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가 주열이 시신 발견된 곳이라고?"

김주열 열사 유가족, 50년 만에 시신 인양지 찾아 ... 11일 '범국민장'

등록 2010.04.10 17:35수정 2010.04.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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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50년 만에 두 누나가 동생이 죽었던 장소를 찾아왔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된 뒤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金朱烈, 1943~1960) 열사. 김주열 열사의 두 누나가 '4·11 민주항쟁' 50주년을 하루 앞두고 마산을 찾았다.

 

큰 누나 김영자(74), 작은 누나 김경자(69)씨가 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열리는 '민주수호 정신계승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에 참석하기 위해 10일 오후 마산을 방문했다. 1960년 4월 11일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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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왼쪽)씨와 작은 누나 경자(오른쪽)씨가 10일 마산을 방문해, 동생의 시신 인양지 앞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을 보며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왼쪽)씨와 작은 누나 경자(오른쪽)씨가 10일 마산을 방문해, 동생의 시신 인양지 앞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을 보며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는 전북 남원에서 6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다. 금지동초교(옛 용정국교)와 금지중학교를 나온 그는 1960년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입학했다. 6남매 가운데 두 누나와 동생 김길영(55)씨가 생존해 있다. 이번 범국민장에는 형(김광열)의 부인을 비롯해, 조카와 매형 등 총 18명의 유가족들이 참석한다.

 

김영자·경자씨는 이날 오전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마산역에 도착했다. '4·11민주항쟁 50주년 행사 준비위원회' 김영만 위원장과 남원 출신으로 김주열 열사가 마산상고에 입학하도록 인연을 만들었던 하용웅(69·창원)씨가 나와 이들을 맞았다.

 

마산역을 빠져나온 누나들은 "50년 만에 처음 온다"고 말했다. 김주열 열사가 살아 있을 때는 진주와 마산에 이모 할머니가 있어 남원에서 버스를 타고 다녀가기도 했다고. 큰누나는 "주열이가 마산상고에 들어가려고 시험 칠 때도 같이 왔다"면서 "주열이가 그렇게 가고 난 뒤부터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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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왼쪽)씨와 작은 누나 경자(오른쪽 두번째)씨가 서울애서 열차를 타고 마산역에 도착해 김영만(왼쪽 두번째) '4.11민주항쟁 50주년 행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왼쪽)씨와 작은 누나 경자(오른쪽 두번째)씨가 서울애서 열차를 타고 마산역에 도착해 김영만(왼쪽 두번째) '4.11민주항쟁 50주년 행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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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씨가 남원 출신으로 김주열 열사를 마산상고에 입학하도록 인연을 만들었던 하용웅씨를 10일 마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의 큰누나 영자씨가 남원 출신으로 김주열 열사를 마산상고에 입학하도록 인연을 만들었던 하용웅씨를 10일 마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누나들은 곧바로 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던 현장을 찾았다.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지다. 이들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표지판' 앞에 섰다. 표지판에 새겨져 있는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보는 순간 작은 누나가 말했다.

 

"이거 봐 언니. 언니 얼굴하고 똑 같애. 귀는 엄마를 닮았잖아."

 

동생의 사진을 쓰다듬던 누나들은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큰누님과 김주열 열사의 얼굴 사진을 보니 꼭 닮았네요"라고 말했다.

 

김영만 위원장은 "김주열 열사는 살아서는 남원의 아들이었지만, 죽어서는 마산의 아들이 되었고, 역사 속에는 국민의 아들이 되었다"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이후 한참 동안 외지에서 사람들이 마산에 오면 김주열이 시신이 떠오른 장소부터 찾았다"고 말했다.

 

김주열 열사와 마산상고 입학 동기였던 김영만 위원장은 이곳에 표지판이 세워진 내력을 설명했다.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열린사회희망연대는 2002년 4월 19일 작은 표지석을 세웠는데 이후 훼손되었다. 마산시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 2006년 4월 11일 현재의 표지석을 세운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0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볼품없는 작은 표지판을 하나 세웠는데 그것도 훼손되었다. 도로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마산시청에 몇 차례나 가서 허가를 받아 낸 뒤, 그것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서 지금의 표지판을 세웠다"고 말했다.

 

2000년 만들어진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는 용마고에 '흉상'을 제막했고, 해마다 추모식을 열어 오고 있으며, 2007년과 2008년에는 마산~남원 사이 '소통과 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정'을 벌이기도 했다.

 

이어 두 누나는 시신인양지 앞에 섰다. 중앙부둣가에서 3m 떨어진 바다에서 1960년 4월 11일 오전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것이다. 누나들은 그해 3월 15일 이후 실종된 동생을 찾기 위해 헤맸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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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유가족들이 김영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10일 오후 마산 앞바다 시신 인양지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의 유가족들이 김영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10일 오후 마산 앞바다 시신 인양지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작은 누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서 3미터 떨어진, 바로 저 앞에서 동생이 발견되었단 말이냐"고 묻기도 했다. 큰 누나는 "주열이가 실종된 뒤 엄마는 27일 동안 마산을 샅샅이 뒤지면서 정신없이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동행한 하용웅씨는 "경찰은 시신에 돌을 매달아 더 먼 바다에 수장했다. 아마도 시신은 고기밥이 되기를 바라면서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기를 바랐을 것"이라며 "그런데 매달았던 돌이 풀려, 바다 가운데 있던 시신이 부둣가 3m까지 저절로 와서 떠올랐다. 그것은 주열이가 엄마의 품으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모습을 촬영했던 사진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김영만 위원장은 "부산일보 기자가 가슴 속에 카메라를 몰래 숨겨 촬영했다"면서 "세상에 일이 되려고 시신이 부두 가까이 밀려오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누나들은 "우리는 지금까지 동생이 바다 가운데에서 발견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부두에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것"이라며 "당시 우리는 빨갱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3·15와 4·19 때 희생된 영령은 전국적으로 186명이다. '김주열 범국민장'이라고 하지만 내일 장례식은 다른 열사들과 함께 한다.

 

김주열 열사의 후배(용마고)들은 범국민장 때 만장 200개를 들고 마산시내를 돈다. 만장에는 당시 희생된 열사들의 얼굴이 모두 새겨진다. 김 위원장은 "만장은 모두 하얀색이다. 17세 소년의 죽음이기에 하얀색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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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누나들이 10일 마산 중앙부두를 찾아 김영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동생의 시신이 인양됐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의 누나들이 10일 마산 중앙부두를 찾아 김영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동생의 시신이 인양됐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윤성효

 

누나들은 정부에 대한 서운함도 나타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3·15유족회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3·15나 4·19가 되어도 초대조차 없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때 4·19 기념식이 수유리 묘지에서 열려, 대통령도 온다고 해서 가봤다. 우리는 초대도 받지 않고 갔더니, 기념식을 마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식권 하나 달라고 했는데도 주지 않더라."

 

"마산 3·15 때도 오고 싶었지만,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자식 키우고 산다고 바쁘기도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렀다. 범국민장을 한다고 초대를 받아왔는데, 정말 고맙고 새롭다."

 

유가족들은 이날 3․15의거탑과 국립3․15민주묘지에 있는 김주열 열사의 묘소(가묘)를 둘러보기도 했다. 범국민장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지 꼭 50년 만인 11일 오전 11시부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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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작은 누나 경자씨가 10일 마산 중앙부두를 찾아 동생의 시신이 인양됐던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의 작은 누나 경자씨가 10일 마산 중앙부두를 찾아 동생의 시신이 인양됐던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 윤성효
2010.04.10 17:35 ⓒ 2010 OhmyNews
#김주열 열사 #4.11 민주항쟁 #3.15의거 #4.19혁명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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