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모래바람, 만리장성도 무너뜨린다

[해외리포트-중국 환경재앙①] 대륙 집어삼키는 사막화

등록 2010.04.10 18:42수정 2010.04.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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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만큼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고 있다. 특히 무분별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생태환경을 급속히 파괴하여 대륙 전체를 몸살 나게 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은 끝없는 인간의 탐욕이 자신마저 해할 수 있다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3차례에 나누어 살펴본다. <편집자 주>

황무지로 변한 신거우4촌의 북부 지역. 30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강이 흐르고 초목이 우거진 평야였다. ⓒ 모종혁


"거센 황사와 밀려오는 사막 때문에 고향을 떠난 주민이 허다합니다. 곳곳에 있는 빈 집은 모래바람을 견디다 못해 떠난 주민들이 남긴 것이죠."

중국 내륙 간쑤(甘肅)성의 서북부에 위치한 민친(民勤)현. 민친은 과거 실크로드로 통하는 하서회랑의 중심부로 '녹주(綠洲)', 즉 오아시스 도시라 불렸다. 옛날 사막 속의 오아시스로 번성했던 민친은 오늘날 황사로 인해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다.

전체 면적 1만6000㎢에 달하는 민친현 토지 가운데 94.5%는 이미 황무지나 사막으로 변했다. 지난 30년간 고향을 떠난 주민만 7970여가구, 3만5000여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10%가 사막화와 황사를 피해 정든 고향을 등진 것이다.

민친현청에서 북쪽으로 30여㎞ 떨어진 신거우(新溝)4촌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바로 되받는 곳이다. 마을 동쪽에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바단지린(巴丹吉林)사막이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촌장인 리창(李强)의 아침 일과는 밤새 집안 곳곳에 쌓인 모래를 쓸어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루 종일 밖에서 고된 노동을 마치고 되돌아오면 집안은 다시 모래로 수북이 쌓여있다.

리 촌장에게 황사와의 싸움은 생업보다 더 힘든 일상사다. 리 촌장은 "모래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는 문밖 출입을 하기 힘들 정도"라며 "마스크를 써도 모래가 입 안에 파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민친현을 뒤덮은 거대한 황사. 민친은 중국 내에서 황사가 가장 빈발하는 지역이다. ⓒ 민친현 기상대


1950년에 발간된 민친현 지도. 지도상에 없었던 바단지린 사막은 민친 서북부를 뒤덮었고, 동북부에 있던 호수는 사막에 파묻혔다. ⓒ 민친현 사막화대책자원봉사자협회


두 사막에 협공 당해 사라지는 '오아시스 도시'

민친현 주민들을 압박하는 것은 바단지린 사막만이 아니다. 동쪽에는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텅거리(騰格里)사막이 있다. 서쪽에서는 바단지린이, 동쪽에서는 텅거리가 민친을 협공해 오는 지세다.

양쪽에서 공격해오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민친현은 중국 내에서도 황사의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민친에서 황사가 부는 날은 1년중 139일이나 된다. 풍속 8급(초속 31m) 이상의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은 29일에 달하고 가장 풍속이 강한 바람은 11급을 넘는다.

마진주(馬金珠) 란저우(蘭州)대학 자원환경학과 교수는 "해가 갈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모래바람으로 민친의 사막화가 빨라지고 있다"면서 "매년 10m씩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본래 민친현청에서 동북부로 80㎞ 떨어진 곳에는 거대한 호수 칭투후(靑土湖)가 있었다. 기원전 서한(西漢)시대 칭투후에는 흉노족 왕의 목초지로 각광받았다.

반세기 전 칭투후의 전체 면적은 400㎢에 달했다. 평균 수심은 25m, 최고 수심은 65m나 됐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호수는 메말라 자취를 감추었다. 칭투후는 중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 사라진 거대 호수로 기록되어 있다.

사라진 호수는 칭투후 뿐만이 아니다. 1950년대 민친현에는 1200여개의 크고 작은 하천과 호수가 있었다. 하지만 20여년 전부터 민친에서는 천연 지표수뿐만 아니라 지하수마저 고갈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간 6억 톤의 물이 부족해 주민들은 만성적인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성벽 일부만 남아있는 만리장성 유적. 10년 내 민친현을 가로지르는 만리장성 전부가 사라질 전망이다. ⓒ 모종혁


사라진 하천과 호수만 1200여개... 만리장성도 없어질 위기

30여년 전 신거우4촌 북쪽에는 제법 큰 강이 흘렀다. 넉넉한 물을 이용해 신거우4촌 주민들은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황사를 앞세운 바단지린사막의 팽창으로 단 방울의 물도 남아있지 않다.

지하수마저 고갈되어 울창하던 초목도 없어졌다. 과거 1m만 파도 솟아나던 샘물은 지하 10m 이상을 뚫어야 겨우 수맥이 잡힐 정도다. 간신히 찾아낸 물줄기도 산성화가 심해 가축들에게 제대로 먹일 수 없고 농업용수로도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신거우4촌 주민들은 옥수수와 목화를 재배하며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민친현 전체로 볼 때 이미 400만 무(畝, 1무=666㎡)의 농토가 황무지로 변했다.

민친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하천과 농토만이 아니다. 민친 내의 만리장성과 고대 유적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간쑤성 서북부 자위관(嘉峪關)에서 시작된 만리장성은 민친을 가로질러 동부 보하이(渤海)만 산하이관(山海關)까지 이어진다. 전체 길이 6405㎞ 가운데 민친 내 59㎞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거나 침식됐다.

저우성루이 민친현박물관 학예사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옛 성벽은 벽돌이나 자갈이 아니라 진흙으로 만들어져 닳아 없어지기 쉽다"며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서 벽에 균열이 생겨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거우4촌에서 10여㎞ 떨어진 곳에 있던 고대 군사요새도 남쪽 성벽만 일부 남아 있어 전체적인 윤곽을 찾기 힘들 정도다.

사막 속의 아름다운 오아시스로 명성이 자자한 웨야취안. 지금 남아있는 호숫물은 외지에서 끌어온 것이다. ⓒ 모종혁


지금과 같은 사막화 속도면 모가오쿠는 10년 내 모래로 뒤덮일 전망이다. ⓒ 모종혁


무계획적인 인구 증가, 물 사용, 도시화 등이 낳은 '인재'

천년고도 둔황(敦煌)도 사막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둔황은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세계문화유산 모가오쿠(莫高窟)와 쿠무타거(庫姆塔格) 사막 초입부인 밍사산(鳴沙山)이 있어 유명한 관광지다. 특히 모가오쿠에서는 신라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밍사산 안의 웨야취안(月牙泉)은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웨야취안의 샘물은 수천년 동안 마르지 않았지만, 20여년 전부터는 쌓여가는 모래로 뒤덮일 위기에 처해있다.

웨야취안 주변에서 관광객에게 낙타를 태워주는 궈주안옌(여)은 "호수 크기는 2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10배나 더 컸다"면서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와 공급하지 않았다면 웨야취안은 진작 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급속한 사막화와 빈발하는 황사는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중국의 현실에는 또 다른 숨은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무분별한 물 사용, 무계획적인 도시화 등이 그것이다.

마진주 교수는 "환경공학적으로 볼 때 민친현의 적정 인구는 20만 명"이라며 "오늘날 30만 명을 넘어선 주민 수는 비정상적인데다 이들이 무분별하게 뽑아 사용한 지하수는 결국 사막화를 더욱 앞당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간쑤성 내 강수량은 옛날이나 지금은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인구와 도시의 팽창은 지하수를 고갈시켰고 풀밭을 메마르게 했다.

마 교수는 "이미 중국 국토의 18%가 사막으로 변했고 그 면적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사 #사막화 #만리장성 #둔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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