비는 주룩 주룩 쏟아지는데
흙탕물에 털썩 주저 앉아
일어설 생각도 없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바람의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라가
비가 새는 지붕
지지대가 약한 자리마다
탕탕 못을 치시며 말씀하신다.
(아들아, 잃어버린 사다리는 더 찾지 마라.
너 자신이 사다리임을 알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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